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세계 최초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 베이비부머라 불리는 단카이 세대(1947-1949년 출생)의 은퇴와 함께 폭발적 수요가 예상됐던 일본 시니어 비즈니스.
각 기업들은 단카이 세대들의 눈높이에 맞춘 상품과 서비스를 쏟아내고 있지만 고전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이 예측한 '고령 인구=소비 파워'란 법칙은 단순 통계에 의한 추정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닛케이 비즈니스, 토요게이자이 등 일본 언론들은 시니어 비즈니스의 실패 사례를 소개하면서 "시간과 돈의 여유가 많다는 식의 선입견과 향후 100조 엔 규모로 성장할 것이란 예측 만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간 낭패를 볼 확률이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 길고 긴~ 강좌는 'NO'
일본 여행업체 JTB는 지난 2006년 단카이 세대를 대상으로 한 '시니어 칼리지' 강좌를 개설했다. 지역 대학과 공동으로 만든 이 강좌는 국내외에 1~2주간 머물며 교육 과정을 이수하는 시민 강좌다. 하지만 계속된 정원 미달로 결국 3년 뒤인 2009년 폐지됐다.
아오모리 현에 위치한 히로사키 대학은 자연을 테마로 한 시니어 강좌(총 20회)를 마련했지만 2008년 한 해 동안 수강생은 고작 13명에 그쳤다.
2006년 일본의 각 대학들은 이듬해 단카이 세대들의 본격적인 정년을 앞두고 이들을 대상으로 한 강좌를 경쟁적으로 개설했다.
그 이유는 뭘까? 단카이 세대가 18세가 되던 해인 1965년의 대학 진학률은 12.8%로, 사상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그만큼 단카이 세대는 배움에 대한 의욕이 앞선 데다 정년퇴직을 하면 시간적 여유가 늘 것이라고 예측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빗나갔다. 퇴직하는 나이가 됐지만 여전히 현역으로 일하는 단카이 세대가 예상보다 많았던 것이다. 이들은 각 대학이 내놓은 장기 일정의 강좌에 참여할 만큼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다.
비즈니스 솔루션 제공업체 지에프가 지난해 4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60대의 취업률은 33.4%로 70대(9.8%)보다 3배 이상 높다.
안정된 노후를 위해 일하려는 의욕과 배우고자 하는 의욕을 모두 충족시키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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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업체 JTB와 지역 대학이 연계해 만든 시니어 칼리지 홈페이지. 맨 윗줄에는 "2006년부터 시작된 시니어 칼리지가 제반 사정에 의해 중지됐습니다. 지금까지 지원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라고 씌어 있다. /출처=www.sscollege.jp |
또 '65세 이상이 되면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는 통념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2010년 취업중인 60~64세 응답자 가운데 56.7%는 "65~69세에도 계속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나이가 들수록 고용 환경이 더 어려워지지만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을 놓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TIP> 60대는 시간이 많다는 선입견은 버려라.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크더라도 수강 기간이 길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 '고령자용, 노인용'이란 문구에 대한 거부 반응
일본 골프용품 업체 브리지스톤 스포츠는 2년 전 단카이 세대를 겨냥한 신제품 '파이즈(phyz)'를 출시했다.
파이즈는 기존 제품보다 근력 및 유연성을 더한 단카이 세대 전용 제품으로 브리지스톤이 13년 만에 출시한 새 브랜드였다. 업체 측은 은퇴한 단카이 세대들의 뜨거운 호응을 예상했지만 지난해 10월 판매 순위에서 5위를 기록했을 뿐 이후 판매는 저조했다.
업체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인지 연령이 실제 연령보다 10세나 젊은 60대에게 '시니어 전용'으로 공략하는 건 금기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속옷 브랜드 와코루는 60대 여성을 위한 기능성 속옷 그라피의 매출이 줄어들 즈음, 광고 모델을 젊은 외국인 여성에서 단카이 세대 배우인 이토 유카리 씨로 바꿨다.
이토 씨는 이 광고에서는 활기찬 댄스 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광고 카피는 '고령자, 시니어'란 말은 없다. 그냥 '젊음은 아름다운 자세에서'란 문구다.
