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획량 감소 등 여러 이유로 사람떠나자 경제활력 잃어
일명 '나바론 요새' 등 추자10경풍광 제주못지 않아
38개 무인도-4개 유인도 묶는 해상관광 지원 절실
|
추장 형상의 지형은 사이트 어디에도, 지역주민도, 면사무소도, 관광지원센터도 모르고 있었다.이들은 추자도에서 이번 기회에 새로운 신화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추자도 번영에 이바지하는 마음으로 르포에 나섰다. 추자도 주민 이우철·이종은 씨 요청으로 르포를 작성하기 위해 사전 답사 차원에서 추자도 지도를 살펴 보았다.
그리고 위성사진을 살펴보다, 백악기때부터 존재한 추장 모습(위성사진)이 한눈에 들어왔다. 영락없는 아프리카 추장 모습이다.
추자도는 제주 북부 제주해협에 있는 유인도 상추자, 하추자, 횡간도, 추포도와 무인도 38개로 둘러 쌓인 섬이 추자면이다. 현재 인구는 10월말 현재 1586명이다.
추자도의 행정구역 변천사와 주요 역사연표에 대해 옛 문헌은 다양하게 기록했다.탐라국, 고려시대, 조선시대 초기까지는 제주,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말까지는 전라도, 1915년 5월은 전라남도 제주군 추자면에 속했다.
옛 탐라국 지위를 찾은 시기는 1946년 8월에야 제주도 북제주군 추자면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추자도인들의 지켜낸 사수도(섬 전체 천연기념물 제333호 지정, 1982년)는 최고의 황금어장으로 불린다.
|
추자도 역사를 알기 위해 다양한 문헌 중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 역사교육전공 고행미 석사학위 논문(2005)에서 관련 자료를 발취해 이해를 돕고자 한다.
논문에서 추자도 입도는 신라시대 문무왕(서기662년)시기 탐라국이 신라에 입조되면서, 상선들이 드나들며 마을을 형성했다고 추측한다.
이러한 변천사 중 추자도의 최고의 인구 시기는 1969년 6771명이라고 논문에서 재인용됐다.
논문이 2004년 12월 31일 기록한 통계에는 어업 가구당 수입이 연간 8800만원으로, 20년전 수입으로는 매우 큰 액수라고 보여진다. 당시 전국의 어가 평균 소득은 2600만원이고, 농가 소득 2900만원이니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는 모든 통계에서 보더라도 어획량 감소, 쿼터제 시행 등으로 추자도 산업환경이 변해 1년에 6만 7000명이 입도한다. 그리고 어업의존도에서 관광객에 의존하는 섬으로 변했다.
제주 본섬을 제외하고 2023년 기준 면 단위 우도는 인구 1800명 정도에 방문객은 142만명, 리 단위 가파도 29만 4000명과 마라도 35만 2000명, 비양도리 13만명이다.
훨씬 큰 추자도가 고작 비양도의 절반이라니 초라하기 그지없다. 다른 섬들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그동안 어업전진기지 역할을 해왔다고 하지만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
|
승선하자 배가 잔잔한 파도를 가르지르며 추자도로 향했다. 제주도의 여느 섬은 길어야 20분 거리다. 그러나 추자도까지 2시간 거리다. 특히 제주본섬과 거리가 멀다 보니 제주와는 다른 문화와 방언이 쉽게 이해가 된다.
망망대해를 달리는 배안에서 첫번째 여행객을 만났다. 부산에서 지인들과 제주본섬을 여행하며, 날씨가 좋아 아침에 배타고 간다고 했다. 어떤 정보도 없이 듣고 있던 추자도라 가고싶어서라고 했다.
|
선상에서 마지막 올레길 스탬프 찍을 자리를 보여줬다, 프랑스인은 짙푸른 파도를 항해하는 선박과 호흡하며 자기만의 제주바다를 만끽하고 있다.
돌아오는길에 다시 만난 쥴리앙씨는 미션 완료한 스템프를 찍은 자리를 보여줬다. 그는 완성의 기쁨도 있었으나, 하루에 20km 나 되니 지친다고 했다.
그는 제주의 아름다움은 40일간 올레길 투어가 모두 말해 준다고 했다.
