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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100세 시대] 우리 아버지가 놀지 못하는 3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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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남 기자

승인 : 2013. 01. 01. 18:25

* 생각해본 적도, 공간도, 인프라도 없어...'여가 3無'

김택수 씨(25)는 아버지 김준수 씨(58)를 보면 답답하다. 모아둔 돈은 많은데 쓰질 않는다. 보릿고개를 넘으며 산 어린 시절 절약이 몸에 밴 탓일까? 즐기는 것을 죄악처럼 여기신다.

"나가면 다 돈이여, 집에서 TV나 보고 이렇게 살다 가는 겨." 돈을 물 쓰듯 쓰라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좀 즐기면서 살라는 건데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TV 다큐멘터리에서 같은 나이의 일본인 다나카 노조미 씨와 미국인 서든 브라운 씨의 인생이 소개되고 있다. 여가를 즐기면서 동시에 배우고 새로운 사업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들의 인생은 갓 잡은 숭어처럼 팔짝팔짝 뛴다.

한국의 아버지들은 왜 즐기지 못할까? 이런 태도는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까?

일본인 다나카 노조미 씨와 미국인 서든 브라운 씨가 활발한 활동을 벌일 수 있었던 이유는 3가지로 압축된다. 정부차원의 지원, 민간이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의 활성화, 여가를 즐기는 것이 새로운 생산의 기초가 된다는 '휴(休)테크'의 확립이 그것이다. 

# "띠링띠링~."

새벽 6시. 기상하자마자 자전거를 타고 30분 거리에 있는 고토엔이라는 사회복지시설로 달려가는 다나카 씨.

음악소리에 맞춰 아이들과 함께 운동을 하고나면 다나카 씨는 아이들의 땀을 닦아주느라 바쁘다. 아이들은 다나카 씨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간다.

방에는 다나카 씨 또래와 아이들이 뒤섞여 있다. 서로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보다 더 끈끈해 보인다.

고토엔은 쉽게 말해 어린이집과 베이비부머들을 위한 공간이 함께 있는 곳이다.

처음에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이곳에 맡기는 걸 꺼려 베이비부머들의 수가 아이들보다 많았지만 지금은 보육 효과를 본 부모들이 입소문을 내줘 인기가 높다.

다나카 씨는 여기서 약간의 돈을 받고 있지만 아이들 과자를 사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그렇지만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자체가 삶의 활력이다.

저녁이 돼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하나 둘 사라지면 다나카 씨는 다시 '유유치테키(悠友知摘)' 카페로 향한다. 이곳은 ‘배우고 교류하며 활용하는’ 나고야 최초의 골든 에이지 복합문화공간이다.

구인·구직정보도 나와 있고 창업 컨설팅도 구체적으로 해준다.

유우지적까페에서는 교육과 여가, 강의, 창업취업 컨설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출처=구글

다나카 씨가 이곳에 자주 들르는 이유는 새로운 사업을 함께할 '동지'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간 교류가 많고 관심분야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뜻이 맞는 사람을 찾기가 쉽다. 또 바로 컨설팅해주는 전문가가 있어 원스톱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이런 곳은 '유유치테키' 말고도 '르누아르 카페' 등 다양한 이름으로 일본 곳곳에서 정보를 주고 있다.

다나카 씨는 이곳에서 만난 미즈리 씨와 골든 에이지 멀티숍 창업을 구상하고 있다.  골든 에이지가 많아지고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들이 필요한 상품만 전문적으로 파는 숍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를 위해 프랑스로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프랑스에는 이런 멀티숍이 많아 사전 조사를 위한 최적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에서 본 주름방지용 비누는 효과가 어떤지 꼭 하나 사오고 싶다. 

동선을 최소화하고 더 많은 자료를 얻기 위해 여행 일정은 클럽투어리즘에 맡겼다.

다나카 씨가 이런 활동을 활발히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시행한 정년 연장으로 5년간 일을 더 할 수 있어 목돈을 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5년간의 준비 기간이 더 주어진 것도 도움이 됐다.   


# 미국에 사는 서든 브라운 씨의 생활도 비슷하다. 정부가 운영하는 '국립 창의적노화센터' 에서 보내주는 레터가 늘 많은 정보를 준다. 

로드 스칼라에 참여해  미네소타 대학 '공부하며 여행하기'프로그램을 마친 참가자들이 수료증을 들고 웃고 있다. 출처=미네소타 대학

어제는 엘더 호스텔의 '로드 스칼러'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손자와 함께 여행하고 공부하는 2360 프로그램은 눈에 확 띄었다. 여행도 하고 공부도 하며 외국인들과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는 것도 매력이지만 이런 경험을 손자와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브라운 씨는 아시아로드를 선택했다. 앞으로는 글로벌 중심이 미국과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기 때문이다. 

손자가 주역이 돼 살아가게 될 미래에는 아시아를 모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가기 전에 의사소통을 위해 중국어는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자와 함께 찾은 곳은 집에서 1시간 떨어진 '매더카페플러스'다.

이곳에서 하는 언어 강의는 내용도 좋고 가격도 저렴하다. 골든 에이지들을 위해 따로 만든 카페라 또래들도 많고 로드 스칼러를 미리 경험한 사람들도 많아 여행 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김택수 씨는 이 다큐를 보면서 왜 아버지와 이들의 삶이 이렇게 차이가 났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김준수씨가 여가에 관심이 없는 이유는 한 번도 여가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여가 경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투자하기 때문이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베이비부머의 주요 관심사가 본인의 건강 외에 자녀에 대한 관심에 몰려있음을 볼 수 있었다. 

둘째, 한국에서도 정부 차원의 베이비부머 지원책과 골든 에이지 카페, 교육공간이 있지만 실제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흥미를 끌 만한 매력이 없다.

주로 민간이 아닌 공공기관에서 복지 개념으로 접근하면서 이것이 시장을 활성화시킬 만한 폭발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도 이들을 '문제'의 영역으로만 봤지 시장을 살릴 수 있는 '히든카드'의 개념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셋째, 인프라도 부족하다. 우선 여가산업의 경우 60대 이상의 해외여행객 규모는 전체의 9%를 차지하지만 고령자에 맞춤화된 여행사는 지난 2011년 현재 실버투어여행사와 실버아시아나 등 2개사뿐이다.

영화관도 일반 영화관(2011년 기준)이 292개인 것과 대조적으로 실버 영화관은 서울에 2개가 전부다.

퓨처 모자이크 연구소 시니어비즈니스 컨설턴트 조한종 이사는 "수요자인 골든 에이지와 공급자인 비즈니스 업체가 결합되면 적극적 홍보와 활동이 이뤄질 수 있다"며 "민간영역으로 골든 에이지 산업이 나오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골든 에이지의 관심사를 잘 정리해 이를 복합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한국형 문화공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추정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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