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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사건’의 주인공 김경숙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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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기자

승인 : 2014. 01. 08. 07:59

[하모니 코리아...노조 선진화] 세계신기록 산업화·민주화의 숨은 영웅, 누이들의 희생으로 오늘날 우리가 존재
1970년대 노동운동의 시작에 전태일이 있었다면 그 시대의 끝에는 YH사건의 김경숙이 있었다. 1979년 8월 11일 당시 제1야당인 신민당사 안에는 1970년대 한국 수출업체의 선두주자였던 가발업체 YH무역의 폐업 공고에 반대하며 180여명의 어린 여공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가혹한 노동현장과 이를 방관하는 정부의 태도에 항의하기 위한 농성이었다.

이러한 여공들의 항의를 정부는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101호 작전’으로 불리는 이 작전에서 경찰은 2000여명을 동원해 YH여공뿐 아니라, 신민당 당원, 야당 국회의원들과 신문기자들까지 무차별로 공격했다.

공권력의 진압에 40여시간 계속됐던 YH여공들의 농성은 23분만에 마무리됐다. 이날 새벽 22살의 여성노동자 김경숙은 차디찬 시체로 발견된다. 그의 사망 원인은 의문사로 남았다. 김경숙의 죽음으로 끝난 YH사건은 김영삼 총재의 국회의원 제명, 부마항쟁으로 이어지면서 유신체제 몰락의 기폭제가 됐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한강의 기적’ 은 김경숙 같은 노동자들의 가혹한 희생 속에서 이루어졌다.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은 너무나 열악했다.

여성노동자들은 정상근무시간 이외에 잔업을 위해 각성제까지 복용하며 밤을 새워 일했다. 휴일에는 연장근무를 강요받았다. 장시간의 고된 일, 잦은 밤샘작업과 휴일조차 쉬지 못하는 공장생활로는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가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러한 살인적인 노동 강도 속에서도 그들이 받는 돈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했다. 고속성장에 드라이브를 건 정부와 경영자들의 노동착취가 빚어낸 비극이었다.

여성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이러한 환경을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은 ‘가족’이었다. 남동생과 오빠의 교육을 위해, 부모님의 생계를 위해 그들은 온갖 고통을 감내하며 자신의 청춘을 기꺼이 희생했다. 그것이 세계 신기록의 대한민국 산업화를 일군 것이다. 그리고 그 산업화로 성장한 시민 세력들은 1987년 민주항쟁을 일으켜 민주화를 이루었다.

최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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