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는 유명한 가수는 아니다. 1989년에 헤비메탈 그룹으로 음악계에 발을 디딘 후 약 10년이 지난 1998년에 솔로로 정식 데뷔했다.
그동안 그는 총 5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지난해에는 애니메이션 영화 '고녀석 맛나겠다'의 OST에 참여, 주제가 '하트비트' 불렀다.
비록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마니아층들로부터 뛰어난 가창력과 음악적 감각을 인정받았다.
그 역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40대 가장이다. 가수로서 첫 사회생활을 내디뎠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사진작가로 전직했다. 그렇다고 가수란 직업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그는 내년을 목표로 새앨범 발표를 구상중이다.
“과연 음악으로 내가 먹고 살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컸어요. 결정적인 이유는 결혼 때문이였지요. 여기에 아이들이 태어나니깐 그 고민이 더 커졌어요. 그래서 사진작가로 전직을 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도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그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사진에 대한 관심과 기본 지식은 남들보다는 높았다. 이 씨는 전직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사진작가로 직업을 바꾼 후 뮤지션들과의 교류가 더욱 활발해졌다고 덧붙였다.
“제가 음악을 할 때보다 음악을 바라보는 것이 객관적으로 바뀌었어요, 또한 여러 가수들의 앨범 재킷을 찍으면서 음악 얘기들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네요.”
이 밖에도 이씨는 패션화보 촬영, 제품 광고 등 여러 분야에서 사진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씨의 하루 일과는 새벽 6시30분부터 시작된다. 기상 후 집근처 헬스클럽으로 가서 약 1시간30분 정도 땀을 빼며 운동을 한다. 벌써 10년 넘게 해온 일이다.
운동 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위치한 사무실로 출근해 하루 일과를 체크한다. 오후에는 작업 의뢰인들과 미팅, 그리고 작업 등 쉴새 없는 하루를 보낸다.
하루 일과를 마친 후에는 가끔씩 지인들과 술자리를 갖고 그날의 스트레스를 푼다.
그도 어느덧 5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술자리의 주된 주제는 노후에 대한 준비다. 첫 번째는 아이들이 대학에 갈 때까지 건강해야 된다는 것. 과연 내가 몇 살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사진작가라는 직업이 일반 직장인들에 비해 정년퇴직이라는 굴레에서는 자유롭죠. 하지만나이가 들면 작품을 바라보는 감각이 떨어질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들기 전에 상업적 작가에서 예술적 작가로 다시 한번 전직을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는 노후생활에 대한 경제적 대비를 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저축이나 보험 등은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그런 것들 보다는 나이를 먹어서도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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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강신 |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주위 친구들 중에서도 일에 대한 스트레스로 큰 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아요. 얼마전에는 뇌출혈로 쓰러져서 큰 수술을 받았던 지인이 있었어요. 이제 40대 중반밖에 되질 않았는데 큰 충격이었죠. 그런 모습들을 볼 때 마다 스스로 건강을 챙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죠.”
현재 대한민국의 40대 남성들은 한국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는 중추 역할을 맡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불안해 하고 있다. 언제 회사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건강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노후 대비에 대한 불안감이다.
그 역시 그랬다. “현재 40대 남성들의 고민은 국가 정책에 대한 불안감이 큰게 사실이다”면서 이런 불안감을 탈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많은 40대 가장들이 이민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40대들은 의료기술 발달 등으로 충분히 100세 까지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을 위한 현실적인 정책은 미흡한게 사실이다.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에 이들의 요구를 충족 시켜주지 못한다면 한국도 일본과 같이 고령화 문제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