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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100세 시대] 일하고픈 60대와 노후계획 없는 40대...‘소통 부재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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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주 기자 | 정지희 기자

승인 : 2013. 02. 13. 06:05

* 단절된 두 세대, 단카이 VS 단카이주니어 전격 인터뷰
도쿄(일본)/아시아투데이 조은주·정지희 기자 = 1970~1980년대 고도성장을 이끌어 낸 일본. 그 안에는 일본의 1차 베이비부머, 단카이 세대(1947년~1949년생)가 있다.

단카이란 단어는 일본어로 '덩어리'란 뜻인데 지난 1976년 경제평론가 사카이야 다이치가 소설 '단카이의 세대'에서 사용한 뒤 이 세대를 칭하는 단어가 됐다. 말 뜻대로 흙덩이처럼 뭉쳐져 사회 전반에 새로운 현상을 일으키고 영향을 미치는 세대다.

이들의 파워는 대단했다. 성장기에는 교실증축 붐과 입시지옥이 생겼고 젊은 시절에는 청바지·운동화·패스트푸드가 문화코드가 됐다. 현역으로 가장 왕성하게 일하던 30-40대에는 경제주역으로 성장했고 주택 붐을 일으켰다.

이코노믹 애니멀(경제적 동물)로 불리며 앞만 보고 달려온 그들. 그러나 정년 퇴직의 나이에 접어든 지금 자신들이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정체성을 잃고 있다.

돈만 벌면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상상,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그리고 사회와 가정 내에서의 불화 등이 오히려 이들을 괴롭히는 악재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들의 자녀들로 구성된 '단카이주니어'.

1970~1974년에 태어난 2차 베이비부머인 단카이주니어는 1990년대 일본의 버블 붕괴를 겪으면서 아버지 세대의 회사 중심 노동철학을 거부하고 문화, 소비관념도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르다.

늙었지만 죽지않는 부모와 커가는 자식들을 모두 부양해야 하는 처지지만 윗 세대 만큼 열심히 일하지도, 젊은 세대만큼 전문성도 갖고 있지 않다. 일본의 장기 불황과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희망마저 잃어버렸다.

여전히 왕성하게 일하고 싶은 단카이와 아버지 세대처럼 살고 싶지 않은 단카이 주니어. 가족의 구성원이면서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문제를 일본 사회는 '소통 부재의 벽'으로 보고 있다.

본지는 일본 현지에서 단카이와 단카이 주니어들을 직접 만나 그동안의 삶과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와타나베 마사에(64) - 모델 매니지먼트사 대표
   
"언제까지나 패션을 좋아하는, 반짝반짝 빛나는 할머니로 남고 싶어요."

와타나베 씨는 주식회사 아이스 모델 매니지먼트의 대표다. 지난주 도쿄 미나토구에 위치한 사무실로 찾아가 직접 만난 와타나베 씨는 이순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 시절의 몸매와 미모, 소녀와도 같은 사랑스러움을 지니고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모델로 활동했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모델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학비를 내주지 않겠다"는 부모의 강요에 의해 일을 그만두고 대학 진학을 택했다. 그러나 패션에 대한 열정, 예술적 재능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일하던 시절의 행복과 만족감을 버릴 수 없었던 와타나베 씨는 결국 가족 몰래 다시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됐다.

"모델, 디자이너, 사진작가 등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패션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즐거웠어요.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는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고 싶었지만, 전 대표님의 권유로 지금의 회사를 이어받게 됐죠. 물론 힘이 들 때도 많지만 신인 모델들이 제 밑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요즘은 일반인도 미적 수준이 높아져서 모델 일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역시 프로의 세계는 다르거든요. 경쟁도 상당히 치열하고요."

와타나베 씨에게 일은 생활의 중심이다. 일을 할 때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해서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일에만 매달려 사는 것은 아니다. 와타나베 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친구들과 만나 함께 여가를 즐기고, 가까운 지역으로 여행을 떠나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처음에는 정년을 맞이해 일을 그만두고 국민연금을 받으며 편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불쌍하게 느껴져요. 자식들만을 위해 전업주부로서 일생을 보낸 사람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삶은 너무 지루하잖아요. 일과 취미를 함께 즐기는 것이야말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노후의 모습이에요. 65세를 지나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되더라도 그것만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사실 와타나베 씨가 자신의 노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지는 5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50대 까지만 해도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감각이 무뎠다. 그렇지만 60대에 들어서자 자신도 본격적으로 노후에 대비해야 할 나이임을 실감하게 됐다.

