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사는 이날 오후 뉴델리 한국대사관 집무실에서 가진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모디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지도자로서의 이미지가 비슷하다”며 “국가의 장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있고,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방안, 그리고 이를 실현할 의지와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 대사는 모디 총리 집권 시기가 인도 경제발전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이며, 한국 기업이 인도 경제발전에 기여하면 제2의 경제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사는 또 “지금 인도가 한국을 보는 시각은 개혁개방기 중국이 한국을 볼 때와 비슷하다”며 “한국이 인도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모디 총리 집권기야말로 인도 근대화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 때 ‘한강의 기적’을 달성한 한국이 중국에 이어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부상한 인도에 투자해 제2의 도약을 달성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대사는 외교를 전통적인 외교·안보 분야뿐 아니라 경제 협력까지 확대해 생각하고 있다. 주요 일정 중에는 한국 경제인과 함께 모디 총리 등 중앙정부 관계자와 지방정부를 방문하는 것이 포함돼 있다. 2013년 10월 재인도 한국 경제인들과 구자라트주(Gujarat)를 방문해 당시 주총리였던 모디 총리를 만났다. 인도대사로 임기를 마치는 마지막 일정도 안드라 프라데시(Andhra Pradesh)주 경제사절단 방문으로 짜여져 있다.
아울러 한국무역협회·코트라 등과 함께 개최하는 한국기업 대상 통상투자진흥회의에서는 직접 사회를 보면서 한국기업의 인도투자와 관련한 논의를 진행해 박정희 전 대통령의 1966~1979년 ‘수출진흥회의’가 인도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1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한·인도 간 경제협력이 주요 테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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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가장 큰 변화는 모디 정부가 출범 이후 여러 가지 적극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한국과의 협력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협력 사업이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고 심도 있게 추진되고 있다.”
- 인도 사회의 변화는?
“모디 총리의 인도국민당(BJP) 집권 이후 인도 사회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대규모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모디 총리와 함께 하는 BJP 정부의 지도자들은 경제를 발전시켜 인도를 잘 사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요즘 인도인들을 만나면 ‘우리도 할 수 있다. 모디 총리와 함께 노력하면 인도도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모든 면에서 잘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엄청난 변화다. 내 임기 중 처음이며 인도의 오랜 역사를 통 털어 처음일 수 있다.
인도는 모디 정부 출범이라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이 같은 기회가 다시 올지 기약할 수 없다. 모디 총리와 인도 국민들이 단합해 국가 발전에 총력을 기울려야 할 시점이다. 한국을 포함해 주변국은 인도가, 모디 정부가 성공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도와야 한다. 인도라는 거대한 국가가 바로서서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세계무대에서 위상에 맞는 역할을 하는 것은 세계, 세계인에게 도움이 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 새로운 ‘기회의 땅’ ‘블루오션’ 인도의 매력은?
“인도는 인도관광청의 모토 ‘놀라운 인도(Incredible India)’처럼 불가사의하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나라다. 생활·투자 환경 등은 아직 열악하지만 인도의 무한한 가능성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인도와 파트너이자 친구가 돼 개발에 참여하고 함께 나간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기업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인도에 오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인도가 가장 원하고 성공할 수 있는 분야는 제조업이다. 인도는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 추진에서 보듯 제조업 발전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한국을 가장 좋은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여건이 제대로 조성돼 있지 않고, 인도 기업인들 역시 제조업 성향이 아니다. 따라서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 제조업체도 진출하면 발전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사회기반시설(인프라) 건설을 위한 재원이 막대하다. 철도·도로·항만·전력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역할이 기대된다. 그외 시작단계에 있는 유통업도 유망한 분야다.”
- 모디 총리가 방한 때 현대중공업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조선은 인도 정부가 가장 협력하고 싶어하는 분야다. 인도 조선산업은 여러 요인으로 인해 경쟁력이 약한데, 한국과의 협력을 통해 조선산업을 현대화해 경쟁력을 높이길 희망하고 있다.
이는 우리 조선산업에도 새로운 기회다. 현대중공업 등 우리 조선업계도 관심 있게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정부 간에는 조만간 협력을 위한 조인트워킹 그룹을 구성할 계획이다.”
- 인도의 경제 성장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도 있는데.
“예측의 문제가 아니다. 인도가 성공할 수 있도록 다 같이 협력하고 도와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 인도가 성공하지 못하면 앞으로 이런 기회가 다시 오기 어렵다. 우리 정부와 기업도 인도의 성공 여부를 지켜보고 판단할 게 아니라 이번이 인도에게, 우리에게 주여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어느 정도 위협 부담을 안고 지금 인도로 와야 한다. ‘리스크 테이킹’을 하면서 인도의 노력에 동참해 성공하면 그 과실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 정부 내에서도 인도에 대한 온도차가 있는 것은 아닌지?
“정부·국민·언론의 관심은 인도의 중요성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인도는 인구면에서 중국에 버금가고, 모디 정부 출범 이후 경제가 도약 단계에 접어들었다. 중국발 쇼크 등으로 휘청거리고 있는 세계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도는 우리의 경제적, 정치외교적 확실한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관심을 가지고, 각종 경제적인 협력을 추진하면서 기업의 인도 진출을 장려하면 우리 경제는 제2의 도약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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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모디 총리는 수 차례 만났기 때문에 개인적인 친분과 신뢰관계가 형성됐다고 본다. 이는 양국 협력의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기반이다. 모디 총리는 총리가 되기 전부터 한국에 관한 이해가 깊었다. 인도 경제발전을 위해 한국의 경험을 배우고 협력해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대사는 모디 총리가 주총리로 재직 중이던 2013년 10월 구자라트주를 방문해 한·구자라트주 간 문화·교육·경제·산업 분야에서의 협력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 모디 총리는 어떤 분인가.
