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복지, 영국에서 길을 묻다 ② 영국은 지금 치매와의 전쟁 중
|
리처드 레인 성공회 주교가 19일 영국 윔블던 교회에서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영국 기획취재팀 |
윔블던(영국)/아시아투데이 김종원·이정필 기자 = 영국의 국교인 기독교 성공회. 성공회의 대표 목회자인 주교는 담당한 지역교회의 예배를 인도하며 시민들로부터 유명 정치인이나 사업가보다 더 큰 존경과 신뢰를 받는다. 지역주민과의 상호 의사소통을 누구보다 많이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사회 현안과 정부정책 방향을 주시한다는 특징이 있다.
19일(현지시간) 영국 윔블던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만난 리처드 레인 성공회 주교(52)는 “노후복지의 왕도는 좋은 아내를 만나는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레인 주교는 세계적인 테니스대회로 유명한 윔블던 지역이 포함된 머튼 보로 구내 성공회를 총괄하고 있다. 로보로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노팅엄 대학원에서 신학을 배우며 복지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150년이 넘은 고풍스런 교회 뒤편 나무벤치에 앉은 레인 주교는 영화배우 ‘휴 그랜트’와 비슷한 영국 특유의 억양으로 치매와 복지에 대해 얘기했다.
-영국 정부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치매 관련 정책을 어떻게 보나.
“미국이나 호주에서는 치매의 원인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하고 있는 반면에 영국 정부나 사회는 치매를 생활의 일부로 인식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나 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본다는 차이가 있다. 원인 분석을 하기보다는 이를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치매에 관해 정부가 ‘이렇게 하면 된다’라고 단일화된 정책을 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구마다 자율적으로 정책을 개발하고 주민에게 권장해 실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 정부의 재정지원 역시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지역별로 재정을 할애해 센터 등의 시설을 만들고 치매 관련 정책을 추진한다.”
-영국 정부는 국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치매 문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지 않나.
“현 정부의 재정지원은 국민이 원하는 만큼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한다면 투자를 더 늘려야 한다. 전반적인 국민정서에는 국가가 당연히 치매에 걸린 사람과 주변 가족을 돌봐주고 지원해줘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총리는 치매를 ‘대단히 파괴적인 질병(Dementia is a devastating disease)’으로 규정했는데.
“치매는 자기 자신을 망각하면서 본인은 물론 주위의 가족과 친구 등 지역공동체 전체를 힘들게 하는 질병이다. 이런 부분은 개인적인 힘으로는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가가 범정부 차원에서 나서줘야 된다.
물론 정부의 입장에서는 치매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투자해야 되는 여러 가지 분야의 문제가 산적해 있을 것이다. 재정적 여건이 된다면 당연히 모든 분야에 넉넉하게 예산 분배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나.
정부가 경제 정책을 우선시 할지 아니면 교육이나 복지 정책을 우선시 할지는 미묘한 문제다. 영국이 복지와 치매 정책에 투자하는 비용은 다른 분야에 비해 결코 적지 않다.
치매환자를 둔 가족들의 의견과 일반적인 국민입장은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내 가족이 치매에 걸렸다고 가정해본다면 다른 여러 가지 분야에 앞서 치매 예방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된다는 의견이다. ‘치매와의 전쟁 선포’ 등 현 상황을 볼 때 정부가 치매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국 정부가 치매와 함께 연금, 복지, NHS 세 분야의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개인적인 의견을 말한다면 정부의 3대 개혁 추진 동기가 국민의 복지를 향상시키려는 정책적 기준에서 나왔다기보다는 경제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하려는 게 강하다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복지의 질이 낮아질 것이라고 보는지.
“새로 나온 정책을 보면 가족수를 측정하는 ‘최고수당’이라는 게 있다. 한 가정의 가족수가 많으면 같은 수준의 혜택을 유지하기가 전에 비해 까다로워졌고 적지 않은 손해를 입을 것이다. 정부가 국민 모두의 상황을 일일이 고려해서 정책을 수립할 수는 없기 때문에 분명 피해를 보는 가정은 생길 수밖에 없다.
최근 도입된 ‘베드룸 텍스’가 대표적인 예다. 이는 생활보조수당을 받는 가정집에 빈방이 있으면 빈방수에 맞춰 지원금을 깎는 것이다. 정부의 보조를 받는 상황에서 여분의 방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논리에서 나온 제도다. 수당을 받으려면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라는 것인데 도의적인 관점에서 국민의 찬반논란이 심하다.
정부가 추진 중인 개혁을 완성하면 분명히 혜택을 보는 가정도 생기겠지만 전에 받던 지원이 줄어드는 가정이 더 많지 않겠나.”
-지금의 개혁이 결국 1인당 지원총액을 줄어들게 할 거라는 말인가.
“영국은 연금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복지정책이 잘돼 있어서 여러 가지 생활수당보조금이 많다. 저축금액이 얼마인지, 집이 얼마나 큰지, 가족이 몇 명인지, 자녀는 몇 명이고 연령대는 어떻게 되는지 등 수십 가지 사항을 꼼꼼하게 따져서 이에 맞는 혜택을 준다. 그런데 이 걸 개혁한다는 말은 이제 지원 전체를 줄일 테니 각자가 스스로 대비하라는 신호탄과 같다.”
-한국의 중장년층은 은퇴를 해도 여전한 부모부양과 자식부양에 다시금 창업이나 재취업에 나서야 한다. 정부의 국민연금으로는 기초생활조차 요원한데 묘안이 있다면.
“부자 아내를 만나라(rich wife).”
-정녕 그 방법뿐인가.
“복지강국이라는 영국도 그런 추세로 가고 있다. 30~40년 전에는 한 푼도 저축해둔 게 없더라도 생활이 가능했다. 나라에서 집과 지원금을 충분히 대줬기 때문이다. 주위 중산층을 평균적으로 봐서 말하면 예전에 비해 정부로부터 나오는 보조가 충분치 않기 때문에 각자 알아서 대비한다는 인식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노후생활에 대한 정부 의존도는 어떤 추세인가.
“불행히도 나이가 많은 노인층은 정부만 믿고 모아둔 게 없기 때문에 너무 늦어버려 국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나를 비롯한 40~60대 중년층의 경우 본인과 배우자의 노후는 부부가 준비한다.
젊은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정부에 기대하지도 않고 기대할 수도 없다. 이런 추세는 시간이 지나고 연령대가 내려갈수록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
인터뷰 후 웃는 레인 주교 |
|
윔블던 교회 |
<‘맞춤형 복지, 영국에서 길을 묻다’ 해외 기획취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을 받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