"항상 후배 모델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해 허리를 곧게 펴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젊게 살아 왔다고 자부했는데, 그래도 건강검진을 받아보니 몸 안은 예전만큼 튼튼하지 못하더라고요.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기 위해서라도 건강은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운전을 그만두고 그 대신 많이 걸어 다녔어요. 그랬더니 1년 만에 놀랄 정도로 몸이 튼튼해졌답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활동하는 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는 와타나베 씨지만 언젠가 현역으로 일하기가 힘들어질 때가 올 것을 대비해 미리 양로원을 물색해뒀다. 죽은 뒤에도 타인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자신의 유산과 장례식 등에 관한 모든 사항이 적힌 서류도 미리 작성해 뒀다.

"특히 2011년 3월 11일 일본 대지진 이후로 가치관에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제 주변에서 대지진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죽음이라는 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인 만큼 항상 미리 준비를 해두고, 가능한 한 후회가 남지 않도록 즐겁게 살아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어요."

와타나베 씨에게는 꿈이 있다. 자신의 힘으로 패션계에 새로운 유행을 일으키는 것,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언제까지나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 100% 만족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저 역시 그렇고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펼쳐질 인생은 더 많이 재미있게, 후회 없이 살고 싶어요.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무기력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즐거운 것을 찾으라고요. 자신이 해야할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생이 열릴 거예요."

◇ 아마자키 카츠시 (64) - 엔터테인먼트사 운영
   
무슨 일이 있어도 120살까지 살겠다고 호언장담하는 할아버지가 있다. 얼핏 보기에는 그저 머리가 희끗한 괴짜 같지만 사실은 여러 개의 기업을 거느리고 있는 회장님이다.

일본 도쿄에 거주 중인 아마자키 카츠시 씨는 갖고 다니는 명함만 해도 20여 장이다. 80년대에는 프로 가수로 데뷔해 직접 음반 활동을 했고 이후에는 후배들을 양성하는 프로듀서로 활약했다.

지금은 음반 프로듀싱을 할 뿐만 아니라 드라마 제작, 라이브 하우스 설립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펼치고 있다. 편의점·드럭스토어의 청소·보수 등 시설 관리를 하는 업체인 GFM(글로벌 퍼실리티 매니지먼트, Global Facility Management)도 운영하고 있다. 매일 매일을 그 누구보다 바쁘고 활기차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60살이면 완전히 할아버지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막상 60대가 되고 나니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의 환갑잔치 때 모인 모든 사람들 앞에서 '앞으로 60년을 더 살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어요. 이제 겨우 반밖에 살지 않은 셈이죠. 아직 이루고 싶은 것들이 무척이나 많아요."

도대체 무엇이 아마자키 씨를 이토록 에너지가 넘치게 만드는 것일까. 그는 망설임 없이 젊게 살고자 하는 마음가짐과 일을 향한 열정이 생활의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자신이 일을 함으로써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노후의 삶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에요. 60세에 정년을 맞이해 일을 그만두고 매달 지급되는 국민연금으로 편하게 사는 사람도 있겠죠. 그렇지만 그건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노후가 아니에요.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가엾게 느껴지죠. 죽기 직전까지 세상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만들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게 바로 제가 옛날부터 그려온 제 노후의 모습입니다."

일 하는 것 외에 다른 취미 생활도 즐기고 있는지 묻자 아마자키 씨는 골프와 여행·수영, 그리고 엉뚱하게도 오락실 가기와 한국 역사 공부를 꼽았다. 오락실에서는 주로 경마와 마작 게임을 즐겨한다. 한국 역사는 한류 드라마에 푹 빠져 있는 부인과 함께 '주몽', '대장금' 등의 시대극을 보다가 흥미를 갖고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됐다.

