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 '라면'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1986년 아시안 게임에서 육상 스타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임춘애는 메달을 획득한 후 가난했던 자신의 청소년 시절을 “라면만 먹고 달렸다”는 말로 대신해 국민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러나 라면은 이제 먹거리가 흔치 않았던 시절, 눈물을 삼키며 주린 배를 채우던 가슴 아픈 음식이 아니다. 화려한 포장과 색다른 맛으로 청소년들에게도 사랑 받는 것은 물론, 세계 각국으로 수출되고 있는 효자 상품으로 발돋움했다.
우리나라에서 라면이 처음 발매된 계기는 1960년대 초반에 당시 보험회사를 운영하던 삼양식품의 전중윤 회장이 일본의 한 포장마차에서 끓여주던 라면을 먹게 되면서 부터이다.
남대문 시장에서 파는 지저분한 꿀꿀이 죽 대신 라면을 대용식으로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전 회장은 상공부를 어렵게 설득해 공장 설비 자금을 마련하고, 일본 묘조(明星)식품에서 시설과 기술을 도입, 1963년 9월 '삼양라면'을 발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기의 '삼양라면'은 미곡 중심의 식생활에 익숙하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다지 즐겨 먹지 않던 면류였고 맛 또한 너무 싱겁고 느끼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외면을 받았다고 한다.
더구나 먹는 음식이 아니라 옷감의 일종인 ‘라면(羅綿)’으로 오해한 사람들도 많아 판매에 더욱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직원 가족들까지 총동원하여 서울역이나 남대문 시장 등에서 무료 시식을 계속하며 끈질기게 판매를 유도한 끝에 결국 소비자들의 입맛을 잡아당기기 시작했고, 1965년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혼분식 장려 정책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제2의 주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됐다.
라면이 이렇게 많은 호응을 얻게 된 것은 싱겁고 느끼한 맛 대신 얼큰한 맛의 스프를 개발해 국에 익숙한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추었고, 번거롭게 식사 준비를 하지 않아도 물과 김치만 있으면 언제든지 훌륭하게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간편함 때문이었다.
'삼양라면'은 소비자들의 열띤 호응에 힘입어 발매 초기의 누적된 적자를 말끔히 씻고 봉지 당 10원이라는 판매가와 1원 미만의 낮은 이윤에도 불구하고 65년 7월 한 달에만 100만 봉지를 판매하는 등 탄탄대로의 성장가도를 달리게 된다.
풍년라면, 닭표라면, 해표라면, 아리랑라면, 해피라면 등이 가세했고, 이중 선발업체인 삼양라면이 라면시장의 80%를 차지하게 됐다.
농심도 1965년에 후발로 뛰어들었다.
당시 일본의 라면이 80g인 반면 국내 라면은 120g으로 배불리 먹고자 하는 국민들의 욕망을 반영했으며, 7~8개의 라면제조업체들이 춘추전국시대를 형성하며 치열한 경쟁을 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며 산업계에서도 새로운 제품, 새로운 경향들이 속속 등장한다.
라면시장에서도 농심이 짜장면을 최초로 인스턴트화하는 데 성공하면서 새로운 바람이 불었고 라면의 맛은 닭고기맛에서 소고기맛으로 변모한다. 1975년 형님먼저 아우먼저로 유명한 '농심라면'이 인기를 끌었다. 최초의 컵라면이 1975년에 출시되지만 너무 앞선 컨셉트였던 탓에 실패하고 만다.
1980년대 라면시장은 농심, 삼양, 오뚜기, 한국야쿠르트, 빙그레의 5강 구조로 형성되었고 1981년에 용기면인 농심 사발면이 등장하며 본격적인 용기면 시대를 열었다.
농심은 1982년 너구리, 1983년 안성탕면, 1984년 짜파게티 등 3년 연속 사이클 히트를 기록하며 85년 라면시장 1위를 탈환한다. 이어 1986년 '신라면'을 출시하며 1위의 고지를 확고히 다진다. 그러나 1989년 우지파동으로 라면업계 전체가 충격에 휩싸인 바 있었다.
90년대는 라면업계는 해외진출을 모색하는 한편 새로운 형태의 라면이 출시되며 사회가 다양화되듯 라면시장도 세분화된다.
좀더 큰 용량의 큰사발면류가 인기를 끌었고 냉장면, 냉동면, 생면 등이 등장하며 라면시장은 다시 한번 활기를 띠게 된다.
2000년대 라면시장은 좀 더 고급화되고 건강지향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라면시장은 2003년에 빙그레가 라면사업을 철수하며 4강 구도로 재편성됐으며 중국, 미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해외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농심은 2007년도에 건면(튀기지 않은 면)을 출시했고 2008년에는 세계 최초 건식 냉면인 둥지냉면을 출시하며 냉면의 산업화에 성공했다. 라면시장은 1998년 처음으로 1조원 규모를 넘어섰고 라면역사 40년을 넘어 제 2의 도약을 추구하고 있다.
한편, 세계의 연간 라면소비량은 860억개에 달한다(2005년 기준). 라면소비가 가장 많은 중국으로, 연 소비량이 440억개에 달한다. 이어 인도네시아 124억개, 미국이 37억개의 순이었으며, 우리나라는 36억개로 소비량 부문에서 5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1년간 1인이 먹는 라면의 양으로 보면, 한국은 무려 75개로 1인당 소비량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