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민원 대응, 실무자 안전 대책 없는 '반쪽짜리' 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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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경찰청에 민원 표준답변 자료은행에 따르면 사실상 동일한 내용의 민원을 3회 이상 반복하여 제기하는 경우 '민원처리법 제23조 제1항(반복 및 중복 민원의 처리)와 경찰관서 악성민원 대응 지침(경찰청 지침)에 따라 별도 대응없이 종결합니다'라고 안내하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문제는 이렇게 무대응한다는 취지로 답변이 가능하지만 이어 '답변 내용에 대한 추가 설명이 필요한 경우 OO경찰서 경위 OOO(02-0000-0000)에게 연락하길 바랍니다'라는 안내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찰 내부망에는 "이렇게 안내하면 악성민원인이 '아, 그렇구나' 하고 물러나겠냐. 오히려 (이름과 소속을 밝힌) 직원을 표적으로 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면서 민원 표준 답변의 정정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악성민원인에게 소속과 이름, 연락처를 공개하는 것이 또 다른 피해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해 민원 담당자는 "담당자의 소속, 성명 및 연락처는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31조(담당자의 명시)에 따른 것"이라며 "무대응 취지의 답변이라도 불가피하게 소속, 계급, 성명, 연락처를 기재해야 함을 양지하시기 바란다"고 답변했다.
민원처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31조는 행정기관의 장이 민원인에게 처리기간 연장의 통지, 민원문서의 보완 요구, 처리진행상황의 통지, 처리 결과의 통지 등을 할 때에는 그 담당자의 소속과 성명 및 연락처를 안내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결국 현행 법규상, 악성민원 대응 지침에 따른 무대응이라 하더라도 직원 신상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관련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민원처리 담당자의 신상정보 공개를 의무화한 조항이 악성민원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경찰청 내부에서도 "법적 의무와 실효성 간의 괴리가 크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경찰청 관계자는 "명백히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민원의 경우, 민원 처리법에 따라 소속과 성명을 밝히지 않고 문서로만 통보할 수 있도록 내부 지침을 마련하기도 했다"며 "일반 민원은 친절하고 신속하며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되, 악성 민원에 대해서는 공무원의 보호와 실질적 대응이 가능하도록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