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대외적인 명분은 스포츠 행사 참석을 위한 것이지만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다음으로 북한 내 실세라는 평가를 받는 최고위급 인사들의 대거 방남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이날 파견된 북한 최고위급 대표단은 사실상 김 제1비서의 ‘특사’ 성격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따라서 북한 대표단의 방남 결과는 향후 남북관계의 흐름이 크게 바꿀 것으로 보인다.
우리측에 온 황병서는 군부의 최고 직위인 군총정치국장 자리에 앉으면서 사실상 북한의 서열 2위로 올라선 인물이고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인 최룡해 노동당 비서는 군복은 벗었지만 민간 분야를 대표하는 실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기에 대남 정책의 밑그림을 그리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까지 합류하면서 명실상부한 ‘고위 대표단’을 꾸린 셈이 됐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의 김정은 제1비서가 당과 군부의 최고 실세들을 파견한 것은 극도로 경색된 남북관계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특단의 카드를 내민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한 최고위급 대표단의 방남으로 박근혜정부 출범 후 남북의 최고위급 당국자들의 만남도 성사됐다.
남북은 이날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장관, 남북 고위급 접촉의 우리측 수석대표인 김규현 국가안보실 차장과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룡해·김기남 당 비서가 참가하는 ‘남북 대표단 오찬 회담’을 할 예정이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황병서 일행이 김정은 제1비서의 친서나 구두 메시지 등을 전할 가능성이 있어 주목된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직접적으로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김정은 특사가 아시안게임 폐막식이라는 공간을 통해 내려오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남북관계를 현 국면에서 충격 요법을 통해 풀고자 하는 (북한의) 메시지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장애물인 북핵문제에서 북한이 이렇다 할 입장 변화를 보일 가능성이 낮은데다 북한이 5·24 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대북전단 살포 및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등의 기존 요구를 거듭할 가능성도 커 섣부른 기대감은 금물이라는 목소리도 여전히 만만치 않다.
일단 이날 북한 대표단의 방남을 통해 남북 양측은 관계개선과 관련한 서로의 의중을 교환한 뒤 우리측이 제안한 2차 남북 고위급접촉 개최를 통해 구체적인 협의를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날 북측 대표단의 방남이 10·4선언 7주년에 맞춰 이뤄졌다는 점도 눈길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