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가 공장 불법 점거로 생산라인이 멈췄더라도 노조가 회사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림에 따라 가뜩이나 대내외 불투명한 경영여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최근 기업들은 해외에서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를 비롯한 각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와 경쟁심화 등으로 힘겨워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저성장 속 삼중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법원의 잇따른 노조 편향 판결이 나오면서 '사법 리스크'까지 불거지는 상황이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6일 부산고등법원 민사6부는 현대자동차가 2012년 8월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와 지회 노조원들의 불법 쟁의행위로 비롯된 손해액 5억3000만원을 배상하라며 낸 소송의 파기환송심에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민사소송법의 기본 원칙인 '입증책임의 원칙'을 외면했다고 지적한다. 노조 측 책임을 인정한 1심·2심 판단과 달리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파업 후 추가 생산을 통해 부족 생산량이 만회됐다'는 피고의 일방적 주장을 수용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노조가 파업 후 추가 생산으로 부족분이 만회되었는지 여부를 증명해야 하지만 재판 내내 자신들의 일방적 주장을 뒷받침할 객관적 자료를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또한 노조의 불법 쟁의행위로 생산하지 못한 부족 생산량을 만회하기 위한 추가 생산 역시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 관계자는 "불법 파업 종료 후 상당 기간 내 추가 생산을 통해 부족분이 만회되었는지 여부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와도 배치된다"며 "재판부가 민법의 기본 원칙을 도외시했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번 판결을 두고 법원이 증거·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채증법칙'에도 충실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고 객관적으로 타당한 증거를 채택하려면 지켜야 하는 논리칙과 경험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불법 파업이 발생했던 2012년 8월에는 당초 계획보다 1만2700대 적게 생산됐지만 연말까지 계획 기준 3300대가 더 생산됐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연초 세우는 '계획 생산량'은 미확정 목표치에 불과하며 시장 상황에 따라 매월 탄력적으로 운영되는 '운영계획'상 1만6150대가 적게 생산됐다는 점을 적극 입증했다.
피고 측 증인도 실제 운영계획은 계획생산량 대비 수정된다는 취지로 증언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불법 쟁의행위로 인한 부족 생산량이 모두 만회됐다고 결론 지었다.
또한 현대차의 생산방식을 두고서도 재판부는 고객이 원하는 차종·사양을 정하면 그에 맞춰 생산하는 '주문생산방식'이라고 판단했다. 일시적 생산 지연에도 고객이 곧바로 매매계약을 취소하지 않을 개연성이 높고 따라서 매출 감소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취지다.
반면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고객 주문 물량 외에도 다양한 옵션의 차종을 미리 생산해 재고를 확보하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불법 쟁의에 따른 조업 중단 시 생산·판매 차질이 불가피하다. 현대차는 주문생산방식으로 차를 생산하지 않는 점을 다양한 증거를 통해 입증했고 노조 측 증인도 인정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번 판결은 재판부가 자동차 업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결과이며 연초 계획보다는 달마다 바뀌는 상황에 맞게 수정된 수치가 회사의 실질적인 생산 목표"라며 "현대차뿐 아니라 GM 한국사업자 등 다른 자동차 기업들도 노조 등으로 어려움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통상임금 판례 변경에 따른 후폭풍도 기업들의 어려움을 배가시키고 있다. 통상임금으로 인정받는 금액이 늘어나면 이에 연동되는 수당도 증가해 노동자에게는 유리해지는 반면 기업에는 인건비 증가 부담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은 노조에 유리한 결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내수 부진과 수출 증가세 감소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해당 판결로 기업들이 예기치 못한 재무적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며 "우리 기업 경영환경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표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