"노인이라고 해서 오락실에 가면 안 될 이유가 있나요?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는 없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즐기면 되는 거죠. 저는 이미 자주 가는 오락실에서 고등학생·대학생 친구들도 잔뜩 사귀었는 걸요.(웃음) 한국 역사는 한국 자체를 무척이나 좋아하다 보니 더 깊은 관심을 갖게 됐어요. 제가 웬만한 한국인보다 한국에 대한 역사적 지식을 더 많이 갖고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이처럼 아마자키 씨는 일과 취미 활동은 물론, 친구들과의 교류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만남은 곧 인생의 전부이자 무엇보다 귀중하게 여겨야하는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자키 씨는 "환갑잔치 때 아들이 저더러 '아버지로서는 최악이지만 남자로서는 최고로 멋진 사람이다'고 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물론 제게 가장 소중한 건 가족이에요. 가족은 인간의 원점이니까요. 제가 아무리 바쁘게 산다고 해도 가족을 완전히 방치해 두고 있는 건 아니에요. 가끔씩 같이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시간이 맞을 때마다 함께 식사를 하죠. 단, 가족을 위해서 일을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일이란 건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혹은 나 자신의 만족감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 자세로 산다면 결국 노후에는 보람보다는 허무함과 후회만이 남을 겁니다."

인생의 뚜렷한 목표와 가치관, 열정을 지닌 아마자키 씨에게서 초고령사회의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는 무연사회·독거노인·고독사 등의 단어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스스로 활기찬 인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덕분이다.

"100세 시대라고요? 아닙니다. 120세 시대가 올 거예요. 인생은 길어요. 그러니까 모두들 매일 매일을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바로 저처럼 말이죠."

◇ 후지사키 마모루(40) - 위탁메이커 판매회사 근무
지사키 마모루 씨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라이브 패션쇼를 개최하고 위탁 메이커를 판매하는 주식회사 ZIP 컨설팅에 근무하고 있다. 고향은 일본 관서 지방의 작은 마을이지만 대학 졸업 후 상경해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현재는 아내와 두 아이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한 사람의 가장이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고령화에 따른 사회보장비용 증가, 저축률 둔화, 빈곤노인 증가, 고독사 등의 문제가 증대되자 젊을 때부터 노후에 미리 대비할 것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후지사키 씨와 같이 실질적인 노후 설계도를 그리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저는 솔직히 지금 하는 일이 즐겁긴 하지만 늙어서도 언제까지나 이 일을 하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애착을 갖고 있진 않아요. 오히려 얼른 은퇴를 해서 한가하게 지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지금 열심히 일을 하며 저축을 하고 있는 거고요. 아내가 저보다 경제관념이 훨씬 투철한 편이에요. 아직 아이들도 어리니까 낭비하지 않고 착실하게 돈을 모을 수 있도록 제 월급을 관리해주고 있어요. 아이들 이름으로 계좌도 만들어놨고요. 제 주변 사람들이요? 글쎄요, 제 나이 때는 다들 무조건 일을 하기에도 바빠서 노후 걱정을 할 여유가 없는 게 현실인 것 같아요."

후지사키 씨가 그리고 있는 노후는 어떤 모습인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고 부탁하자 그의 입에서 '무덤 지키기'라는 생소한 단어가 나왔다. 언젠가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본가로 돌아가 부모님의 무덤 곁에서 생활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은 대대손손 '무덤 지키기'를 하는 풍습이 있어요. 시대가 바뀌면서 요즘은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무덤 지키기'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후에는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생각이에요. 자영업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아요. 그 즈음이면 아이들은 독립을 했을 테니 아내와 오붓하게 여행도 다니고 싶고요. 굳이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손을 잡고 느긋하게 동네를 산책하는 것도 나쁘지 않죠."

사실 과거의 후지사키 씨는 그야말로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많이 모아두는 것이 가족들과 자신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몇 해 전, 그런 그의 생각을 바꾸는 사건이 일어났다. 불의의 사고로 한 명의 아이를 잃게 된 것.

"저는 어린 시절 아버지와 놀았던 기억이 전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 또한 밖에 나가서 열심히 일을 하는 것만이 바람직한 아버지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해 왔죠. 그런데 자식 하나를 떠나보내고 나니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제가 정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어요. 그 후로는 가능한 한 여가 시간은 두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함께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가족 여행도 종종 가고 있고요. 저 혼자만의 취미 생활을 즐길 시간은 거의 없지만 아이들과 같이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기 때문에 불만은 전혀 없어요. 가족보다 소중한 건 없으니까요."

후지사키 씨는 즐거운 노후를 위한 건강관리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1년 반 전 건강검진에서 당뇨기가 있다는 진단을 받은 후 단 음식을 끊고 식단 관리에 들어갔다. 운동도 병행하면 더욱 좋겠지만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며 웃음을 지었다.

