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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복 영동농장 명예회장은 "오는 4월 새로운 복지문화재단을 출범해 전 세계 배 굶는 어린아이들을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조준원 기자 wizard333@ |
아시아투데이 전혜원 기자 = “보약은 먹어본 적 없고, 아무 거나 잘 먹고 많이 걷는 것, 그리고 베푸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건강비결이 아닐까 싶네요.”
올해로 팔십대가 된 김용복 영동농장 명예회장(80)은 7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호텔에서 가진 아시아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건강비결을 털어놓았다.
기자와 안면을 튼 지 4년 정도 된 그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오히려 더 젊어진 듯했다. 힘찬 목소리와 생기발랄한 모습은 그의 나이를 믿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평소에도 그와 이메일을 주고받고 전화통화를 하다 보면 웬만한 20대보다 더 원기왕성한 모습과 업무처리의 정확함에 놀라곤 한다.
김 회장은 말 그대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그의 인생 역정은 그 어떤 영화보다 드라마틱하다. 전남 강진에서 지독히 가난한 집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어머니 젖은 물론이고 미음도 제대로 먹지 못할 만큼 배를 곯며 자랐다. 어머니는 그가 세 살 때 세상을 떠났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월사금 4개월치가 밀려 학교에서 쫓겨났다. 그는 17세 때 고향을 떠나 배고픔에 쓰레기통을 뒤지는 등 힘겨운 생활을 하다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로 일했다. 월남전 때는 죽음을 각오하고 베트남에 기술자로 나가 열심히 돈을 벌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벌인 사업이 망했고, 그는 성남에서 150원짜리 설렁탕을 팔며 어렵게 생활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삽 네 자루를 들고 인부 8명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다. 1975년 사막에서 남들은 생각지도 못한 야채 농사를 지어 그곳에 진출해있는 한국인 노동자 15만명에게 공급,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였다. 국내로 돌아와서는 강진군 일대에 황무지와 펄 330만m²(약 100만평)를 개척하고 친환경 농법을 도입해 쌀을 생산했다.
김 회장은 올해 첫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아너소사이어티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 이상을 기부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부는 그가 이제껏 행해온 베풂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다.
그는 1982년 10억원을 출연해 용복장학회를 세웠다. 그는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학생 3명을 이화여대에 보내 공부시킨 것을 시작으로 149명의 장학생을 지원해왔다”며 “그 장학생들이 이제는 판사, 교수 등 사회에 좋은 인재가 돼줘 뿌듯하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2005년에는 사재 100억원을 들여 한사랑농촌문화재단을 만들었다. “농촌과 농업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숨은 애국자들을 찾아 힘을 북돋워 주기 위해 만들었다”는 이 재단을 위해 김 회장은 지난해 서울 중화동에 지하 3층, 지상 15층 규모의 빌딩을 지었다. 그곳에서 나온 100억원에 가까운 분양 수익을 재단에 쓰기 위해서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오는 4월 18일 새로운 복지문화재단을 출범할 예정이다. “서울 강남 학동사거리에 있는 영동농장 본사옥을 사회에 환원해 전 세계 배 굶는 어린아이들을 도울 것”이라고 그는 전했다.
“어린 시절 먹을 것, 가족사랑, 배움 이 세 가지 배고픔에 시달렸다”는 그에게 있어 자신과 같이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베푸는 삶’은 그야말로 행복이다.
지금도 매일 술을 마실 정도로 건강한 체력을 유지하고 있는 그는 노년의 취미생활로 골프도 무척이나 즐긴다.
“골프를 치면 카트를 타지 않고 무조건 걷습니다. 골프 친 뒤에는 생맥주 500CC 두 잔을 멸치안주와 함께 마셔야 됩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웃긴 영감이에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