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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 서울시오페라단 ‘파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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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5. 04. 15. 08:42

스스럼없이 좁혀진 오페라와 연극 사이의 거리
[세종문화회관] 파우스트_A (25)
서울시오페라단의 '파우스트' 중 한 장면. /세종문화회관
"Rien(무용지물이야)!!!" 노년의 파우스트를 연기한 연극배우 정동환의 강렬한 외침이 무대를 갈랐다. 이번 서울시오페라단의 오페라 '파우스트'는 오페라에 연극을 덧입힌다고 밝혀 시작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57년 차 베테랑 배우 정동환을 캐스팅했다. 정동환이 메피스토로 출연한 2014년 연극 '메피스토'와 파우스트 박사로 출연한 2020년 1인극 '대심문관과 파우스트'를 모두 보았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 동전의 양면과 같은 두 배역을 모두 훌륭히 소화할 만큼, 연기의 스펙트럼이 넓은 이 배우가 오페라에 어떻게 녹아들지가 관심사였다. 연출을 맡은 엄숙정은 원작에는 없는 연극 부분의 대본을 직접 썼다고 한다. 정동환의 한국어 대사는 성악들의 프랑스어 노래와 이질감 없이 잘 어울렸다. 초반에는 다소 과장된 발성이 아닌가 했으나 성악가들이 등장하자 치우침 없이 균형이 맞았다.

[세종문화회관] 파우스트_A (34)
서울시오페라단의 '파우스트' 중 한 장면. /세종문화회관
1막 연극과의 결합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세심한 연출 덕분이기도 하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로 무대디자인을 꼽고 싶다. 신재희는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 오페라에서 무대디자인만으로도 서사의 구현이 가능하게 만드는 디자이너다. 이번 오페라에서도 세종문화회관의 넓은 무대에 허명과 욕망으로 쌓아 올린 지식의 피라미드를 존재감 있게 배치하고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파우스트의 다양한 내면을 표현해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피라미드 모양의 조형물은 각 막마다 다양한 모양으로 변하면서, 조명과 더불어 연출 의도를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파우스트 역의 테너 박승주는 지난 11일 무대에서 가장 빛났던 성악가다. 박승주의 유연하고 우아한 보컬 라인은 프랑스 오페라에 잘 어울렸다. 볼륨은 크지 않았지만, 객석으로 또렷이 전달되는 힘이 있었고 음악 속에 인물의 심리를 담아 전달할 줄 알았다. 박승주의 서정적인 음색은 황수미의 생기 있는 빛깔과 좋은 조화를 이뤘다. 두 사람은 3막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서부터 4, 5막의 격정적 비극까지 서로를 보완하면서 음악적인 견인 역할을 했다. 아리아 '보석의 노래'에서 특유의 화려하고 매끄러운 가창을 들려준 소프라노 황수미는 마르그리트 역할로서는 약간 밝은 음색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비참하게 추락하는 후반부의 모습도 잘 표현해 점차 리릭으로 영역을 넓히는 그의 시도가 무리 없이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문화회관] 파우스트_A (7)
서울시오페라단의 '파우스트' 중 한 장면. /세종문화회관
메피스토펠레스 역의 베이스 전승현도 자연스러운 연기력과 가창으로 선보였고, 발랑탱을 노래한 바리톤 김기훈은 타고난 음색과 볼륨으로 어떤 배역이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역량을 이번에도 보여줬다. 시에벨을 노래한 메조소프라노 정주연은 매우 안정되고 선명한 발성, 탁월한 연기로 바지 역할을 빼어나게 소화했다. 바그너로 출연한 베이스 최공석 또한 중후한 가창에 사소한 부분도 살리는 섬세한 연기로 작품의 완성도에 이바지했다. 김성훈의 안무로 이뤄진 무용 또한 이번 오페라의 개성을 돋보이게 했다.

이든이 지휘한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전반적으로 무난한 연주를 들려줬지만, 너무 모범적이라는 점에서 연극과 결합한 이번 오페라의 과감한 기획이나 강렬하게 자리 잡은 무대디자인과 비교할 때 아쉽다는 인상을 받았다. 무대 위의 참신한 해석이 오케스트라까지 이어졌더라면 더욱 빼어난 공연이 되었을 것으로 본다. 구노 오페라의 선율만이 갖는 서정적인 낭만성과 감정적인 깊이를 보다 심도 있게 드러내고 5막 성스러움과 세속적 성격이 교차하는 클라이맥스의 대비를 더욱 부각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한다.

[세종문화회관] 파우스트_A (30)
서울시오페라단의 '파우스트' 중 한 장면. /세종문화회관
공연 전, 이번 오페라가 이미 400년 이상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예술 장르의 틈새를 메울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 거리를 너무도 스스럼없이 좁힌 2025년 서울시오페라단의 '파우스트'에 박수를 보낸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손수연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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