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100세시대] 건강보험 중증질환에 편중, 고령화 대비 미흡

KDI "고혈압ㆍ당뇨 방치, 사회적 위험관리 위기"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보장성 정책이  암 등 일부 중증질환의 치료비용 보조에 지나치게 편중돼 다른 질환과의 형평성 문제가 커지고, 고령화에 대한 대비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31일 이런 내용의 '고령화를 준비하는 건강보험 정책 방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윤 연구위원은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정책이 인지도 높은 질환을 우선하여 배려함으로써 지지도를 높이는 정치적 이점이 있으나, 질환 간 불형평을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전체 환자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62.7%이나 특례 대상인 암(78.9%)과 심장질환(79.5%), 뇌혈관질환(79.1%) 등은 80%에 육박한다.

특히 의료비 지출이 소득의 10% 이상인 '재난적 의료비'가 생긴 가구에서 위암 환자 가구의 비중은 1.2%지만 골격계 질환(7.1%), 만성 폐쇄성 폐질환(1.1%), 신부전증(1.0%) 등 비특례 대상 질환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해 공적지원의 형평성 문제가 심각하다.

따라서 건강보험 정책은 질환별 접근보다 그동안 확대된 질환 간 보장률 격차를 줄여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인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 방침과 상반되는 국책연구기관의 견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윤 연구위원은 "건강보험은 급속한 고령화 과정에서 심각한 사회적 위험으로 떠오른 만성질환의 사회적 대비에도 미흡했다"며 정책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민건강영양조사(2010~2011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고혈압 유병자가 939만명, 당뇨는 298만명으로 추정된다. 

특히 30세 이상 인구 가운데 고혈압과 당뇨의 비율은 34%로 집계됐다.

오는 2040년에는 고혈압ㆍ당뇨 유병자 규모가 1840만명으로 늘고 30세 이상 유병률은 46.9%까지 급증할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고혈압과 당뇨 유병자 가운데 증상을 적정 수준에서 관리하는 비율은 각각 43.3%, 29.7%에 그쳐 증상 악화와 경제 파탄의 위험을 예고한다고 경고했다.

그가 지난 2010년 복지욕구 실태조사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재난적 의료비 발생비율이 저소득층 가구(하위 30%)의 30.6%, 전체 가구의 16.3%에 이르고 의료비가 소득의 30%를 초과하는 비율도 각각 9.8%, 4.0%였다.

의료비를 마련하려고 전세를 줄이거나 재산을 처분한 가구는 41만가구, 사채 등 빚을 진 가구도 13만가구에 달해, 의료비가 계층 하락의 원인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재난적 의료비 발생 가구 가운데 고혈압 환자 가구는 27.8%, 당뇨는 17%로 다른 질환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는 "고혈압과 당뇨는 방치하면 사회적 위험 관리의 위기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조기 발견과 적정 관리를 전사회적 목표로 설정해 중장기적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건강보험 정책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