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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브로커 통하면 언제든지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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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진 기자

승인 : 2010. 06. 03. 07:30

어느 탈북여성의 눈물고백 수기-③
양승진 기자] 예전에는 탈북을 결심하고는 은밀히 브로커에 접근해 미리 돈을 줬지만 지금은 하도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게 탈북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무일푼으로 탈북해도 중국인이 돈을 지불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김미진 씨는 청진에서 브로커를 만나 야반도주해 일단 회룡시까지 갔다.

버스로 3시간 거리지만 그냥 갈 수 없어 버스로 일정거리까지 간 후 보위부, 10호, 군대 등 4개의 초소를 지나치기 위해 산을 우회한 끝에 이틀이나 걸렸다.
회룡시에 잠입해서는 두만강 국경수비대 동태를 살피느라 잠복하다 새벽녘 두만강을 건너고는 곧장 중국 지린성(吉林省) 동부에 있는 옌지시(延吉市)로 이동했다.

브로커는 북한 내에서 활동하는 사람과 두만강 월경, 중국에서 받아 옌지로 이동 등이 분담됐고, 친황다오(秦凰島)로 가서야 중국인 농촌총각에게 팔렸다.

옌지는 조선족들이 많아 일단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고, 친황다오는 북경에서 기차로 2시간, 옌지에서는 버스로 이틀이나 걸리는 조선족이 없는 지역이다.

이곳은 북한의 탈북자 추적을 피하기에 적합하고 중국 농촌총각과 결혼을 하면 어느 정도 신분상 안정이 되기 때문에 주로 이용되는 코스다.

김 씨는 42살인 중국인 농촌총각에게 보여진 후 괜찮다고 여겼는지 그가 2만위안을 지불했다.

보통 1만4000~1만5000위안에 비하면 후한 가격이다.

브로커와 김 씨의 관계는 이로써 모든 게 끝나게 된다.

브로커는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각각의 관계인에게 사전에 약속했던 금액을 지불한다.

이는 다른 탈북자를 인도할 때 편의를 봐주는 조건이 함축적으로 들어있기 때문에 지불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인 농촌총각에 건네진 김 씨는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3년간 생활했다.

그러는 동안 딸을 낳고 살았지만 불현듯 이렇게 살수는 없다는 생각에 또다시 야반도주를 택했다.

두 살 된 딸과 남편에게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무조건 뛰쳐나와 캄보디아로 향했다.

캄보디아에서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중국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했더니 울면서 제발 돌아오라, 딸에게 미안하지도 않냐고 말했다고 했다.

한국으로 와서도 가끔 중국에 전화한다는 김 씨는 애 호적문제를 얘기하니까 중국인 남편이 조만간 올린다고 대답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는 탈북자들은 모두 1만8000명 규모로 올해 안에 2만명이 넘을 전망이다.

이들은 탈북 전 북한에서 남한의 사회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는 중국으로 탈출한 후 베트남이나 캄보디아를 거쳐 한국으로 오는 게 정설로 됐다.

김 씨는 “중국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 등에게는 안전문제로 아직 전화도 못했다”면서 “이곳에서 자리를 잡은 후에 연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진에 있는 가족에게는 브로커를 통하면 안부를 물을 수 있지만 아직은 조심스러워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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