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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처녀라 중국인에게 2만위안에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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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진 기자

승인 : 2010. 06. 01. 09:36

어느 탈북여성의 눈물고백 수기-①프롤로그

양승진 기자] 
북한, 중국, 한국 세 나라에 모두 살아보니까 북한 땅에 태어난 게 얼마나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지 알게 됐다.”

탈북녀 김미진 씨(36·가명)1일 아시아투데이를 통해 이같이 말하고 김정일 이란 인간을 위해 굶어 죽으면서까지 충성을 다했는데 남한에 와서 보니까 그 실태를 모두 다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땅에 발을 디딘지 54일째라는 김 씨는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으로 직업군관인 아버지를 따라 어릴 때 강원도 접경지역에서 살았고, 소학교부터 고등중학교까지 11년간의 의무교육을 마친 후 군 생활은 인민무력부에서 8년간 특무상사로 근무했다.

할머니와 삼촌들을 만나기 위해 중국으로 간 아버지가 급작스럽게 사망하자 가세는 눈에 띄게 기울었고 급기야 남한으로 넘어갔을 것이란 보위부의 등쌀에 매일 같이 시달려야 했다.

탈북을 결심한 김 씨는 어머니와 두 남동생을 남겨둔 채 브로커와 함께 야반도주를 감행했다.

두만강 국경수비대의 동태를 살피던 어느 날 밤 두만강을 건너 새벽 5시께 연변에 도착해 친황다오(秦皇島)까지 간 후 중국인 농촌총각(42)에게 2만위안(한화 340만원)에 팔렸다.

김 씨는 당시 다른 사람은 13000위안~14000위안 했지만 나는 처녀라 비교적 후한 값을 쳐줬다고 말했다.

딸을 출산하는 등 3년간 중국인 신랑과 농사를 지으며 살던 김 씨는 그러면서도 늘 도망자 신세는 면하지 못했다.

다시 남한 땅으로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아이와 남편을 남겨둔 채 또다시 야반도주해 캄보디아를 거쳐 그리던 남한 땅에 발을 디뎠다.

탈북과정을 설명하던 김 씨는 어머니와 두 남동생, 딸까지 떼어놓고 이를 악물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젠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털어놨다.

김 씨는 우리 집이 당() 출신이어서 그만큼 대우는 받았지만 북한에 남겨진 어머니와 두 남동생은 그것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보다 더 혹독한 고초를 겪고 있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최근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요즘 매일같이 천안함 사건으로 뒤숭숭한데 나도 북한에서 ‘1(어뢰 북한표기)’이라는 표기를 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다면서 북한은 능히 그런 짓을 하고도 안 그런 것처럼 순식간에 뒤집을 수 있는 집단이라고 말했다.

본지는 1일부터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특별기획시리즈로 어느 탈북녀의 수기를 연재한다.

양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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