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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칼럼] 대선 예비후보의 기업 밸류업 공약을 해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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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4. 24. 17:45

최준선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는 주가지수 5000을 목표로 하는 기업 밸류업 대선 공약까지 발표했다. 그중 주가조작, 시세조종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 합병 시 공정한 기업가치 평가, 쪼개기 상장 시 모회사 일반주주에게 신주 우선 배정 등의 공약은 수긍이 간다.

다만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규정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상법 개정을 재추진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본래 충실의무는 이사가 이사의 지위에서 회사 재산을 편취하여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과 일부 주주들이 주장하는 충실의무는 상법상 이사회의 69개 결의사항과 관련해 모든 주주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되며, 이익을 침해당했다고 생각되는 단 1주의 주주도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식의 충실의무 규정을 둔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도무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번 재표결에서 폐기된 상법개정안 제382조의3 1개 조문에는 '주주', '총주주', '전체주주'라는 3가지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이 세 용어가 어떻게 다르며 같은 주주를 두고 왜 이렇게 표현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만약 이 세 용어가 '총주주'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하나마나 한 개정이 된다. 본래 주주는 회사를 위해 직무를 수행하는 자이고, 회사는 주주로 이루어진 단체이므로, 구태여 이런 표현이 없어도 이사는 회사, 즉 총주주를 위해 직무를 집행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회사(와/또는) 주주'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미국 회사법도 2개 주에 그친다. 판결문에서는 '회사와 주주', '회사 또는 주주'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하지만, 이것도 양자를 대립시키는 표현이 아니라 일체를 표시하는 관용어이다. 상법개정안은 회사와 주주를 일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립되는 개념으로 사용하는 치명적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한국 소액주주들은 미국 델라웨어주 법원 판례를 예로 들면서 델라웨어주 판결에서는 소액주주를 철저히 보호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종래 델라웨어주 법원이 지나치게 소액주주보호에 치중하여, 단 9주를 보유한 테슬라의 소액주주가 일론 머스크를 상대로, 머스크에 대한 회사의 대규모 스톡옵션 부여가 무효임을 주장하는 소를 제기한 사례가 있었다. 델라웨어 상사법원에서 패소한 머스크는 테슬라와 스페이스 엑스의 본사를 텍사스로 이전해 버렸다. 델라웨어 법원의 지나친 경영권 침해 판결에 뉴럴링크도 네바다주로 법인 등기를 변경했으며, 드랍박스 등 여러 기업들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이에 놀란 델라웨어 주지사 맷 마이어(Matt Meyer)의 주도로 델라웨어주 일반회사법(DGCL)을 전면 개정해, 2025년 3월 25일 주지사의 서명 즉시 시행됐다. 개정 법률의 주요 특징은 이전 판례법에서는 지배주주 거래에 대해 엄격한 '전체 공정성(entire fairness)' 기준을 완화해, 이해상충 거래와 무관한 이사 및 주주 다수결로 승인된 안건에 대해서는 '경영판단 원칙(business judgment rule)'을 적용하여 이사가 면책된다고 정하였다. 그리고 주주의 회사 문서열람권을 제한했다. 이 법률 개정으로 한국 주주들이 추앙해 마지않는 델라웨어주 판결들의 과도한 경영권 침해도 장차는 시정되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주주들은 지금도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면 된다. 2024년 삼성물산 합병사건에서 이사의 불법행위를 이유로 삼성물산의 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작년 9월 당시 삼성물산 이사들을 상대로 소를 제기한 바 있다. 우리와 같은 회사법 체계를 가진 일본에서도 이사를 상대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하는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가끔 발생되고 있다. 법률 개정이 능사는 아니다.

다음으로,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이사도 선임될 수 있도록 집중투표제를 활성화한다는 공약이 있다. 집중투표제도를 의무화한 나라는 러시아, 칠레, 멕시코 정도다. 일본도 1950년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했다가 1974년에 폐지하여 현재는 임의규정으로 되어 있다. 일본이 의무화를 폐지한 이유는 주주 파벌 간 대립이 심화되어 이사회 운영이 자주 마비되고, 전문성 없는 자격 미달 이사 선임 사례가 빈번하며, 노조의 영향력 확대, 외국 자본의 경영권 위협 등이 원인이었다. 한국이라고 해서 이런 부작용이 없을 것인가? 도입하든 말든 각 회사의 주주들에게 맡겨두면 충분하고, 이를 국가가 간섭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감사위원 분리 선임 단계적 확대 공약도 문제다. 감사위원은 감사이기 이전에 이사다. 이사 선임에 대주주의 경영권을 박탈하는 것은 대주주의 재산권 침해다.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의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하는 나라도 한국뿐이다. 현재 1명 분리선임도 세계에 유사한 사례가 없다.

상장회사의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소각한다는 것도 문제다. 한국에는 차등의결권제도도 없고 포이즌필도 인정되지 않는다. 유일한 경영권 방어수단은 자사주를 취득해 활용하는 것이다. 과거 법무부 상법개정위원회가 포이즌필 도입을 검토하면서, 자사주로 방어가 가능하므로 포이즌필까지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에 도입이 무산된 바 있다. 이제 남아있는 단 하나의 방어수단마저 뺏겠다는 게 말이 되나. 미국의 다수 주는 자사주는 취득하는 즉시 미발행주식으로 복귀한다. 대신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주지 않는다. 우리처럼 현재의 소지한 주식의 수에 따라 주주에게 안분비례를 할 필요가 없이 아무에게나 신주를 배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한다면 주주의 신주인수권제도를 폐지해야 균형이 맞다.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의 기업 밸류업 공약에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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