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영국은 진화 중…'보편적 복지서 선택적 복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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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거리를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사진= 영국 기획취재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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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연금노동부에 한 노인이 들어가고 있다. |
런던(영국)/아시아투데이 김종원·이정필 기자 = 영국은 1942년 11월 세계에서는 가장 먼저 비버리지 보고서를 통해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보편적 복지를 기본으로 탄탄한 사회안전망을 다졌다. 아직도 ‘복지 국가의 아버지’ 나라라는 찬란한 유산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복지’에 대한 지출이 누적되면서 국가 재정 건전성과 국가 신인도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개인 부담과 시장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선택적 복지 유형이 점점 가미되고 있다.
가파르게 고령화사회를 맞고 있는 한국 사회에 주는 교훈과 함께 영국은 고령화시대를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지 영국 현지 취재를 통해 자세히 알아본다. 여전히 한국사회의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보편적 복지와 선택적 복지 모델을 넘어 우리 사회가 가야할 바람직한 길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 <편집자 주>
영국은 정부 예산의 67%를 보건복지와 교육 부문에 투자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질병과 빈곤, 무지, 사고, 산재 등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했다. 국민들이 극빈층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회적 그물망을 단단히 엮어 놓고 있다.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보편적 복지의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무상의료(NHS) 서비스다. 아이를 낳으면 잘살든 못살든 소득에 관계없이 아동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국민들의 최저 기초생활을 보장하는 1인1연금과 함께 다양한 소득연계 연금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하지만 이처럼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은 적지 않은 부담을 떠안고 있다. 국민들의 조세 부담률이 30.3%나 되며 사회보장 부담율까지 더한 국민부담률은 37.1%다. 설상가상으로 2008년 전 세계에 불어닥친 경제위기 이후 국가부채가 GDP의 40%대에서 최근 80%대까지 악화됐다.
◇ 방만한 NHS 공무원 감축과 경쟁원리 도입
무엇보다 방만한 NHS 시스템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전 세계에서는 중국군, 월마트, 인도 국영철도에 이어 가장 많은 150만명의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그것도 정부 공무원들로 ‘NHS 정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전형적인 비효율적 다층관료주의다. 급기야 지난달 2만명 이상의 직원을 감축했다. 자기가 사는 동네 병원보다 잘하는 다른 병원도 선택할 수 있는 경쟁원리를 도입했다.
NHS 제도가 생긴 이래 가장 큰 폭의 개혁을 단행했다. 보건부 장관이 직접 운영하는 산하기관들도 전문가 집단이 관리 운영하도록 완전 위임했다. 경제 위기로 긴축 재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영국 정부는 연간 200조원 가까이 되는 NHS 예산은 물론 해마다 4~5%, 약 10조원 자연 증가하는 지출을 감당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영국 NHS 제도는 보건부 아래 전략보건층이 있고 또 그 밑에 1차진료의원회가 있어 병원 진료비를 조사하는 행정관료들이 많다. 동네 의원급에서 환자를 병원에 의뢰해 줘야만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의료비가 무상에 가깝기 때문에 병원 입원 대기 시간만 평균 5.7주이며, 병원 외래 진료도 3.2주는 기다려야 한다.
◇ 국민연금제도 효율적 통합…개인 부담은 확대
국민연금제도는 정부 부담을 줄이고 국민이 좀 더 책임지는 방향으로 수술하고 있다. 세계적인 연금개혁 추세가 세금을 더 거두어도 혜택을 줄이는 것인데, 영국은 이미 많이 걷어 놓았기 때문에 더 줄여서 줄 수 없어 연금 지급 시기를 늦추었다. 연금수령 기간도 자동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특히 사회적 합의를 통해 2011년 법적 정년인 65살을 폐지해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강화했다. 노령 인구의 고용을 촉진하고 있다. 좀 더 나이가 들어서도 일을 하게 돼 은퇴와 연금 수령 시기의 격차가 줄어 정부국민 모두 부담을 덜게 됐다.
영국은 2010년 기준 남성이 은퇴하는 평균 연령이 64.6살이며 여성은 62.3살이다. 은퇴 연령은 국민연금 지급 연령과 밀접히 연동돼 있다. 국민기초생활 연금을 현재 남자가 65살, 2020년에는 66살, 2026~2028년에 67살로 수령 시기를 점차 늦추고 있다. 여자들은 60~61살에서 2018년 65살, 2020년 66살로 올려 남자와 동일하게 조정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그해 국민연금을 걷어 그해 지급하고 있어 더 많이 줄려고 해도 더 줄 돈이 없다. 돈을 더 걷든 덜 주든, 아니면 지급 시기를 뒤로 늦추든 해야 한다. 결국 지급 기간을 늦추는 방향으로 개혁했다.
영국 국민연금의 큰 틀은 1인1기초연금에 더해 근로자 소득 연계의 이중 수혜 구조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2016년 4월부터는 소득비례 연금을 완전 없애고 무조건 35년 동안 가입하면 1주일에 142.75 파운드 기초연금을 주는 단일 연금체계로 통합한다. 지난해 10월부터는 15만명 이상의 사업자의 경우 의무적으로 퇴직연금에 가입해야 하며 2017년 4월부터는 1인 이상 사업장까지도 퇴직 연금을 자동 등록해야 한다.
