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들과 보호무역 극복 논의, APEC 협력방안 4가지 제시
"한국 배워라" 페루 대통령, 페루와 대형사업 실질협력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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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은 한국과 미·중·일·러를 포함한 아·태지역 21개 회원국이 참여하고 있는 다자간 협의체로, 한국에서 대통령이 아닌 총리가 참석하는 것은 황 총리가 최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파문’ 등 국내 사정으로 인해 참석이 어려워졌고, 이에 황 총리가 정부조직법에 따라 대통령 권한을 대행해 이번 APEC에 참석하게 됐다.
일각에서는 ‘정상급이 모이는 국제회의에 대통령이 아닌 총리가 가는 것은 한국 외교의 공백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황 총리의 APEC 참석은 오히려 ‘대한민국 이상무’라는 이미지를 각인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실제 황 총리와 만난 해외 정상들은 “한국이 겪는 어려움은 우리들도 정치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이라며 “한국이 (극복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는 최순실 논란으로 한국의 국가신인도가 실추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반응이었다.
정상급 회의에서 황 총리만 소외될 것이라는 우려도 사라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APEC 정상회의 본세션에 입장하면서 황 총리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하고 악수를 나눴고, 말레이시아·태국 총리, 베트남 대통령 등 각국 정상들도 황 총리를 정상급 인사로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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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황 총리의 APEC 참석은 국가신인도 문제를 해소하는 것을 넘어서, 세계경제의 저성장과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의 비전을 제시하는 기회가 됐다는 평가다.
미국 대선 이후 첫 주요 국제회의인 이번 APEC에서는 단연 ‘트럼프노믹스’가 주요 화두로 논의됐다. 미국의 보호무역·고립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이 현실화되면, 세계 경제 질서에 큰 변화가 불가피해 각국 정상은 관련 대책을 마련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황 총리는 APEC 정상회의 발언에서 ‘보후무역주의 타파와 포용적 성장’을 역설하며 보호무역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APEC의 협력방안으로 △구조개혁 △서비스산업 강화 △포용적 무역 추진 △다자무역체제 발전 및 아태지역 경제통합 등 4가지를 제시했다.
APEC 회원국들이 어떤 정책에 중점을 두고 협력해야 할지에 관해 황 총리가 제안한 내용들은 회원국들의 높은 호응을 얻으며 APEC 정상들이 채택한 ‘정상선언문’에 대폭 반영됐다. 선언문은 “모든 형태의 보호무역주의를 배격하고 자유무역주의를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또 정상선언문은 지역경제통합을 더욱 심화시키는 방안으로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 실현’을 명시했고, FTAAP 실현에 관련된 문제에 대한 전략적 공동연구와 요약보고서를 승인한 뒤 이에 대한 권고사항을 담은 ‘FTAAP에 관한 리마 선언’을 부속서로 승인했다.
FTAAP는 보호무역주의 극복을 위한 제도적 기반으로, 한국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 등 21개국이 참여하는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트럼프정부의 등장으로 오바마정부 당시 추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가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가운데, 황 총리는 이번 APEC에서 FTAAP 추진 가속화를 강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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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만난 자리에서는 “아태지역 경제회복을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각국 경제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개선하는 구조개혁과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필수적이다.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과 금융 안전망 구축의 중요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이에 라가르드 IMF 총재는 공감을 표시했다.
특히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페루 대통령은 황 총리를 비롯해 각국 주요 인사들이 그룹별로 모여 의견을 나누는 APEC 기업인자문위원회의(ABAC)에 들어가 “보호무역에 대한 대응에 관해서는 한국에 경험이 많으니 한국의 이야기를 들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황 총리는 이와 관련해 “밖에 나와 보면 한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라가 흔들리지 않으면 대외신인도가 떨어질 것이 없다”며 앞으로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국정을 이끌어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나아가 황 총리의 APEC 참석은 한국 기업들이 페루 정부가 추진 중인 대형 국책사업들에 참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 북핵 등 안보 문제에 있어서도 페루의 적극적인 지지를 이끌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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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방산·치안·인프라 등 페루가 추진하는 대형사업들에 대해 한국 기업이 신규 진출하는 방안을 놓고 양측이 심도 깊은 논의를 나눴고, 북핵 문제에 대해 ‘페루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기원하고 적극 협조한다’는 입장을 밝히게 했다.
황 총리와 만난 쿠친스키 대통령은 방산 분야와 관련해 한국과의 기본훈련기 KT-1P 사업이 잘됐다고 평가하고 FA-50 사업도 잘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 사업은 FA-50 경공격기 24대를 페루에 수출하는 프로젝트로 9억 달러(약 1조500억원) 규모에 달한다.
치안 분야에서는 한국과 진행 중인 스마트 순찰차 사업에서 성과를 거뒀다. 스마트 순찰차는 1차분 800대가 2012년 12월 공급된 데 이어 현재 2158대의 공급계약이 체결돼 있다.
쿠친스키 대통령은 지난 3일 610대가 전달될 당시 직접 배차식을 갖기도 했고, 황 총리에게 자신이 한국수출입은행 설립 당시 자문을 맡았던 점을 언급하며 한국에 대한 친근감을 먼저 표시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과거 페루 친한(親韓) 정부 10여년간 진행돼 온 협력사업들이 지난 7월 출범한 신정부에서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었으나, 황 총리와 페루 대통령 간 정상급 논의를 계기로 양측의 협력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황 총리는 알베르토 비스까라 1부통령과의 면담에서도 이 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황 총리는 페루 수도 리마에서 진행 중인 56억 달러(약 6조6000억원) 규모의 지하철 사업을 비롯해 6억 달러(약 7000억원) 규모의 리마 상수도 사업에 대한 한국 기업 참여에 대해서도 ‘협력이 잘 되기를 기대한다’는 답변을 이끌어 냈다.
황 총리는 또 APEC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미국 뉴욕을 경유하는 짧은 시간에도 뉴욕 주재 무역·금융 관련 공공기관장들과 간담회를 갖고, 미국의 금리인상과 보호무역주의 등 경제적 불확실성의 어려움 속에서도 맡은 바 역할에 충실해 달라고 격려하고 당부를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