"초고령사회라느니, 실버 플랜이라느니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사실 제 또래 주변 사람들 중에는 벌써부터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일단 남들도 다 하니까 막연히 저금을 하고 있긴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둔 후에는 어떤 식으로 살아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는 사람도 많지 않고요. 노후 계획이라는 게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저처럼 미리 아이들을 위한 적금을 들어두고, 은퇴 후에 무엇을 하며 지낼지 전체적인 틀부터 차근차근 구상해나가는 것이 바로 노후 준비 아닐까요."

◇ 우메자와 타카히로(43) - 한류상품 판매숍 경영
도쿄의 한인타운 신오오쿠보에서 지난주 만난 우메자와 타카히로 씨의 첫 인상은 '곧고 강직하다'는 것이었다. 매너와 여유가 묻어나는 말과 행동에서 자신만의 뚜렷한 신념과 가치관을 지니고 착실하게 살아온 사람이라는 인상이 풍겼다.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러한 느낌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우메자와 씨는 현재 신오오쿠보에서 한류 스타들의 사진과 포스터, 한국 화장품 등을 판매하는 숍을 운영하고 있다. 한 정거장 거리인 다카다노바바에는 우메자와 씨 소유의 음식점도 있다.

당초 음식점만 운영하고 있던 우메자와 씨는 그곳에서 한국인 유학생 김혜연 씨를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그리고 2년 전 일본에 거대한 '한류 붐'이 일었을 때 관련 상품들을 취급하는 가게를 내게 됐다.

"베이비 붐 주니어 세대라고 하면 버블 붕괴로 인한 취업난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저는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자영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직접 그런 고통을 겪은 일은 없어요. 주변에는 간혹 경기 불황 때문에 취직도 못하고 독립도 하지 못한 채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도 있긴 했지만요. 저는 운이 좋았던 편이죠. 일반 샐러리맨들보다 생활도 더 자유로운 편이고요. 덕분에 일에 대한 애착도 더욱 갖게 된 것 같아요. 손님들이 기뻐하는 얼굴을 볼 때마다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언제까지 일을 계속하고 싶은지 묻자 그는 "언제까지나 계속하고 싶다"고 즉답했다. 일이 곧 자신의 인생에서 80% 가량의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일을 부정하는 것은 곧 인생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게 우메자와 씨의 생각이다.

"저희 세대가 유년기를 보냈을 때는 지금보다 비교적 경기가 좋았기 때문에 네 명 중에 한 명은 해외 유학을 가곤 했어요. 그런데 부모가 된 지금 저희 세대가 자녀를 유학 보내는 비율은 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더 열심히 일을 하고 저축을 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기보다는 아이들을 위해 쓰고 싶다는 바람이 커요."

그렇다고 우메자와 씨가 자신이 아닌 자녀들만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는 가족들을 위해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자신만의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운동을 워낙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풋살을 즐겨 하고 있어요. 주말에는 가족들이 같이 있어주길 바라기 때문에 주로 평일에 시간을 내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아내가 한국인이지만 부끄럽게도 저는 한국어를 거의 할 줄 몰라서, 조만간 한국어 공부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생각이에요."

그뿐만이 아니다. 우메자와 씨는 다가올 노후, 미래의 삶에 대한 계획도 머릿속에 착실하게 그려가고 있었다.

일본은 보통 20살이 된 시점부터 국민연금을 내기 시작해 25년이 지난 후 본인이 원하는 시기부터 매달 일정한 금액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인이 된 22살부터 연금을 납입해 온 우메자와 씨는 그 연금을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봉사활동에 쓰는 것이 목표다.

"저만의 장사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는 자기개발 캠프를 만들고 싶어요. 지금 함께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동업자와도 그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상태고요. 그리고 저희 아이들이 한일 혼혈아인 만큼, 한국인과 일본인이 보다 적극적으로 친근하게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고 싶어요. 젊을 때는 저와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더 나이가 들어서는 타인을 위해 베푸는 삶을 사는 게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노후예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우메자와 씨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 기대된다며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해야 할 일, 하고 싶었던 일을 모두 이룬 후 눈을 감는 순간의 기분이 어떨지 궁금하다는 이유에서다. 다가오는 노후, 죽음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안고 사는 이들에게 우메자와 씨의 삶은 분명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은주 기자
정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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