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복지, 영국에서 길을 묻다 ③ 무상의료·연금제도 손질하는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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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리타 와두와니씨가 20일 영국 햄든 자택에서 휠체어에 앉아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사진= 영국 기획취재팀 |
헨든(영국)/아시아투데이 김종원·이정필 기자 = 어린 시절 아팠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때 밤을 새워 곁에서 간호하며 돌봐준 부모의 모습은 평생 기억에 남게 된다. 그런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여기 부모 같은 나라가 있다. 세상에 태어나 눈을 감을 때까지 지켜주는 나라. 배고프면 먹여주고 추우면 입혀주며 아플 때 보호해주는 나라. 이런 나라의 국민은 든든한 자신감으로 쉽게 흔들리지 않게 된다.
영국의 공공장소를 가면 사람들은 문을 잡아주고 길을 양보한다. 행여나 길을 막으면 바로 ‘sorry’가 튀어나온다. 운전을 해도 크락션 소리를 좀처럼 들어보기 어렵다. 유럽의 전반적인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왜 영국이 변치 않는 선진국인지, 경제가 아무리 발전해도 왜 우리가 개발국에 머무는지 느껴지는 대목이다. 오랜 기간 축적돼 온 영국의 복지 기반은 저력으로 작용해 국민과 호흡하고 있었다.
20일(현지시간) 희귀성 질환을 앓고 있는 날리타 와두와니씨(55·여)를 영국 헨든 그녀의 자택에서 만나 영국의 의료혜택에 대해 들어봤다.
-어떤 병을 앓고 있나.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 중추신경계에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한 만성질환)으로 현재 걸을 수 없고 주로 휠체어에서 생활한다. 영국 등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데 아시아 국가에서는 흔치 않은 질병이다.”
-얼마동안 병을 앓았는지.
“30년 동안 아팠다. 처음에는 크게 상태가 나쁘지 않아서 걸을 수도 있고 뛸 수도 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상태가 악화됐다.”
-이로 인해 정부에서 어떤 혜택을 받고 있나.
“버스나 기차를 무료로 탈 수 있고, 한 주에 80파운드(약 13만5000원)씩 지원을 받는다. 장애인 자동차를 살 경우에는 할인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의료부분 혜택은 어떤 것이 있나.
“의료는 모든 것이 무료다. 일주일에 한 번씩 물리치료를 받는 것과 처방전을 받은 약도 모두 무료로 제공된다.”
-어디에서 치료를 받고 있나.
“전에는 NHS(국가의료서비스, National Health Service)의 한 지역 종합병원인 로열프리 병원에 다녔다. 그러다가 지금은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겨 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핀칠리 메모리얼 병원에 다닌다.”
-질병으로 인해 국가에서 받는 혜택이 더 있나.
“물론이다. 병원에 진료예약이 잡혀있는 경우 무료로 버스를 보내준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가 치료를 받으면 끝난 뒤 다시 버스가 집 앞에 데려다준다.”
-요리와 빨래 등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은 국가가 지원하나.
“나는 그래도 경제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서비스를 받고 있다.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영국인이지만 태생이 인도계 사람이다 보니 현지음식이 먹고 싶어서 인도인을 고용했다. 돈이 없는 사람의 경우 정부에 신청을 하면 심사 절차를 거쳐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돌봄 서비스를 무료로 해준다.”
-정부가 장애인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주는 혜택에 만족하는지.
“세계 어느 나라도 이렇게 전액 무료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치료도 약도 모든 게 다 무료다. 영국의 의료 정책과 서비스는 매우 좋고 편리하다. 환자의 입장에서 100% 만족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무료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국민의 문제라면 어떤 것이라도 챙겨주는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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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리타 와두와니씨의 자택에 설치된 계단 이동 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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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가 설치해준 침대 손잡이 |
-한국의 환자, 특히 가난한 환자들의 현실과는 많이 다른데.
“그건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일반시민이나 특히 노인들에게 문제가 많을 것이다. 정부에서 국민을 위해 뭔가를 해줘야 한다. 영국 정부는 환자가 생각하고 바라는 것보다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것 같다.”
-지금 앉아있는 휠체어도 정부가 제공한 것인가.
“그렇다.”
-개인적으로 살 수도 있었을 텐데.
“더 비싸고 좋은 품질의 휠체어를 살 수도 있지만 정부에서 제공하는 것도 충분히 괜찮고 무료라서 받았다. 개인적으로 사면 금색이나 은색도 있지만 정부에서 제공하는 것은 검은색으로 통일돼 누구나 지원받은 휠체어임을 알 수 있다.”
-정부에서 제공한 것은 또 뭐가 있나.
“침대에서 일어날 때 쓰는 장비인 캐리어를 지원받았다. 욕실과 화장실, 침대에도 정부에서 보낸 사람들이 와서 쉽게 일어나 활동할 수 있는 손잡이를 설치해줬다. 또 위급한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쓰는 비상벨 알람 서비스도 받고 있다. 여기서는 누구나 이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나이가 들고 의지할 곳이 없을 때 이런 정부의 혜택은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것이다.”
-집에는 누구와 함께 사나.
“지금 집으로 5년 전에 이사를 왔다. 시어머니와 남편과 두 아들이 있다. 큰 아들은 30세, 작은 아들은 27세다.”
-아프기 전에 자녀 둘을 출산한 것인가.
“첫 아들을 낳고 나서 질병 진단을 받았다. 그 상태에서 둘째를 낳지만 그 때는 초기라서 괜찮았다.”
-이렇게 질병이 있어도 행복한 것 같다.
“행복해 보이는 것이지 진정으로 행복한 것은 아니다. 아들 둘이 장가갈 때까지 살아있어 그 모습을 보는 것이 희망이다. 진행성 질병이어서 점점 악화되니까 그게 걱정된다.”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장애인이나 몸이 아픈 사람이 기적적으로 나을 수 있는 뭔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정부의 혜택과 배려는 지금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더 바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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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가 설치해준 욕실 손잡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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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에 손잡이가 설치돼 있다. |
<‘맞춤형 복지, 영국에서 길을 묻다’ 해외 기획취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지원을 받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