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적응 프로그램으로 도입한 ‘미술치료’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를 겪은 내면의 바다를 가감 없이 표출했다.
그들이 본 바다는 추억과 공포, 두 얼굴이었다. 후배들을 잃은 슬픔과 분노, 우울감과 상실감, 그리움과 애도라는 복잡한 감정이 묻어났다.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는 부모, 심해로 빨려 들어가는 세월호, 바닷물이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을 바라는 소망, 구조를 기다리는 마지막 손길, 과장되게 표현된 어른들의 미덥지못한 입, 화살표로 날짜가 되돌려진 달력, 아이들을 하늘로 데려가는 천사….
‘세월호’라는 제목의 그림은 선장을 태운 구조헬기와 배 위의 탑승객 무리가 대조를 이룬다.
빨간색 바닷물에 삼지창을 든 악마, 피눈물을 흘리는 선장을 그린 분노가 담겨 있다. 블랙홀로 빨려들어갈 듯 표현된 바다는 언뜻 봐도 공포감이 전달된다.
세월호와 선장을 붉은색 ‘x’로 표시한 자화상은 자신의 불행을 극대화했다는 분석이다. ‘한입으로 두말한다’는 제목의 그림의 도드라진 입은 어른들에 대한 분노로 해석됐다.
해지는 바닷가에서 하염없이 자녀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담은 그림에서는 분노와 희망이 교차한다.
안산 단원고 회복지원단은 지난 28일부터 CHA(차)의과학대학 미술치료대학원 김선현 원장(차병원 미술치료클리닉 교수)과 대학원생들로 구성된 ‘미술치료팀’을 투입해 예술이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예술활동으로 우뇌를 활성화해 심리적 안정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다.
김 교수팀은 매일 40여명을 투입해 28일 3학년생 대상 그림 그리기에 이어 29일 전교생 대상 점토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점토 만들기는 움직이면서 하기에 일종의 운동 완화 효과도 기대된다.
지난주에는 세월호 참사로 형제·자매를 잃은 학생들이 다니는 인근 중학교에서도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아이들의 반응은 예상을 뛰어 넘었다.
우선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김 교수는 “재미있다” “좋았다” “제대로 풀 수 있었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거나 싫은 상황을 자연스럽게 그림으로 표현하며 심리적 고통을 극복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려는 노력인 셈이다.
일부 교사들도 미술치료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제자와 학부모들의 슬픔을 보듬느라 아픔을 삭여온 교사들이다.
정신건강 상담에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학생은 한 반에 2∼3명 정도로 파악됐다.
미술치료 프로그램에서 고위험군으로 의심되는 학생은 이보다 많다. 고위험군 학생의 그림은 완성도가 낮은 특징을 보인다.
상당수 학생은 상실감, 의욕상실, 슬픔 등 심리적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발자국 소리 같은 작은 외부의 접근에도 민감한 상태여서 미술치료팀은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김 교수는 “PTSD 증세를 겪으면 이야기를 잘 하지 않고 당시 상황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아동·청소년기의 외상 경험이나 대리 외상은 적절한 시기에 치료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신건강이 취약한 상태로 성장해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임상미술치료는 심신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그룹 또는 1대 1 미술활동을 통해 심리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방법으로, 간접 피해자들에게 긍정적인 자아 개념을 갖게 하고 자기통제 능력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팀은 2003년 성폭력 피해 환자 치료 이후 천안함 사건 유족, 연평도 포격 피해 주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소방 고가사다리차 추락 사고 목격 어린이, 구제역 살처분 참여 군인과 공무원, 동일본 대지진 피해 일본인 등에게 미술치료를 적용하고 연구사례를 발표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