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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실조 걸려 휴가 나온 아들에 “차라리 탈북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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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진 기자

승인 : 2010. 06. 15. 07:30

어느 탈북여성의 눈물고백 수기-⑬
양승진 기자] 내가 군대 있을 때 일이다.

내 직책이 3급 병사(3줄)여서 높은 급 직책을 수행할 때였다.

하루는 강원도 철원 2군단에서 교환 분대장으로 있던 동창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 동생이 군대에 가 있는데 엄마한테 편지를 보내와 몸이 많이 안 좋다고 연락이 왔다면서 나 보고 한 번 가봤으면 하고 전화를 했다.
나도 막 움직일 수 없어 전화를 받고 8개월쯤 후에야 그 곳에 갔다.

군의소에 가서 1소대 1분대 김XX를 찾으니 응급환자실에 가 있다고 안내했다.

나는 응급실에 들어가다 기절하는 줄 알았다.

침대가 열 댓 개 있는 데 환자들은 하나같이 볼 살이 쪽 빠지고 갈비만 앙상하게 남아 있어 마치  해골을 보는 것 같았다.

여름이라 날이 더워 상의까지 벗고 있으니 그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찾아도 동생이 보이지 않길 래 간호원한테 김XX를 찾으니 바로 앞에 있다며 손짓을 하는 게 아닌가.

친구의 막내 동생이 통통하고 귀여운 상이었는데 사람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뼈다귀만 맞춰 놓은 것 같아 기가찼다.

"네가 김XX 맞냐"고 물으니 입을 벌리고 손짓을 하는 데 힘이 없어 10cm도 못드는 것이었다.

옆에 있던 간호원이 "오래 못 살 것 같다"고 했다.

사람을 어떻게 이지경이 되도록 놔뒀냐고 따지면서 화를 냈더니 부대원 대부분이 영양실조에 걸려 이렇다고 일러줬다.

나는 한참이나 그 참상을 보고 있다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 동생에게 뭐가 먹고 싶으냐고 물으니 모기 소리로 "고기에 이밥"하고 말했다.

죽어도 먹고 죽는 게 낫다는 생각에 시장에 가서 고기국에 밥을 가져 와 말아줬더니 힘이 없어 숟가락으로 퍼 넣지도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퍼서 입에 넣어주며 나는 하염 없이 울었다.

내 막내 동생 하고 동갑이어서 내 동생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어느 정도 밥을 먹이고 그냥 올 수 없어 장에 나가 속도전가루(통 강냉이를 갈아서 가공)에 사탕가루와 소금을 좀 섞어 다시 군의소로 갔다.

간호원에게 의식이 회복되면 먹이라고 하고는 평양 11호 중앙병원(군 병원으로는 최고) 원장한테 얘기해서 영양제를 내려 보낼 테니 좀 놔 달라고 했다.

그 간호원에게는 일이 잘 되게끔 돈을 좀 찔러 줬다.

나는 분단장한테 말을 해 몸이 좀 추슬러지면 영양보충 하게 집에 좀 보내주라고 했다.

그러고는 나와 연락이 끊겼다.

얼마 후 이상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휴가 간 그 동생이 중국으로 도망갔다는 것이었다.

그 어머니가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죽이는  국가에 배신당했다"면서 "다신 군데 못 보낸다. 차라리 탈북하라"하고는 중국으로 보냈다.

결국 그 동생이 중국으로 도망가는 바람에 영양실조 때부터 관계를 가졌던 나는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 한동안 시달렸다.

탈북을 유도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 일이 있고나서 군에 보낸 아들이 영양실조로 사망한 일이 한 두건이 아니라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다.

오죽했으면 어머니가 탈북 하라고 아들의 등을 떼밀었겠는가.

그 동생이 탈북한 지도 벌써 5년이 넘었다.

운이 좋다면 서울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

중국에 계속 살고 있다면 지금도 무척 힘든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친구 동생이지만 영양실조에 걸려 죽기만 기다리고 있던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

양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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