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일본)/아시아투데이 조은주 기자 = "현역으로 일하던 세대가 시니어, 고령층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이제 이들을 위한 비즈니스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일본 시니어 비즈니스계 제 1인자로 알려진 무라타 히로유키 씨(사진). 그가 요즘 강조하고 있는 사실은 바로 인구 고령화로 기업의 비즈니스 타깃이 고령자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시니어 시프트'라고 불렀다.
본지는 지난주 도쿄 히가시아자부에서 무라타 씨를 만나 최근 변화하고 있는 일본 시니어 시장에 대해 진단해봤다.
2007년 일본에서는 1차 베이비부머(단카이 세대)의 대량 퇴직으로 소비 시장이 크게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됐다. 지갑 두둑한 퇴직금과 금융자산 그리고 적극적 소비 경향을 보이는 이들의 은퇴에 일본 열도가 술렁거렸다.
일본 최대 광고회사 덴츠는 당시 이들의 대량 퇴직으로 약 6조6000억 엔의 소비가 늘고 이에 따른 경제효과도 15조엔 이상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이른바 '대박'을 낸 상품이나 업체는 거의 없었다. 기업들이 예측한 '고령 인구=소비 파워'란 공식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결과다.
이에 대해 무라타 씨는 "정년 연장이나 재고용 등으로 은퇴 시기가 늦춰진 데다 단카이의 절반은 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대부분은 이미 일을 하지 않는 상태였으니까요.
또 당시 기업들은 각종 예측과 전망만으로 단카이의 퇴직금을 노린 금융 상품이나 해외 여행을 잇달아 내놨지만 이는 기업들의 생각이었을 뿐, 고객인 단카이 세대가 원하는 상품이 아니었던 거죠"라고 분석했다.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5년 전과 비교하면 거리에 고령자가 늘었고 개호(곁에서 돌보아 줌)나 사회보장보험 같은 단어를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말하게 됐습니다. 기업들도 은퇴 후 생활, 건강 등에서 불안을 안고 사는 고령자를 배려한 상품과 서비스 개발로 속속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요."
기업의 눈에서만 바라보던 비즈니스가 고객 중심의 비즈니스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드디어 본격적인 비즈니스가 시작된 거죠."
시니어 시프트가 구체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업종에 대해 무라타 씨는 로손, 세븐일레븐 등 편의점 업계를 꼽았다.
"1989년 세븐일레븐을 방문하는 고객의 63%가 30세 미만이었고 50세 이상은 겨우 9% 였습니다. 반면 2011년에는 30대 미만이 33%, 50대 이상이 30%로 거의 비슷한 수준이 됐죠."
실제로 편의점 업체들은 수년 전부터 중장년층, 고령자 고객을 타깃으로 한 상품 개발과 점포수 늘리기에 주력해왔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와 함께 공공요금 지불, 택배, 복사 등 기본 서비스는 물론 슈퍼에서 살 수 있는 과일이나 신선 야채를 판매하고 도시락까지 배달해준다.
고령자에게 편의점이 '가깝고 편리한 존재'가 된 셈이다. 그는 이를 쇼핑약자 대책이라 설명했다.
반면 시니어 시프트에 가장 둔감한 업종으로 무라타 씨는 가전, 자동차 등 제조업을 들었다.
“일본 제조업체들은 ‘좋은 물건을 만들면 팔린다’는 타성에 젖어있을 뿐 변화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성공 사례를 들며 제품 개발을 요구해도 ‘그런 물건은 만들지 않는다’는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기업들이 시니어 시장을 위한 전략을 짤 때 가장 유의해야 할 점으로 그는 3개의 E를 꼽았다. 바로 'Excited(들뜬, 흥분한)' 'Encouraged(격려되는)' 'Engaged(당사자가 되는)'다.
"이전에 한 잡지사가 미국 보스턴에서 한 달간 머물며 영어를 배우는 여행 상품을 기획한 적이 있습니다. 1인당 총 비용은 비행기티켓과 어학연수 비용, 식대를 포함해 120만 엔(약 1400만 원)이었지만 2주 만에 30명 정원을 모두 채웠습니다."
"고령자들은 관심 없는 물건에 절대로 지갑을 열지 않습니다. 이는 자산이 아무리 많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건강하면 인지 능력이 높아지고, 외출을 하고 돈을 쓰는 게 이치입니다. 이들이 제대로 납득할 만한 상품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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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타 히로유키는?
일본 시니어 비즈니스 전문 컨설턴트. 중고령층 시장 전문 컨설팅 회사인 무라타 어소시에이츠 대표로 현재 약 850여 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시니어 관련 컨설팅을 하고 있다.
일본 경제무역산업자원에너지부(METI)의 싱크탱크인 사회발전연구센터 대표이며 도후쿠 대학의 국제전략 부문 특임 교수, 간사이대학 객원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또 일본 내 주요 언론에 중고령층에 대한 비즈니스 전략과 마케팅에 관한 글을 게재하고 있고 그 외에 수많은 주요 일간지와 잡지, 방송에 시니어 시장 관련 자문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시니어시프트의 충격' '시니어비즈니스 7가지 발상전환' 등이 있으며 한국어로도 소개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