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관료는 협회 등 각종 사업자단체에서 수억원의 연봉과 퇴직후 생활을 보장받는 대신 ‘로비스트’ 역할을 맡고, 현직 관료는 자신의 퇴임후를 감안해 로비에 귀를 기울이는 ‘유착’관계가 수십년째 지속되는 것.
23일 정부 각 부처와 협회, 업계 등에 따르면 사업자 중심의 각종 이익단체에는 정부부처와 처, 청 출신의 전직 관리 수백명이 활동하고 있다.
‘낙하산 인사’ 논란으로 공기업 진출이 제약을 받자 협회 등으로의 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 여론의 도마위에 오른 해양수산부 출신의 경우 산하 공공기관 및 단체 14곳중 11곳에서 기관장을 맡고 있다.
해운회사들의 이익단체로 여객선사에 대한 감독권을 갖고 있는 한국해운조합은 역대 이사장 12명 가운데 10명, 선박검사 업무를 위탁받은 사단법인 한국선급은 11명중 8명이 해수부 출신이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권한을 준 민간인증기관 10곳에는 모두 이 부처 출신들이 회장, 원장, 부위원장, 부원장 등 주요 보직을 꿰차고 있다.
출신 직위도 사무관에서 1급까지 다양하다.
인증을 받아야 공공입찰에서 유리한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여러개의 인증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개당 수천만원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금융투자협회는 사업자단체임에도 업무질서 유지 및 투자자보호, 장외시장 관리, 분쟁자율 조정 등 투자자와 관련된 자율 규제를 수행하는데, 기획재정부와 금융감독원 출신이 상근부회장과 자율규제위원장을 맡고 있다.
정부에서 위탁받은 업무는 없지만 사업자단체의 주요 보직에 앉은 관료출신도 수두룩하다.
이들은 출신 부처 후배들을 상대로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스트에 가까운 활동을 한다는게 업계의 시각이다.
관련 단체가 수백개에 달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대표적이다.
회장, 부회장, 사무총장, 전무 등으로 활동하는 주요 임원만도 대한상공회의소, 자동차산업협회 등 58곳에 이른다.
제약업계와 식품업계의 협회들은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출신 몫이다.
연봉이 높기로 소문난 전국은행연합회, 손해보험협회, 생명보험협회, 화재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중앙회 등 금융계 사업자단체는 기재부와 금융위원회, 금감원 출신이 주요 보직을 싹쓸이하고 있다.
건설업계 사업자단체에는 7명의 전직 국토교통부 출신이 활동중이다.
문제는 이러한 관계가 시장에서 사업자들의 공정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 피해가 없도록 관리감독해야 하는 정부 기능의 후퇴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드러난 ‘해피아’(해수부+모피아 합성어) 문제나 카드대란, 저축은행 사태 등은 사업자들의 요구를 정부가 충분한 검 토 없이 받아들여 빚어졌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민병두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카드대란 등은 부실한 금융감독과 사업자 중심의 규제완화가 빚어낸 금융소비자 피해의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협회 같은 곳에는 규제가 없고 알짜 자리가 많다. 정부가 창이라면 퇴직관료는 방패역할을 한다”며 협회 등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공직자윤리법 17조에 보면 퇴직공직자의 사기업체 관련 취업제한 규정은 ‘사기업체의 공동이익과 상호협력 등을 위해 설립된 법인·단체’로 애매하다.
그나마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위임한 사무를 수행하는 협회 등은 취업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