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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노인 거리, 스가모 직접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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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주 기자

승인 : 2013. 01. 30. 09:19

* 저렴한 가격과 배려로 고령자뿐 아니라 모두에게 인기
스가모 도케누키지죠와 일본 할머니들의 쇼핑 명소로 유명하다. /사진=정지희 기자

도쿄(일본)/아시아투데이 조은주 기자 = 일본 도쿄 중심을 순환하는 JR 동일본 야마노테선, 스가모 역. 신주쿠나 이케부쿠로처럼 사람들의 왕래가 많거나 환승이 겹치는 대형 역사는 아니지만 일본에서 이 곳은 색다른 장소로 꼽히고 있다.

바로 고령자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이른바 ‘할머니들의 하라주쿠’, 스가모 토게누키지죠가 이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전철 역사는 다른 야마노테선 역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스가모 토게누키지죠로 가는 길목 여기저기엔 고령자를 위한 배려가 가득하다. 

일단 역 앞에 위치한 맥도날드 안을 들여다보자. 입구부터 나이 지긋한 손님들로 인산인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패스트푸드를 즐기지 않는다는 상식이 깨지는 순간이다. 왜일까? 스가모 맥도날드 만의 한정 메뉴가 있기 때문이다. 

스가모 맥도널드 매장 전경. 
우선 음료수의 사이즈가 대, 중, 소로 나눠져 있다. 음료를 잘 마시지 않는 고령자들을 위해서다.  

메뉴 역시 일반 메뉴판과 다르다. 영어로 된 메뉴 위에 친절하게 일본어 설명이 첨가돼있다. 예를 들어 치킨 맥 너겟의 경우, '닭고기 튀김'이라고 굵은 글씨의 일본어가 써져 있다. 또 1층은 모든 좌석이 노약자 우선석이다. 

이런 배려들 때문에 햄버거를 잘 먹지 않는 고령자들도 스가모에 오면 맥도날드를 꼭 들른다고 한다. 

횡단보도를 건너 몇 발자국 더 걸으면 노인들의 천국 '토게누키지죠'의 간판이 보인다. 

800m의 기다란 거리 양쪽으로는 옷가게, 건강식품점, 잡화점, 야채가게 등 약 200개의 점포가 쭉 늘어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할머니들을 위한 외출복, 속옷, 지팡이, 전통과자 등 동네 대형 슈퍼나 백화점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물건들이 이 곳에 모두 모여 있다. 

도케누키지죠 상점 대부분은 고령자들을 위한 제품을 파는 곳이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스가모가 '노인들의 천국'이 됐을까? 몇가지 속설이 있다. 

'할머니들의 하라주쿠, 스가모 토게누키지죠의 현상학'의 저자 카와조에 노보루 씨에 따르면 NHK가 지난 1986년 스가모 지조도리 상점 거리를 노인의 거리라고 표현한 이후로 보고 있다.    

또 이 거리에는 지난 1596년 세워진 토게누키 지죠 고간지(이하 고간지)라는 유명한 절이 있다.

실수로 바늘을 삼킨 한 여인이 불상 앞에서 물을 마신 후 바늘을 토해내서 고간지의 불상에 '토게누키 지죠(가시를 뽑아주는 지장보살)'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풍문이다. 

때문에 질병을 없애고 건강을 기원해준다는 곳으로 소문이 나 옛부터 할머니들이 많이 몰렸다고 한다. 

세 번째로는 지난 1969년 오픈한 대형 유통마트 세이유 스가모점이 고령자를 타깃으로 한 전략을 내놓으면서 유명세를 탔다는 속설이다.

하지만 기자가 보기엔 역시 구석구석 빈틈없는 '배려' 전략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우선 차도와 인도의 구분하는 턱을 찾아볼 수 없다. 고령자, 장애인들을 위해 시 관계자와 상인들이 협력해 완전히 없앤 것이다. 차도 사람도 자전거도 모두 평지로 통행한다.  

또 모든 점포들이 물건의 가격표를 노인들이 알기 쉽도록 큼직하게 써 놨다. 거리 중간에는 고령자들이 쉴 수 있도록 의자와 테이블을 놔뒀다. 

가격표는 고령자들이 알아보기 쉽게 큰 글씨로 쓰여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점원들은 지나가는 행인들에게도 차와 의자를 제공하며 말을 건네고 고령자 손님이 많은 특성을 감안해 소지품, 분실물들도 모두 보관해준다.

음식값도 바로 옆 동네인 이케부쿠로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싸다. 때문에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은 고령자들도 이 곳에선 부담 없이 푸짐한 한 끼를 즐길 수 있다.

야후 재팬 블로거 케코진에 따르면 보통 750~800엔 수준인 임연수어 구이 정식을 스가모에선 450엔(약 5700원)에 맛볼 수 있다. 

때문에 최근에는 토게누키지죠를 찾는 가족 단위의 고객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일본 경제 주간지 다이아몬드 최근호는 도시마구 제1의 상업지구로 바로 이 스가모를 꼽았다.  

스가모가 세이부백화점, 토부백화점 등 고층건물이 밀집한 이케부쿠로보다 상업시설의 밀집도가 높다는 게 다이아몬드의 설명이다. 

또 이케부쿠로 역 부근 지하 상점들의 매출액은 몇 년새 하락세를 보이는 반면 이 곳은 최근 5년간 무려 15%나 상승했다. 

어쨋든 도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이 곳에 들러 쇼핑하고 식사하고 하루 일과를 보내는 게 즐거운 일상이 됐다. 

이미 2000년 '고령화 사회'의 문턱을 넘고 2018년이면 '고령사회'에 도달하는 한국. 하지만 우리네 고령자들은 딱히 갈 곳도 즐길 곳도 없는 게 현실이다. 

전통과 배려를 조화시켜 고령자들만의 특화 전략으로 성공한 스가모 거리가 부러움이 아닌 절실함으로 다가서는 건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조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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