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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건웅의 세상만사] 당신이 알아야 하는 한·미 FTA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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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11. 12. 15. 18:15

괴담과 진실 사이, 소문의 허와 실 <의료>
신건웅 기자]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돌려 생각하면 말이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정제되지 않은 소문은 무섭다.

다만 진실마저 괴담으로 몰아가 정당한 주장이나 보도조차 못하게 하는 것은 우려스럽다. 가장 기본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엔 독소조항에 이어 괴담과 진실에 대해 알아봤다. 소문의 허와 실이다.

우선 돈으로는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의료와 건강보험 문제에 대해 살펴봤다.

 미국의 의료 현실을 고발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
◇영리 병원의 탄생
‘식코’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 민영보험의 부조리적 폐해와 열악하고 무책임한 의료 제도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가 보여주는 미국의 의료 체제는 잔인할 만큼 돈이 우선한다. 손가락 봉합 수술 하나에 6000만원이 들고, 돈 때문에 치료를 못받아 목숨을 포기한 사람도 있다.

우리도 한미 FTA를 체결하면서 미국처럼 의료체제가 돈에 의해 운영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그 근거의 하나는 ‘의료 민영화’다.

민영화와 함께 국내에 진출한 영리병원의 확산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현재의 건강보험을 무너트리고 의료비를 치솟게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손을 벗어난 의료비는 결국 미국처럼 위내시경은 100만원, 맹장 수술비는 900만원가량이 될 것이라 주장한다.

참고로 현재 국내에서 단순맹장염을 받는 환자가 수술을 받을 경우 건강보험 수가는 200만원가량이다. 이중 건강보험에 가입한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병실료를 제외하고 30만원 내외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국민건강보험제도가 한미 FTA 협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면서 “한미 FTA 반대여론을 결집하기 위해 과장된 소문”이라고 반박한다.

실제 한미 FTA 부속서Ⅱ를 살펴보면 FTA 발효 후에도 한국 정부가 FTA 협정상 의무와 관계없이 규제를 강화할 수 있는 분야를 ‘미래유보’로 명시하고 보건의료서비스를 포함하고 있다.

FTA 발효 후에도 건강보험료나 의료수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것이다.

다만 한미 FTA 24장 최종 규정 부속서에 따르면 이 유보는 현재 영리병원의 설립이 허용된 경제자유구역과 제주특별 자치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현재 경제 자유구역은 인천과 부산/진해, 광양만권, 당진/평택, 새만금/군산, 대구/경북 등 6곳이다. 경제자유구역은 점차 늘어날 가능성도 존재한다.

영리법원은 현재유보 조항에 의거 한번 투자된 자본은 한미 FTA가 철회되기 전까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한국정부가 영리병원의 허가를 취소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영리병원을 취소하거나 의료 정책을 수정할 경우 정부는 병원에 투자한 외국인으로부터 이익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ISD에 제소될 수 있다.

그렇기에 미국처럼 운영되는 영리병원을 허용할 수 밖에 없다. 투자자들은 고급 의료서비스를 내세워 자체적으로 높은 의료비를 정할 것이다. 영리병원이 가격을 인상하면 주변 병원들이 가격을 인상할 확률도 커진다.

그러나 정부는 건강보험 당연 지정제를 거부한 영리병원에 국한된 괴담일뿐 다른 병원들은 의료비 수가 협상이 매년 이뤄지기 때문에 터무니없이 가격이 인상되진 않을 것이라 말한다.

그럼에도 결국 의료비가 폭등할 가능성이 있는 것만은 괴담이 아니라 진실이다.

제주도에서 시민들이 영리병원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다 .
◇국민건강보험의 붕괴
우리나라는 의료보험법을 1963년 제정해 1977년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본격 도입했다. 1989년 7월부터는 지금처럼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을 시행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의 가입은 의료보험법에 따라 의무사항이다. 이에 한국의 모든 병원은 의무적으로 국민건강보험으로 지정돼야 한다. 당연지정제다. 모든 국민도 국민건강보험은 법률에 따라 일정한 법적요건이 충족되면 본인 의사에 관계없이 국민건강보험에 강제 가입된다

국민건강보험 제도는 내부적으로 보험재정 불안과 보험료 인상·진료비 삭감·의료수가 통제 등으로 가입자인 국민들과 의료기관의 불만을 사고 있지만, 세계적으로는 성공한 의료보험 제도로 꼽힌다.

이는 국민건강보험이 사회보험으로서 민간보험과 달리 국가가 개입해 국민건강과 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 각각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부담하고 균등한 급여를 받게 해 소득재분배 역할도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민의 의료비용을 사회연대성 원리에 따라 공동체적으로 해결하는 기능도 가진다.

그러나 FTA 이후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에 세워질 영리병원들은 당연지정제 지정의 예외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으며, 내국인들도 비보험 환자로서 진료할 수 있다.

민간보험에 가입하고 영리병원을 이용하는 사람은 국민건강보험으로부터 혜택을 못받기고 보험금만 지불하기 때문에 건강보험료 인하를 요구하거나 국민건강보험을 이탈하려 할 것이다.

만약 국민건강보험에서 중산층들이 이탈할 경우 건강보험에는 민간보험에 갈 능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만 남게 될 것이다.

결국 국민건강보험의 붕괴는 돈 많고 민간보험에 가입한 사람과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한 사람으로 환자를 나눈다.

병원 입장에서 보면 건강보험 의무가입은 경영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족쇄다. 그동안 병원들은 국가 정책에 따라 정해진 금액 내에서 진료비를 부과할 수 있었고, 환자의 구별을 둘 수 없었다.

당연지정제가 폐지될 경우 병원들은 진료액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고, 비싼 진료로 돈 많은 환자를 유치할 수 있다. 의사들 역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영리병원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의료의 공공성이 무너진다면 결국 건강의 양극화가 커져 계층을 고착시키고, 사회 위화감을 조성할 것이다.

더욱이 현재의 건강보험은 재정과 수가 조절 등 여러 가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보장성 강화 혹은 무상의료로의 이전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FTA 이후 정부는 영리법인에 투자한 외국인의 이익을 침해하는 모든 행정처분에 ISD 제소위험을 지기 때문에 이를 추진할 수 없다.

실제 캐나다의 뉴 브론즈윅 의회는 2004년 4월, 공적 자동차 보험 도입을 지자체 정부에 권고했다. 보험료를 최고 1000달러까지 줄일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민영의료보험상품의 시장 감소로 인한 ISD 제소 우려해 도입을 포기했다.

결국 의료의 민영화로 인해 영리병원이 생기고, 영리병원은 국민건강보험을 해체시켜 민영보험을 활성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이외에도 앞서 독소조항<2>에서 설명한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조항으로 약값도 비싸질 수 있다. 외국 제약업체에서 특허료를 더 받기 위해 무차별 소송을 제기해 카피약의 생산을 늦추고, 약값을 비싸게 팔기 때문이다.

생명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부의 가장 큰 의무는 국민건강증대이다.

만약 국민건강이 산업으로 치부되고 국가가 거래하는 상품이 될 경우 우리는 생명마저 돈으로 계산하는 잔인한 사회에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아무리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거래라도 국민의 건강이라는 마지막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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