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일본)/아시아투데이 정지희 기자 = 중장년의 재취업에 대한 관심도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의료기술 및 제도의 발전과 개개인의 건강 증진 등으로 인해 100세 시대가 열렸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전 세계 100살 이상 인구는 2386명이며 2040년에는 2만 명을 넘어선다. 현재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1살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수명인 74.9세를 훌쩍 넘긴 상태다.
60세에 정년을 맞이하던 시대는 지났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60대 이후에도 현역으로 일을 하는가 하면, 한 차례 은퇴했던 이들도 재취업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출산·육아 등의 이유로 일을 그만두고 가사에 전념했던 중년 여성들의 재취업률 및 재취업 희망률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추세다.
지난 2006년 국민 중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0%를 돌파하며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 또한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주 도쿄 호세이대학 캐리어디자인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다케이시 에미코 교수(사진)를 만났다.
◇ "고령자는 축복받은 세대, 중장년층이 가장 문제"
"재취업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는 구하기가 어려워요. 일을 하다가 그만두는 타이밍이 제각각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한 차례 일을 그만뒀다가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 아닌 여성들이라는 것, 그 수치가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에요. 왜 여성의 수가 압도적인가 하면 한국과 마찬가지로 출산이나 육아 때문이죠. 아무리 남녀평등의 세상이 왔다고는 해도 여전히 일본 내에서는 '남자가 돈을 벌어오고 여자가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다케이시 교수에 따르면 일본에 출산 및 육아 휴직 제도에 대한 법률이 제정된 것은 1992년이다. 부모 중 어느 한쪽이 1년 간 휴직한 후 복직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했다. 현재는 사회보험의 일환으로 육아 휴직 중에도 월급의 50%를 받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았다.
"당시에는 육아휴직 제도가 있긴 해도 지금과 달리 자유롭게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않았어요. 회사에서 눈치를 줬기 때문에 휴직이 아닌 퇴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1년 후에 복직한다고 하더라도 아이를 맡길 곳도 마땅치 않은 게 현실이었거든요. 남편보다 상대적으로 월급이 낮은 아내들이 주로 일을 그만뒀고요. 그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흘러 40~50대가 된 여성들이 지금 재취업을 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죠."
다케이시 교수가 말하는 일본 중장년 여성들의 재취업 희망 이유는 다양하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는 육아에 할애하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만큼 남는 시간이 아까워서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고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 가계에 도움이 되기 위해 일을 시작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 전 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던 자신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다시 사회에서 활약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재취업을 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풍요롭고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위해 미리 대비하는 의미에서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이들도 적지 않다.
"60대 이상의 고령자들과 40~50대 중장년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정도가 전혀 다를 거예요. 사실 일본의 고령자들은 축복받은 세대거든요. 지금의 고령자들은 전후에 태어나 일본이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한 시기에 20~30대 시절을 보낸 이들이에요. 세상이 안정돼 있고 삶이 풍족해 일을 하지 않고 전업주부로 살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죠. 반면 그들의 자녀 세대, 즉 지금의 40~50대 중장년은 버블 붕괴 후 일본 경제가 장기불황에 들어섰을 때 취업활동을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노후에 대한 불안이 클 수밖에 없어요.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재취업에 나서는 경우가 많죠."
60대 이후에도 취업을 하는 이들이 없진 않다. 그러나 그러한 고령자들은 대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껴서, 혹은 노후 설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만족감과 보람을 위해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다케이시 교수의 설명이다.
◇ 재취업하더라도 비정규직이 대부분
그렇다면 재취업을 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직종에 종사하게 될까.
"재취업을 해도 정규직으로 근무하게 되는 비율은 매우 낮아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어요. 현재 일본에서 일하는 중장년 여성의 대부분이 비정규직 종사자예요. 아무래도 육아 때문에 일을 쉬었던 공백이 있으니, 기업 입장에서는 정규직으로 채용하기가 쉽지 않죠. 기술도 부족하고 일에 대한 프로의식도 낮을 것이란 선입견이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주로 사무 쪽 일을 하기보다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 계산대 점원, 청소부, 음식점 직원 등 단순한 육체노동을 하게 됩니다. 재미있는 건, 오히려 대졸 여성의 재취업률이 낮다는 점이에요. 젊은 시절에 사무직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육체노동을 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이어 다케이시 교수는 일본의 국민연금 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일본 국민연금은 2층으로 구성돼 있다. 1층은 전 국민 공통의 기초연금으로 통상 국민연금이라 칭하며, 2층은 기초연금을 보충하는 보수비례연금으로 근로자가 가입하는 후생연금과 공무원이 가입하는 공제연금이 있다.