“모디 총리를 여러 번 만났다. 박정희 대통령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지도자로서의 이미지가 비슷하다. 국가의 장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있고,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방안, 그리고 이를 실현할 의지와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인도가 모디 총리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우리가 과거에 이룩했던 것과 같은, 버금가는 비약적인 경제적 도약의 기틀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도의 성장은 인도 자체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 경제가 조금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는 지금 세계경제를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하다. 한국이 인도 경제도약의 초기에 파트너가 돼 협력해 나간다는 것은 한국경제를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 인도 중앙정부뿐 아니라 주정부 차원에서도 ‘한국기업 전용공단’ 조성을 약속하는 등 한국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러브콜이 왕성하다. 한국경제, 한국기업의 경쟁력을 너무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 인도가 한국을 보는 시각은 개혁개방기 중국이 한국을 볼 때와 비슷하다. 지금 한·중 경제협력의 성과를 보면 중국의 판단이 적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과의 협력이 가속화되고, 기업이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되면 인도의 평가에 대한 해답이 나올 것이다. 한국이 인도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경험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 한국 기업의 인도 진출에 대한 정부 및 주인도 한국대사관의 역할은?
“우리 기업이 인도 진출을 생각하면서 열악한 환경, 정보 부족 등 때문에 망설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같은 의구심을 덜어주고 투자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인도 중앙·지방정부와 이와 관련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 모디 총리 방한 이후의 후속조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한·인도 관계는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의 인도 방문을 계기로 전략적 동반적 관계가 됐다. 모디 총리가 지난 5월 한국을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를 특별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한 단계 격상시켰다.
인도가 ‘특별’ 관계를 맺은 국가는 일본·러시아 등에 불과하다. 인도가 한국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국 간 협력을 넘어 세계 다자무대에서 공동보조를 맞추게 되고, 분야도 경제뿐 아니라 정치외교, 군사 등으로 확대될 것이다.
양국 정상은 1년에 한번 이상 상호 방문 또는 국제 다자무대에서 만나 자주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는 공통 인식을 가지고 있다. 정부 간에도 새로운 채널이 생겼고, 기존 채널을 강화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작년말 국가안보실 간 대화가 신설됐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양국 안보 문제를 넘어 국제사회에서도 다양한 전략적 논의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테러 문제 를 포함해 동북아·남아시아 지역에서의 전반적인 전략적 협력도 논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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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디 총리 방한을 계기로 외교·국방(2+2) 차관급 회의가 신설됐다. 올 12월에 첫 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아울러 외교차관급의 전략대화, 국방부 간 정책대화, 방산 분야 정기대화 등도 추진 중이다.
인도의 인프라 건설을 위해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10억 달러, 수출금융 90억 달러 규모의 저리 융자 금융패키지 지원책을 마련하기로 했는데 추진 방법에 대해 정부 간, 수출입은행 간 논의가 진행돼 연말까지 구체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인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스마트 인디아’ ‘클린 인디아’ 정책과 관련한 협력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 외교 안보 측면의 인도의 역할은?
“한반도를 둘러싼 4강, 미국·중국·일본·러시아는 중요한 나라다. 하지만 주변국가이기 때문에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인도와는 국경을 맞대고 있지 않고 이웃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충돌될 여지가 거의 없다. 국제사회에서 인도의 목소리, 영향력은 매우 크다. 그러한 인도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해 인도를 친구로 만들었으면 한다.”
- 지난 3년간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대사로 임명돼 인도로 향하면서 ‘인도의 중요성을 정부와 국민이 인식하게 하고, 인도를 국제무대에서 4강에 버금가는 파트너로 만들자’는 계획을 세웠다.
인도에서 생활하면서 인도와 우리 국민에게 ‘양국 정부와 국민은 세계, 월드사회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는 여건을 가지고 있다. 김수로왕과 결혼한 허황후 스토리에서 보듯 2000년 전부터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만 노력하면 절친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해 왔다.
3년이 지난 지금 그 단계로 가는 기반이 조성됐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보다 친한 친구, 더 나아가 절친이 될 수 있다. 국제무대에서 손을 잡으면 지위도 높아지고 다양한 공동사업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 지금까지 외교관 생활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은?
“1978년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을 때 우리나라는 잘 사는 국가가 아니었다. 국제무대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기웃거리는 처지였다. 외국 정부에 부탁만 했다. 그런데 지난 37년 동안 국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이제 최고 수준의 대접을 받는다. 우리 세대 외교관은 우리나라의 비약적인 발전의 혜택을 받은 수혜자다.
인도대사를 마지막으로 은퇴하게 돼 행복하다. 대사로 있으면서 한·인도 관계 증진을 위해 개인적인 역량을 총동원해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은 소중한 체험이다.
아울러 2002~2003년 주중 대사관 총영사로 있을 때 탈북자·국군포로를 대사관 영사부에서 생활하게 하고 중국 정부와 교섭해 한국에 들어올 수 있게 한 것 또한 외교관 생활 중 잊을 수 없는 보람이었다.
이후 2년 정도 재외국민영사국장으로 있으면서 실무진들과 머리를 짜내 세계 최초의 영사콜센터, 해외 도착 위급 문자 서비스, 24시간 신속대응팀 등을 도입해 재외국민 보호 업무의 기틀을 마련한 것도 잊을 수 없다. 당시는 김선일 씨 피살 직후였다. 영사업무, 재외국민 보호 문제에 대한 집중 포화로 ‘외교부 존폐론’까지 제기됐을 정도로 심각한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