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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돼지보다 못한 북한 사정에 눈물이 왈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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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진 기자

승인 : 2010. 06. 06. 07:30

어느 탈북여성의 눈물고백 수기-⑤

양승진 기자] 이틀간 버스를 타고 친황다오에 내리자 현지 브로커가 한족 한 사람(39)을 데려왔다.

나를 돈 주고 산 중국 농촌총각이다.

순진하게 생겨 마음은 좀 놓였지만 중국말을 할 줄 모르는 처지라 말도 못건넨채 그가 끌고 온 트럭에 몸을 실었다.

얼마쯤 가다가 차가 시골집으로 들어서자 앞으로의 일이 참 막막했다.
그래도 북한에 살 때는 당원이라 궂은 일은 하지 않았는데 집을 보니 마치 소외양간 같았다.

어찌 보면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방안에는 82세된 노모가 미동도 않고 누워 있었다.

그 어머니와 첫 만남 후 돌아가실 때까지 1년 반이라는 세월 동안 똥 오줌을 손수 받아냈다.

청진에 두고 온 어머니를 생각해 이 분을 더 잘 모신다는 일념으로 투정 한번 하지 않고 묵묵히 견뎠다. 속으로는 내가 어머니 한테 잘 못하니까 아마도 하늘이 벌을 주려나 보다 생각하고는 위안을 삼았다.

거기다 농사일도 만만찮았다.

옥수수를 재배하는 데 한해 10정보(3만평) 정도 지었다.

청진에 있을 때는 호미질 하는 것도 모르고 살았지만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고는 무작정 따라했다.

씨 뿌리고 세벌 김매기에 비료주고 수확까지 옥수수 재배도 손이 많이 갔다.

하지만 서울로 가겠다는 일념으로 그 어떤 고통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첫 해 가을걷이가 끝나고 나니까 옥수수가 가득 든 자루가 마당에 끝도 없이 쌓였다.

북한에 있을 때는 배고픈 군인이나 일반 시민들이 다 훔쳐가던 그 옥수수다. 옥수수 밭에 감시초소를 두 개나 세워놓고 지키던 옥수수인데 여기서 이렇게 대하니 참으로 기가 막혔다.
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중국농촌에서는 겨울에 돼지를 풀어놓고 키워 하루는 몇 마리의 돼지가 옥수수 더미를 헤쳐 놓고 먹어도 누구하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너무 많으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북한에서는 저것도 없어 난리를 치는데 인민들이 중국 돼지보다 못한 생활을 한다는 생각이 들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북한에서 배를 곯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는 그런 일이 많았기에 "아! 이런 세상도 있구나..." 북한의 식량사정 자체가 슬펐다.

북한에 있을 때는 당원이고 군대생활도 인민무력부에 근무할 만큼 나름대로는 눈이 높았었다.

그런데 이젠 돈에 팔려와 이런 생활을 하고 있으니 누가 나를 알아주지도 않고, 더욱이 북한 실정을 아는 중국인들에게 탈북녀란 그렇고 그런 신세였다.

그나마 중국인 신랑이 잘해줘 큰 문제는 없었으니 다행이었다.

농촌마을인 양수오포엔 30가구가 살았는데 나 같은 탈북녀가 5명 정도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됐다.

어쩌다 브로커를 통해 북한 소식도 간간이 들려왔다.

중국인 신랑을 만난 지 1년 반이 지났을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뱃속에 아기가 8개월 쯤 됐을 때였다.

장례식을 치르고 안정을 되찾게 되자 이젠 밖의 소식이 또 궁금해졌다.

다시 서울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때가 서서히 다가 오고 있었다.

브로커를 통해 북한 소식을 듣기도 했지만 오로지 서울로 가는 것에 집중했다.
양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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