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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그때]하늘로 사라진 어린왕자 저자 ‘생 텍쥐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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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은 기자

승인 : 2015. 07. 31. 14:54

생텍쥐페리
생 텍쥐베리
2015년 7월 31일은 일명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롯데그룹의 장·차남간 경영권 분쟁으로 롯데그룹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재계 서열 순위 5위의 대기업이 총수 일가에 휘둘러진 극단적 사태에 직면했다는 비난과 함께 일본 롯데가 한국 롯데를 지배하는 구조로 돼있다는 사실에 일본기업이라는 부정적 인식도 확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과거 ‘이날’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먼저 1944년 이날 ‘20세기 최고의 작가’로 불리는 생 텍쥐페리가 비행 도중 실종됐습니다. 그의 삶에서 비행기를 떼놓고는 온전하 이해가 불가능한데요. 첫 인연은 군복무 때 조종사 자격증을 따면서 맺아졌습니다. 첫 작품 ‘남방우편’(1929)과 대표작 ‘야간비행’(1931)은 제대 후의 민간 항공조종사 경험을 살린 작품입니다.

‘남방우편’에서는 주인공인 조종사가 사막에서 죽고, ‘야간비행’에서는 앞날을 예감이라도 하듯 어디론가 멀리 날아간 조종사와 지상 간의 교신이 두절되는 내용이었습니다.

2차대전 발발로 프랑스 항공부대에 복귀했으나 아듬해 프랑스가 독일에게 함락되면서 미국으로 탈출, 그곳에서 ‘전투 조종사’와 출세작 ‘어린 왕자’를 출간했습니다.

1943년 43세의 늦은 나이로 재입대, 자유 프랑스군 조종사로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됐습니다. 1944년 이날 오전 8시 30분, 그의 고향 리옹 부근에 주둔해 있던 독일군의 이동을 추적하기 위해 정찰기를 타고 코르시카섬 미 공군기지를 이륙했는데요.

채워진 연료로는 6시간만 비행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오후 2시반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실종이 확인됐으나 지금까지도 잔해가 발견되지 않아 실종을 둘러싼 소문만 무성합니다.

또 1877년 이날 발명왕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했습니다. 11월 미국 특허국에 특허권을 제출할 당시의 축음기 이름은 ‘토킹 머신’이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말하는 기계’에 불과했죠.

8월 12일 에디슨은 뉴저지에 있는 작업실에서 동료들에게 둘러싸인채 사상최초의 녹음을 시도했습니다. 녹음한 내용은 자신과 친구들이 함께 부른 동요 ‘메리에게 작은 양이 한 마리 있었네’였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의 녹음방식은 왁스를 녹인 원통에 바늘을 기록하는 것으로 오늘날처럼 대량생산을 위한 것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에디슨의 축음기는 1878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출품됐습니다. 그후 1888년 런던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열린 헨델 페스티벌에서 헨델의 오라토리오 ‘이집트의 이스라엘인’이 에디슨의 축음기로 녹음됐습니다.

에디슨 이전에도 녹음기 발명의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1857년 프랑스 발명가 레옹 스콧이 포노토그라프라는 원시적 형태의 녹음기를 만들었죠. 오늘날과 같은 평평한 원형 음반에 소리가 담긴 것은 하노버 태생의 발명가 에밀 베를리너가 미국에서 음반 제작을 성공하면서 부터였습니다.

한편 2009년에는 조선시대 어의 허준 주도로 편찬된 조선시대 의학서 ‘동의보감’이 한국의 7번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습니다. 이로써 한국은 1997년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의 두 건을 시작으로 직지심체요절과 승정원일기, 고려대장경판과 제경판, 조선왕조의궤에 이어 모두 7건의 세계기록유산을 보유하게 됐습니다.
이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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