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녀 김미진 씨(36)는 "야밤에 두만강을 건너다 4살된 막내딸을 눈 앞에서 떠내려 보내야 했던 일이 지금도 생각하면 몸서리 쳐진다"고 말했다.
김 씨는 청진에서 밤 12시 넘어 아는 언니(33)와 그의 4살된 막내딸, 브로커 등 4명이 함께 출발했다.
어머니에게 중국에 다녀오겠다는 편지 한 장이 모든 인사를 대신했다.
회령시까지 간 후에 두만강 국경까지 가는데도 걸어서 꼬박 하루가 걸렸다.
두만강을 건너기 위해 야산에 숨어들기를 몇 번이나 시도한 끝에 결국 6번만에 성공했다.
이 때가 밤 9시30분쯤으로 12시까지 숨어 있다 두만강 국경수비대 소초장이 다가오더니 "검열 나오니까 지금 빨리 건너라"고 소리쳤다.
소초장이 가르쳐 주는 대로 두만강에 무조건 들어섰다.
달빛이 어슴프레 비추는 가운데 5월이지만 물이 서늘해 그렇지 않아도 탈북하느라 마음을 조린 터에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한편으로는 이 길을 가면 다시는 오지 못한다는 아쉬움과 잡히면 죽는다는 두려움이 합쳐져 심장이 오그라들었다.
소초장이 가르킨 곳에 발을 들여 놓고 얼마쯤 가니까 물이 코 밑에 까지 찼다.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 한 길이 넘으면서 발이 닿지 않고 물살이 엄청 빨랐다.
그 순간 언니는 애를 앞으로 안고 건너다 갑자기 한 길이 넘는 물을 만나 그만 애를 놓치고 말았다.
너무 순간적이라 어떻게 손을 쓸 방도도 없이 애는 울음을 터트리며 엄마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몇 번 손이 보이더니 이내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브로커가 언니 손을 잡고 있었지만 언니 손을 놓고 애를 잡으러 가면 언니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애를 떠내려 보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다들 넋을 놓고 멍하니 한참을 물 속에 있었다.
조금 지나 언니가 대성통곡을 하자 다들 우느라고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언니는 사실 청진에서 결혼해 남편과 2명의 자식을 떼어 놓고 온 터라 강변에 나와서까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이라 이렇게 까지 하면서 중국땅으로 가야하나 후회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어차피 탈북을 결심한 이상 어쩔 수 없이 밤 새 걸어 연변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5시였다.
중국 브로커 집에서 2시간 정도 정신 없이 자다 깨 12시까지 초조하게 마음을 조렸다.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에 친황다오 행 2층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틀을 꼬박 가는 버스에서 파김치가 돼 내내 잤다.
그러면서도 자식을 가슴에 묻고 가는 이 길을 왜 택했을까 하는 물음 끝에 김정일과 북한에 대한 반항심만 가득찼다.
한 사람만을 위한 눈 먼 정치아래서 살아온 게 분하고, 그것도 8년씩이나 군대서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 참으로 후회스러웠다.
언제 잡힐 지 모르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꼭 성공해서 보란듯이 살겠다고 어금니를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