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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위안부 강제동원’ 뒷받침하는 일제 사료 25건 중국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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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기자

승인 : 2014. 03. 24. 13:44

제2세계대전 시기 한국여성들이 일본의 ‘국가총동원령’에 따라 집단으로 중국으로 끌려와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됐음을 뒷받침하는 당시 일본인 편지가 중국에서 발견됐다.

옛 만주국 당시 관동군사령부 등이 남긴 일제사료 10만 권을 정리·연구하고 있는 중국 지린성기록보관소(이하 기록보관소)는 24일 최근 조사정리가 끝난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료 25건을 공개했다.

25건의 사료 가운데 6건은 한국인 군위안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군이 한반도와 중국에서 군(軍)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것은 피해자 진술 등을 통해 간접 확인됐지만, 군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입증할 수 있는 당시 사료가 발견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여기에는 1941년 일본군 베이안 지방검열부가 만든 ‘우정검열월보’(郵政檢閱月報)‘에서 한 군위안소 상황을 묘사한 편지도가포함돼 있다.

헤이룽장 헤이허에 사는 일본인이 일본 니가타현에 사는 지인에게 보낸 이 편지에는 “위안소 병력은 단지 20명 정도며 전부 선인(鮮人·조선인)으로 국가총동원법에 묶여 온 것”이라는 표현이 담겨 있다.

’우정검열월보‘ 제도는 중국을 침략해 만주국을 세운 일제가 군사기밀 등 민감한 내용이 외부에 유출되는 것을 막으려 군·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광범위한 편지·전보 검열제도다. 각 지역 헌병부대는 검열결과를 정기적으로 관동군헌병대에 보고했다.

기록보관소 자오위제 연구위원은 이 사료에 대해 “’병력‘이라는 표현이 좀 생소하긴 하지만 문맥과 일본어식 여자이름이 나온 것을 종합하면 ’군 위안부‘를 지칭한 것으로 봐야한다”고 설명했다.

또 중국 우후 지역에 있는 전체 109명의 일본군 위안부 가운데 한국인 군위안부가 36명이었다는 표현이 담긴 화중(華中)파견헌병대의 ’난징헌병대 치안회복 상황보고서‘와 한국인 군위안부를 ’특수위안부‘(성노예 위안부를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로 표기한 일본군의 또 다른 사료도 이날 함께 공개됐다.

일본군이 공금을 사용해 군위안부를 계획적으로 모집했음을 보여주는 만주 중앙은행의 전화기록(수기자료)과 ’위안부 수가 부족해 현지에서 위안부를 모집해야 한다‘는 화중파견헌병대의 또 다른 상황보고서도 공개됐다.

기록보관소는 이 자료에 대해 모두 일본군의 조직적인 군위안부 운영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문건들이라고 강조했다.

기록보관소는 이날 외국인들에게는 처음으로 기록보관실 입장을 허용하고 관련 문서 원본 촬영도 이례적으로 허용했다.

인화이 소장은 “한국은 중국의 가까운 이웃으로 무엇보다 같은 고난을 경험했던 사이”라며 “한국 각계와 이번 성과를 나누고 연구를 더욱 발전시켜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 우익들은 “군이나 관헌이 강제연행을 했음 보여주는 근거가 없다”며 군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고 있으며 아베 신조 정부 역시 군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는 상황이어서 이 사료들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한국정부 측도 이 문서의 존재사실을 확인하고 외교채널을 통해 중국정부에 열람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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