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첫 경기 그리스 경기서 기분좋은 승리를 거둔 태극전사들이 아르헨티나와 경기를 2일 앞둔 15일(한국시간) 오후 러스텐버그의 올림피아파크 스타디움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
황보현(이하 황보) : 지난 그리스전은 정말 의외였어. 한국대표팀이 높이와 체력을 앞세운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고전할 것이라는 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 버렸거든.
그나마 위안을 삼은 건 볼멘토크 2탄에서 내 예상대로 허정무 감독이 차두리를 선발로 썼다는거. 그리스전에서 한국대표팀이 90분 내내 경기를 지배하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어. 요 몇년사이에 본 한국대표팀의 경기중 최고였다고 평가하고 싶군. 난 그리스가 그렇게 못할줄 몰랐어. 유로 2004의 우승팀 맞아?
김현회(이하 김) : 그리스를 상대한 한국의 경기력은 독일이 호주를 4-0으로 격파하기 전까지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훌륭한 모습이었어. 그리스가 상대적으로 약체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월드컵 무대에서 이런 환상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는 건 쉽지 않거든. 그만큼 우리의 자신감과 경기력에 물이 올랐다는 이야기 아니겠어?
김 : 형, 나는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의 경기를 보니 절대 꺾지 못할 난공불락의 팀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어.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가 드리블 돌파로 위협적인 모습을 선보였지만 그게 전부였거든. 개인 기량으로는 다들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지만 하나로 뭉치지 못하는 느낌이었어.
우리가 절대 겁먹을 상대가 아니야. 또 앙헬 디 마리아(벤피카), 호나스 구티에레스(뉴캐슬)가 이끄는 측면은 나이지리아 공격수들에게 번번이 위기를 허용하는 등 무결점의 팀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어.
황보 : 첫 경기라서 그럴 수도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팀이 바로 아르헨티나야. 세계수준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 모인 팀이라고. 메시가 비록 골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위협적인 몸놀림으로 상대 수비를 헤집고 다녔어. 특히 메시는 특유의 돌파에 이은 슈팅으로 여러 차례 기회를 만들어냈고, 돌파가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이과인(레알 마드리드) 등 동료 공격수를 활용한 2대1 패스로 공간을 창출해냈어.
물론 나이지리아 골키퍼 에니에나마의 선방 때문에 빛이 바랬지만 왜 메시가 최고의 선수인지 불릴만한 경기였지. 그렇다고 메시만을 막는다고 해결될까? 테베스는? 이과인은? 밀리토는?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이런 팀을 상대로 무승부도 나쁘진 않다고 봐.
러닝으로 훈련을 시작하는 대표팀 |
이번이 아르헨티나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아르헨티나전은 고지대에서 열리는 만큼 이를 잘 활용할 필요도 있어.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에서 아르헨티나가 볼리비아 원정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점을 볼 때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물론 두팀 모두 힘들겠지만 이미 고지대에서 경기를 치룬 경험이 있는 아르헨티나가 체력적인 면에서 힘들어 할 것이 뻔해.
황보 : 아르헨티나전에서 맞불작전으로 나선다는건 위험해.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우리보다 한 수 위 팀인건 인정해야지. 어쩌면 한국은 아르헨티나전보다 마지막 경기인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 초점을 맞춰야할 필요가 있어. 아르헨티나전에서 보여준 나이지리아의 전력도 만만치 않았거든. 후반으로 갈수록 아르헨티나가 고전한 것을 보면 쉽지 않은 상대임은 분명해. 즉, 아르헨티나전은 무리하지 말고 나이지리아전을 대비한 전술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국은 전통적으로 남미에 강한 모습을 보였지만 유연하고 신체적 조건이 뛰어난 아프리카 팀들을 상대로는 고전을 면치 못한 기억이 많아. 특히 이번 월드컵에 나서는 피터 오뎀웬지(로코모티프 모스크바)같은 개인 기량을 앞세운 유연한 아프리카 선수들은 우리 수비수들이 막기에는 버거울거야. 중원의 사령관인 존 오비 미켈(첼시)이 없어도 경기 내내 아르헨티나를 괴롭힌 걸 보면 나이지리아 역시 무서운 팀인건 분명해.
박지성이 한 기자의 질문에 '아르헨티나 경기도 당연히 승리가 목표'라고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하고 있다. |
이제 막 한 경기를 치렀을 뿐 16강 진출이 확정되지 않은 한국이라면 두 번째 경기에서도 당연히 승리를 위해 뛰어야지. ‘비기기만 해도 만족한다’는 심리는 우리에게 도움될 게 전혀 없어. 거리에 나서 뜨거운 응원을 펼치는 수백만 국민에게 ‘비겨도 좋다’는 마음가짐으로 경기를 하는 건 부끄러운 행동 아니냐?
황보 : 현회 네 말대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건 당연해. 하지만 신중하게 하자는거야. 아르헨티나전에서 최선을 다하고도 최고의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엎친데 덮친격으로 대패라도 당한다면? 그 충격이 마지막 경기인 나이지리아전까지 그 여파가 이어질 수도 있어. 패배로 인해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많은 부담을 받을거야. 그렇게 되면 마지막 경기인 나이지리아전을 그르칠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 국민의 염원인 16강전을 위해서 저돌적인 것보다는 안전하게 갈 필요가 있다는거지.
그렇다고 포기하자는 건 아니야. 무리를 하지 말자는거지. 지난번 2006 독일월드컵을 생각해봐. 토고에 승리하고 프랑스와 비기면서 1승1무로 16강 진출에 유리한 입장이였지만 스위스전에 패하면서 눈물을 흘렸거든. 난 그때 이천수가 그라운드에 쓰러져 흘렸던 눈물이 아직도 안 잊혀져. 천수도 울고 나도 울었거든. 근데 요즘 천수는 어디서 뭘 할까?
김 : 비긴다는 마음가짐은 패배를 부르게 마련이지. 난 한국대표팀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충분히 이끌어낼 것이라고 봐. 못 오를 나무는 없다고 하잖아. 처음부터 겁을 먹으면 될 것도 안되는 법이야. 공격에 비해 다소 약할 것으로 보이는 아르헨티나의 수비진의 빈틈을 노려야해.
세트피스에서의 득점도 노려볼만 하고. 아르헨티나의 3선 수비진은 커버플레이나 위치선정이 좋지 않고 또한 전체적으로 신장이 작기 때문에 지난번 그리스전과 마찬가지로 세트피스시에 한국대표팀에게 분명히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해. 그 점을 놓쳐선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