또 부족한 수입을 지원하거나 경증 장애인, 근로자, 보육, 세금 공제 등 6개로 나눠져 있던 각종 수당도 실질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보편적’ 수당으로 통합했다. 부당 수급자가 생겨 중산층 소득보다 더 많은 수당을 받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수급자 책무도 신설했다.
가족 중에 치매나 장애인, 노인, 가정 주부, 아동을 돌보기 위해 노동시장에 진출하지 못하는 국민들을 위해 돌봄 기관에 종사하는 노동자와 똑같은 연금혜택도 주고 있다.
◇ 지속가능한 복지제도와 서비스 질 제고
영국은 근본적으로 노후돌봄의 사회다. 지역 사회를 중심으로 사회 돌봄 요양보호사가 67만명이나 있다. 치매에 걸렸거나 생을 마감할 때도 인간으로서 존귀함을 지킬 수 있도록 복지제도가 잘 정비돼 있다.
다만 시설이나 재가 장기요양을 받는 노령자들이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 집을 팔아야 하는 문제가 한해 수 천건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2016년 4월부터는 7만2000파운드가 넘는 요양 비용은 정부가 전액 부담하고, 그 이상은 개인이 부담하는 사회복지 개혁을 지난 3월 발표했다.
영국 정부는 갈수록 장기 요양서비스 질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회서비스품질위원회(CQCcare quality commission)를 보건부 산하에 두고 보건 의료와 함께 서비스 질을 철저히 관리 감독하고 있다. 사실 영국 북부에서는 2005년과 2008년 노인 장기요양 환자들을 비위생적으로 보호하다 수백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CQC 수석병원조사관 제도를 도입했다.
모든 국민은 아이를 낳으면 1자녀당 만 15살이 될 때까지 주당 20.3파운드, 둘째는 13.4파운드를 준다. 자녀가 둘이 있는 경우는 15살까지 한해 1752.4파운드로 우리 돈으로 매월 25만원을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1월부터는 상위 15%의 고소득층은 전액 또는 일부를 삭감했다.
영국에서는 동네 곳곳마다 복지전달 체계를 과감히 개혁한 잡센터플러스(Job center plus)를 거미줄처럼 연결해 놓고 있다. 지역마다 일자리(Job) 주선과 복지(plus) 상담까지 해 주는 획기적인 서비스 전달망을 구축하고 있다.
제레미 헌트 영국 보건부 장관은 노령화사회 대책에 대해 “노인들은 더 이상 우리 사회의 시한폭탄이나 황혼의 쓰나미가 아니다”면서 “보다 나은 노후생활과 우리들의 삶을 위해 보건의료와 복지시스템을 개혁해야 하는 중대한 고비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 ‘치매와의 전쟁 선포’ G8까지 국제공조
영국 정부는 지난해 3월 치매와의 전쟁을 전격 선포했다. 카메론 총리가 직접 나서 범정부·범사회적 치매대책을 세우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와의 협력 강화도 주도하고 있다.
영국은 1970년대 암, 1980~90년대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와의 전쟁에 이어 특정 질병인 치매와의 전쟁을 선언했다. 현재 영국의 치매 환자는 80만명이다. 2020년이 되면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치매로 인한 사회경제적 부담이 10년마다 2배씩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NHS가 치매 환자 진단과 수용, 치료, 약값에 투입하는 비용만 우리 돈으로 40조원이 된다. 2015년까지 치매 조기진단 성공률을 지금의 42%에서 80%까지 끌어 올릴 계획이다. 치매 연구비도 2배로 늘리고 치매 친화적 공동체도 전국적으로 구축키로 했다.
카메론 총리는 지난 15일 주요 선진 8개국(G8)을 통한 치매대책 국제 공조를 전격 제안하면서 “치매는 단지 환자에게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절망적인 질병”이라면서 “우리들의 가족과 공동체, 의료체계, 비용 측면에서도 막대한 피해를 초래하고 있다. 치매 연구와 진단, 치료 향상을 위해 국제사회가 다함께 노력하자”고 촉구했다.
영국의 미래 세대인 젊은이들은 사회보장과 복지제도 개혁에 대해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정부가 비효율적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정작 필요한 부분에는 손을 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스코틀랜드 출신인 베네딕트 도커티씨(27)는 “국가건강서비스(NHS)의 경우 지난해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기념될 만큼 많은 영국인들이 '국가적 종교'의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개인적으로 영국이 미국처럼 방위비가 아닌 NHS와 복지제도에 재정운용의 초점을 두고 있는 점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고가 치료 수요 급증과 비만, 장년층의 인구 증가로 재정운용에 점차 부담이 되고 있다”면서 “스칸디나비아 지역을 비롯한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복지제도가 비효율적으로 운용되는 점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잉글랜드 중부 허더스필드에 사는 앤디 머튼씨(32)는 “영국이 실질적으로 복지에 투자하는 비용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보다 적다”면서 “방만한 은행 운영으로 인한 재정 손실이 훨씬 크지만 누구도 그것을 개혁하려 하지는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치권이 정작 개혁이 필요한 금융권은 손대지 않은 채 일반 주민들의 생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복지 재정의 규모 삭감에만 열을 올린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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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보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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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시내에 위치한 잡센터플러스 |
<‘맞춤형 복지, 영국에서 길을 묻다.’ 해외 기획취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을 받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