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모 도케누키지죠와 일본 할머니들의 쇼핑 명소로 유명하다. /사진=정지희 기자 |
바로 고령자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이른바 ‘할머니들의 하라주쿠’, 스가모 토게누키지죠가 이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전철 역사는 다른 야마노테선 역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스가모 토게누키지죠로 가는 길목 여기저기엔 고령자를 위한 배려가 가득하다.
일단 역 앞에 위치한 맥도날드 안을 들여다보자. 입구부터 나이 지긋한 손님들로 인산인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패스트푸드를 즐기지 않는다는 상식이 깨지는 순간이다. 왜일까? 스가모 맥도날드 만의 한정 메뉴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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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 역시 일반 메뉴판과 다르다. 영어로 된 메뉴 위에 친절하게 일본어 설명이 첨가돼있다. 예를 들어 치킨 맥 너겟의 경우, '닭고기 튀김'이라고 굵은 글씨의 일본어가 써져 있다. 또 1층은 모든 좌석이 노약자 우선석이다.
이런 배려들 때문에 햄버거를 잘 먹지 않는 고령자들도 스가모에 오면 맥도날드를 꼭 들른다고 한다.
횡단보도를 건너 몇 발자국 더 걸으면 노인들의 천국 '토게누키지죠'의 간판이 보인다.
800m의 기다란 거리 양쪽으로는 옷가게, 건강식품점, 잡화점, 야채가게 등 약 200개의 점포가 쭉 늘어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할머니들을 위한 외출복, 속옷, 지팡이, 전통과자 등 동네 대형 슈퍼나 백화점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물건들이 이 곳에 모두 모여 있다.
도케누키지죠 상점 대부분은 고령자들을 위한 제품을 파는 곳이다. |
'할머니들의 하라주쿠, 스가모 토게누키지죠의 현상학'의 저자 카와조에 노보루 씨에 따르면 NHK가 지난 1986년 스가모 지조도리 상점 거리를 노인의 거리라고 표현한 이후로 보고 있다.
또 이 거리에는 지난 1596년 세워진 토게누키 지죠 고간지(이하 고간지)라는 유명한 절이 있다.
실수로 바늘을 삼킨 한 여인이 불상 앞에서 물을 마신 후 바늘을 토해내서 고간지의 불상에 '토게누키 지죠(가시를 뽑아주는 지장보살)'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풍문이다.
때문에 질병을 없애고 건강을 기원해준다는 곳으로 소문이 나 옛부터 할머니들이 많이 몰렸다고 한다.
세 번째로는 지난 1969년 오픈한 대형 유통마트 세이유 스가모점이 고령자를 타깃으로 한 전략을 내놓으면서 유명세를 탔다는 속설이다.
하지만 기자가 보기엔 역시 구석구석 빈틈없는 '배려' 전략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우선 차도와 인도의 구분하는 턱을 찾아볼 수 없다. 고령자, 장애인들을 위해 시 관계자와 상인들이 협력해 완전히 없앤 것이다. 차도 사람도 자전거도 모두 평지로 통행한다.
또 모든 점포들이 물건의 가격표를 노인들이 알기 쉽도록 큼직하게 써 놨다. 거리 중간에는 고령자들이 쉴 수 있도록 의자와 테이블을 놔뒀다.
가격표는 고령자들이 알아보기 쉽게 큰 글씨로 쓰여 있다. |
음식값도 바로 옆 동네인 이케부쿠로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싸다. 때문에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은 고령자들도 이 곳에선 부담 없이 푸짐한 한 끼를 즐길 수 있다.
야후 재팬 블로거 케코진에 따르면 보통 750~800엔 수준인 임연수어 구이 정식을 스가모에선 450엔(약 5700원)에 맛볼 수 있다.
때문에 최근에는 토게누키지죠를 찾는 가족 단위의 고객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일본 경제 주간지 다이아몬드 최근호는 도시마구 제1의 상업지구로 바로 이 스가모를 꼽았다.
스가모가 세이부백화점, 토부백화점 등 고층건물이 밀집한 이케부쿠로보다 상업시설의 밀집도가 높다는 게 다이아몬드의 설명이다.
또 이케부쿠로 역 부근 지하 상점들의 매출액은 몇 년새 하락세를 보이는 반면 이 곳은 최근 5년간 무려 15%나 상승했다.
어쨋든 도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 곳에 들러 쇼핑하고 식사하고 하루 일과를 보내는 게 즐거운 일상이 됐다.
이미 2000년 '고령화 사회'의 문턱을 넘고 2018년이면 '고령사회'에 도달하는 한국. 하지만 우리네 고령자들은 딱히 갈 곳도 즐길 곳도 없는 게 현실이다.
전통과 배려를 조화시켜 고령자들만의 특화 전략으로 성공한 스가모 거리가 부러움이 아닌 절실함으로 다가서는 건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