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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전경련에 따르면 협회는 이날 오전 여의도 전경련 회관서 이승철 부회장 주재로 긴급 임원회의를 열어 단체의 거취에 대해 논의했다. 전날 재계 4대그룹 총수들이 탈퇴 의사를 밝힌 만큼 해당 사안에 대해 집중적으로 의논했고 단체의 성격을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처럼 씽크탱크로 바꾸는 등의 쇄신안에 대해 회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에 따르면 이날까지 회원사 탈퇴와 관련해 직접적으로 의사를 타진해 온 기업은 아직 없다.
전경련 협회비의 40% 가량을 내고 있는 4대그룹이 모두 빠진다면 전경련의 재정적 타격은 물론이고, 재계를 대표한다는 정체성이 통째로 흔들릴 수 밖에 없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재계의 의견을 모으고 대변하던 단체의 부재가 경제계에 어떤 여파로 이어질 지 주목되고 있다.
이날 오전 열린 삼성그룹 수요사장단 회의는 숙연한 분위기로 진행됐고 일부 사장은 ‘기업 할 맛 안난다’고 푸념했다. 전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청문회 전체 질의의 약 80% 이상을 답하며 시달렸고, 그룹의 콘트롤타워라 할 수 있는 ‘미래전략실’ 해체까지 공언했다. 청문회가 일등기업의 경영 구조까지 뒤흔든 셈이다.
재계에선 이번 청문회에 참석한 오너들의 정신적 타격이 예상보다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전날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청문회는 밤 11시를 넘기면서 13시간 동안 진행됐고 내내 국회의원들의 질타와 비난이 이어졌다. 실제로 전날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두통을 호소하며 청문회를 다 마치지 못하고 병원에 가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의 도를 넘은 호통에, 재계 총수들은 심한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한국 경제를 이끌어왔다 자부하는 이들을 앉혀놓고 인신공격적인 발언을 쏟아냈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 기업의 구조상 오너들의 의지와 역량은 추후 사업 방향 설정과 판단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청문회 이후 위축된 오너들의 기업가정신이 경영에 장애로 이어지거나, 해당기업에 대한 반기업정서 또는 대외신인도의 타격 등 유·무형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선 이번 청문회가 일부 오너들에게 기업경영에 대한 심한 피로감을 줘 재계 후계구도를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차그룹과 한진그룹이 대표적으로 지목된다. 두 그룹은 모두 총수가 고령인데다 건강도 우려되고 있는 상황으로, 이미 빠르게 승계가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한편 최태원 SK그룹 회장·허창수 GS그룹 회장 등은 전날 부담스런 청문회 일정을 소화하고도 이날 지장 없이 회사로 출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관계자는 “아직도 내년 사업계획을 수립하지 못했거나 이를 수행할 경영진 또는 임원급 인사도 마치지 못한 회사가 많다”며 “정치 리스크를 극복하고, 의연할 수 있는 총수들의 강한 의지가 필요한 때”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