대부분의 국민이 속하는 후생연금의 경우 기본적으로 20세 이상부터 납부 의무를 지닌다. 25년 이상 성실하게 이 의무를 이행하면 65세 이후 본인이 원하는 시기부터 평균적으로 월 17만 엔(한화 약 190만원)씩 지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아도 65세가 지나면 기초연금을 약 7만 엔(약 80만원)씩 매달 받게 된다. 일을 하더라도 연봉이 130만 엔(약 1500만원) 미만일 경우 연금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기초연금은 지급받을 수 있다.
"일을 더 많이 하면 그만큼 노후에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더 커지죠. 그렇지만 일을 하지 않아도 월 7만 엔은 받을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어차피 남편의 수입도 있으니, 굳이 악착같이 일해서 연봉 130만 엔 이상의 노동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요. 비정규직이어도 그 정도면 만족한다는 거죠. 일을 하지 않으면서 연금을 받는 시스템은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그런 제도가 여성들을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고, 노동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거예요. 반면 전업주부들에게는 환영받고 있는 제도라고 볼 수 있죠. 어느 쪽이 옳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힘들지만, 개선할 필요는 있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미 고령화사회에 진입했고 점점 더 고령자들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상태로 가다간 연금이 곧 고갈돼 버릴 우려가 있어요."
◇ 한국, 일본 전철 밟지 말아야
이처럼 변해가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국가와 개개인의 국민이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재취업을 권장하는 다양한 세미나 및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중장년 여성의 재취업 정보를 제공하는 '마더스 살롱' '마더스 코너' 등의 시설을 전국 1068곳(2012년 기준)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설에서는 여성의 정규직 채용을 돕기 위한 각종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여자대학에서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취업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회생활에 공백이 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도움 없이 정규직으로 복직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 조건 법률 제정 및 개정도 거듭되고 있다.
"요즘은 아이가 없는 가정도 많고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식이 높아지고 있어요. 취업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식사 및 생활 습관을 유지함으로써 건강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많고요. 재취업에 관심이 높은 중장년 여성들과 달리 남성들은 나이가 들수록 인간 네트워크를 중시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성들은 계속 일을 해왔기 때문에 경제적 불안은 느끼지 않는 반면, 은퇴 후에는 만날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어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취미 생활이나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다케이시 교수는 조금씩 초고령사회로 다가가고 있는 한국에 대한 조언도 덧붙였다.
"인구 고령화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사안입니다. 일본은 수십 년 전부터 초고령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금이나 의료 제도 정비에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어요. 한국이 이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늘어나는 고령자들을 위한 효과적인 제도를 미리 준비해 놔야 할 겁니다. 또한 여성의 노동력을 포함해 '모두가 일하는 사회'를 만들지 않으면 경제적 부담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거예요. 한국은 교육열이 뜨겁고 오직 자녀들만 바라보며 사는 부모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녀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한다면 다가오는 노후에는 쓸쓸함만이 남을 거예요. 스스로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젊을 때부터 노후에 차근히 대비해 가는 한국인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
다케이시 에미코 교수는?
츠쿠바대학 졸업후 노동성(현 후생노동성)을 거쳐 닛세이기초연구소에서 근무. 2001년 오차노미즈여자대학 인간문화연구소 박사과정을 수료. 도쿄대학 조교수, 닛세이기초연구소 상석주임연구원을 거쳐 2006년 4월부터 호세이대학 캐리어디자인학부 교수직 역임. 전문은 인적자원관리, 여성노동론. 주요 저서로 '대졸 여성의 노동법', '남성의 육아휴직', '고용 시스템과 여성의 캐리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