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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전태일의 삶과 죽음

청년 전태일의 삶과 죽음

기사승인 2014. 01. 08.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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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 코리아...노조 선진화] 한국 산업화 초기, 노동자들의 가혹한 현실 고발하고 몸 불살라
‘대통령 각하, 저는 서울특별시 성북구 쌍문동 208번지 2통 5반에 거주하는 22살의 청년입니다. 직업은 의류계통의 재단사로서 5년의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략)… 저희들은 근로기준법의 혜택을 조금도 못받으며 더구나 3만여명을 넘는 종업원의 90% 이상이 평균 연령 18세의 여성입니다. 기준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으로서 어떻게 여자에게 하루 15시간의 작업을 강요합니까? …(중략)…

미싱사의 노동이라면 모든 노동 중에서 제일 힘든(정신적, 육체적) 노동으로 여성들은 견뎌내지 못합니다. 또한 3만여 명 중 40%를 차지하는 시다공들은 평균연령 15세의 어린이들로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기에 있는 이들은 회복할 수 없는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전부가 다 영세민의 자녀들로서 굶주림과 어려운 현실을 이기려고 하루에 70원 내지 100원의 급료를 받으며 1일 15시간의 작업을 합니다.

일반 공무원의 평균 근무시간 1주 45시간에 비해, 15세의 어린 시다공들은 1주 98시간의 고된 작업에 시달립니다. …(중략)… 저희들의 요구는 1일 15시간의 작업시간을 1일 10 ~12시간으로 단축해주십시오. 1개월 휴일 2일을 늘려서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원합니다.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해주십시오. 시다공의 수당(현재 70원 내지 100원)을 50% 이상 인상하십시오. 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이 글은 1969년 11월께 청년노동자 전태일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로 작성한 것인데 발송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전태일이 살던 당시의 노동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글이다.

전태일은 1948년 8월 26일 대구에서 태어나, 1970년 11월 13일 서울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스물둘의 젊음으로 몸을 불살라 죽었다.

그는 대한민국 산업화 초기 하루 열여섯 시간을 노동해야 하는 어린 노동자들에게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요구’가 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죽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인간 선언’이라고 불렀다.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길에서 일어난 전태일의 분신은 단순히 한 젊은 노동자가 죽은 사건이었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고 밥 한 끼 배불리 먹지 못한 사람이었다. 죽을 때까지 무허가 판자촌에서 살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하류인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상황에서 노동운동을 했다. 이 젊은이가 근로기준법 책을 불태우고 함께 스스로 불타 죽었다는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한국사회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의 죽음과 함께 평화시장 어두운 골방 속의 참혹한 노동에 관한 소식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것이 발단이 돼 당시의 한국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인간 이하의 고통에 대한 관심이 새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제까지 아무도 말하려고 하지 않던 ‘노동자’니 ‘노동운동’이니 하는 말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노동문제가 신문과 잡지 지식인들의 대화, 학생과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공공연히 나타나게 됐다.

전태일의 죽음과 잇따른 학생·노동자·종교인들의 궐기는 당시 노동문제를 사회여론의 제1차적 관심사로 떠올렸다. ‘동아일보’ 1971년 신년호는 6·25가 1950년대를 상징하듯, 4·19가 1960년대를 상징하듯, 전태일의 죽음은 1970년대의 한국의 문제를 상징하는 가장 뜻 깊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이렇게 해서 1970년 겨울부터 1971년 봄에 이르기까지 ‘전태일’이라는 이름 석 자는 사회 여론 속에 신문과 잡지의 보도와 논설 속에, 정치인들의 연설 속에 노동자와 학생들의 구호와 선전 속에 수도 없이 오르내렸다.

현재 전태일의 죽음은 40여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죽음을 기리는 이들은 ‘전태일 재단’을 만들어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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