이후 매출은 급성장했다. 중년 여성을 암시하는 이미지로 동세대 여성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TIP> '고령자용, 노인용' 이란 문구를 쓰지 말고 동 세대임을 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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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카이 세대 배우 이토 유카리 씨가 와코루의 그라피 광고에서 활기찬 댄스 동작을 보여주고 있다. '젊음은 아름다운 자세에서'라는 광고 카피가 눈에 띈다. /출처=와코루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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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별 매장은 있으나마나
대형 백화점 업체인 소고 세이부는 단카이세대의 수요 확대를 예측, 지난 2011년부터 각 지점 구두 코너를 남성과 여성으로 각각 나누고 구두, 운동화, 등산화 등 다양한 제품을 한 곳에서 모두 볼 수 있게 상품을 진열했다. 그러나 매출은 오히려 예년만도 못했다.
같은 해 9월 시니어 전용으로 오픈한 지바 현 카시와 점조차 전년과 비슷한 매출을 기록했을 뿐이다.
세이부 이케부쿠로 본점은 2011년 가을 스포츠 용품 매장 한 켠에 남성화, 여성화 구분 없이 대형 신발 코너를 신설했다. 세이부 관계자에 따르면 부부 동반 고객이 예상보다 많았다.
이를 교훈삼아 소고 가시와 점도 지난해 9월 여성 구두 매장에 남녀 구분 없는 일체형 코너를 설치했다. 그 결과, 부부 동반 고객의 호응을 얻어 전년 대비 2배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부부 공통의 취미는 부부가 함께 정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업체들이 간과한 것이다.
지난 2006년 다이이치 생명 경제연구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공통의 취미를 즐기는 부부는 당시 50대가 33.7%로 60대나 30~40대보다 높았다.
<TIP> 시니어는 부부가 함께 쇼핑하기를 원한다.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매장을 만들어라.
◇ 회원제 교류 카페, 유료는 금물
2006년 초고령 사회 진입을 코앞에 두고 일본에서는 시니어 비즈니스에 대한 수많은 예측이 쏟아졌다. 특히 2001년 39조 엔이던 시니어 비즈니스 규모가 오는 2025년에는 4배나 많은 155조 엔에 이를 것이란 핑크빛 전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이 가운데는 새로운 교류를 원하는 이들만의 공간이 늘어날 것이란 예측도 있었다.
마케팅 컨설팅 업체 프로토 코퍼레이션(이하 프로토)은 이를 바탕으로 나고야에 무료 강좌뿐 아니라 동아리 활동의 장으로 이용할 수 있는 회원제 카페를 개설했다. 반응은 괜찮았다. 한 때 회원수 1500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채산성이 떨어지면서 지난해 10월 말 결국 문을 닫았다.
시니어들이 문화 공간, 교류의 장에 흔쾌히 지갑을 열 것이라고 본 프로토의 오판 때문이었다.
프로토에 따르면 당시 회원의 약 80%는 3000~1만 엔으로 나눠진 세 가지 코스(월정액) 가운데 가장 저렴한 코스를 선택했다. 회원이 점점 줄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가격 할인 등 각종 전략을 내놨지만 충분한 수익을 확보할 수 없었다고 관계자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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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대 DVD·CD 렌탈업체 츠타야가 지난해 7월 60세 이상 고객에게 하루에 한번 무료로 DVD 렌탈 이벤트를 실시했다. /출처=씨넷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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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일본 최대 DVD·CD 렌털업체 쓰타야는 최근 60세 이상 고객에게 하루에 한번 무료로 DVD 렌털 행사를 벌여 효과를 톡톡히 봤다.
쓰타야 홍보 담당자는 "행사 기간 중 60세 이상 신규 회원 등록 수는 평소의 2배에 달했으며 방문객도 50%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사실 이 행사는 지난 2008년의 실패를 교훈삼은 것이다. 쓰타야는 5년 전 60세 이상 고객에게 DVD 렌털 할인 행사를 벌인 바 있다. 그러나 신규 회원 등록은 예년보다 못했고 매출도 전혀 늘지 않았다.
키네마 준보 영화 종합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비디오 렌털을 이용한 적이 없다"고 답한 60대는 35%로 다른 세대의 약 2배에 달했다.
연구소의 나카니시 켄지 씨는 "렌털 경험이 없는 세대에게 할인 행사는 무용지물이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