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동안의 군 생활은 지금 생각해 봐도 너무 길고 참으로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함흥에서 3년 동안 대학을 다닌 후에는 청진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직장이라고 해 봐야 월급이 나오는 것도 아닌 무보수의 판매원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북한에서는 이게 고급직에 속했다.
직원 수가 100명이 넘었는데 나는 당원이라 대우를 받았다.
판매원 생활을 2년 하면 점장(사무실 계획비서)으로 승급하고 당 비서 등 출세 길이 열리는 보직이다.
청진 시내에 이런 판매점이 몇 곳 있었는데 1개 구역에 하나씩 밖에 없다.
이곳은 옷, 가구, 신발, 전자제품 등을 파는 곳으로 한국으로 말하면 백화점쯤 된다.
나는 중국, 일본 물건들을 주로 팔았는데 중국 제품은 질이 떨어져 일본 상품이 많이 나갔다.
그 중에서도 TV, 자전거, 녹음기, 가라오케, 밥솥, 전기다리미 등의 순서로 잘 팔린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일본 제품이 중국 제품 보다 비쌌지만 질에서 절대적으로 차이가 났다.
예를 들어 자전거만 보더라도 일제와 중국산은 수준 차이가 아주 컸다.
북한의 중간계급 정도 되면 생활수준이 어느 정도되니까 이런 물건들을 들여 놓는다.
북한 돈으로 TV는 200-300만원 대가 많이 팔렸다.
무슨 돈이 있어서 물건을 사냐고 하겠지만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 때부터 배급제와 월급제가 사라졌다.
대신 틈틈이 장사를 하며 돈을 번다.
북한에서 빵이나 신발 등의 개인 수공업이 발달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직장에 출근해도 월급이 안 나오니까 장사 하다가 가끔 직장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출근을 하지 않으면 노동단련소로 보내 그 정도에 따라 3개월, 6개월, 9개월짜리 갱생교육을 받는다.
정상적인 조직생활을 하도록 완전 개조를 시키는데 그래도 안 되면 교화소로 보낸다.
그러면 최소 1년 이상 형을 언도 받고,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
북한은 인민들의 노동력을 거저 사용한다.
남한은 열심히 일한 만큼 보수를 받는데 북한은 그렇지 못하니까 빈부격차가 하늘을 찌를 듯이 벌어진다.
야산에 있는 옥수수밭에서 옥수수를 훔쳐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밤 새 그걸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 이를 증명한다.
판매원 생활을 할 때 나는 아침 7시까지 출근했다.
집에서 자전거 타고 20분 거리여서 출퇴근은 비교적 쉬웠다.
퇴근은 저녁 7시로 하루 근무시간이 12시간인 셈이다.
복장은 단체복이 아닌 개인정장이고, 점심으로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는데 가끔 식당에서 사먹기도 했다.
판매원 생활을 하면서 기가막힌 적이 있었는데 도둑맞은 때다.
도둑놈이 야밤에 창문을 뚫고 들어와 TV와 선풍기, 가라오케를 훔쳐갔다.
문제는 물건이 없어지면 판매원이 그걸 다 물어내야 한다는데 있다.
퇴근한 이후지만 말이 필요 없다.
그런 일이 몇 번 벌어지자 밤에 물건 지키는 사람들을 뒤늦게 배치했다.
판매원 생활을 하면서 또다른 고충도 있었다.
물건만 팔았다면 좋았겠지만 2층에 마련된 원료기지에서 수시로 누에를 쳤다.
각자 목표가 정해져 의무적으로 안 할 수가 없다.
안 하면 비판을 받기 때문에 무조건 해야 한다.
누에를 치다 손님이 오면 내려와 물건을 팔기도 했으니 말이다.
남한 직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아마 직장 다닐 사람 하나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