쥴리앙의 직업은 카펫트 디자이너와 뮤지션이다. 그리고 한국문화를 사랑하게되어 한국어를 배웠다. 아직은 몇 개의 단어만 알 뿐이지만, 제주에 만난 현지인들과 친분을 과시했다. 여성들과 찍은 단체사진을 보여주며 "친구들은 나를 '삼촌'이라 불렀다"고 했다.
그리고 공무수행차 추자도로 들어가는 제주대학교병원 연명의료팀 양진원 팀장 일행을 만났다.
그들의 업무는 저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무겁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임무는 인간의 해탈 세계를 다루는 고귀한 것이다.
|
이 조합은 조합원이 59명으로, 출자금만도 8억원이 넘는다.이 교수가 안내한 관광유람선은 멈추어 있었다. 움직이면 적자라고 한다. 하루 평균 60명씩 2회는 운항해야 유지가 된다고 했다.
|
|
얼마전 정근옥 시인의 시집 '순례길 풍경화'의 시 '산방산에서'의 첫 머리가 떠올랐다. '얼마나 기다리고 서있었던 걸까', '저 거대한 바위의 몸체' 오름보다 높이가 낮은 추자도의 산을 하나의 바위산으로 표현하기 딱 좋은 시구절이다.
제주도 올레길은 감정선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내 마음을 주면 내게로 다가와 같이 속삭이고 있는듯하고 호흡도 같이 한다고 한다. 제주의 섬은 거대하면서도 작은 내 손안에 잡힌다.
추자섬은 화산이 폭발한 형태가 아니라, 기록처럼 백약기 시기부터 그대로 간직된 섬이다. 그래서 용듬벙과 마주한 나바론하늘길은 제주섬에서 보지 못한 웅장함과 새로운 맛이 있다.
그리고 추자의 10경 중 제1경은 쇠머리 섬의 우두일출 광경이다. 성산일출봉과 견줄만해 첫번째로 꼽았다.
제2경은 거북이를 닳은 직구도섬에서 바라보는 일몰의 직구낙조이다. 제3경은 흑검도, 사자섬, 쇠코, 쇠머리로 둘러쌓인 바다를 신대(물생이끝)라고 하는데 이곳은 고기떼가 뛰노는 모습이라고 한다.
제4경 수덕낙안은 사자를 닮은 수덕도에 갈매기와 기러기 물새들이 먹이를 잡기위해 물속에 바로 꽃히는 듯해 붙여진 이름이다. 제5경은 석두청산이다. 바로 추장님 모습이 있는곳이다.석지머리의 푸른산과 기암절벽이 병풍을 두른 것 같다. 병풍처럼 둘러싼 기암은 추장형상의 완연한 모습을 그려내 새로운 신화가 될 것이다.
제6경 장작평사는 제주의 여느 섬처럼 해변에 모래사장이 없다, 대신 자갈과 자갈 사이에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교향곡이다. 제7경 추포어화는 추자도 경제부흥기의 모습이라야 볼 수 있다. 한여름 추포도 앞 바다에 멸치잡이 배들이 휘황찬란한 불빛이 수놓을 때 그 야경은 밤바다의 꽃이라고 했다.
제8경 횡간추범도 제7경처럼 추자의 부흥기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만선기를 달고 바다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는 모습이라고 한다. 제9경은 곽개창파이다. 조선시대 유배오던 관리들이 험난한 바닷길을 오다보면, 이곳에 오면 비로소 관을 벗어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관탈섬이다.
제10경은 망도수향이다. 추자도 고향의 표적이다. 추자사람들은 이 두 개의 섬을 큰보물섬, 작은 보물섬이라고 부른다. 제10경은 추자를 떠났던 사람들이 배를 타고 오며, 이섬이 보여야 "아~ 나의 고향 추자라구나" 하는 망향비 같은 섬이다.
추자 10경을 돌아보며 1969년 인구 7000명에 달할 정도로 번성했던 추자도가 옛 명성을 빨리 되찾기을 기원했다,
제주본섬 올레길 처럼 관광객들의 감성을 마음에 담는 정책이 절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국제대학교 관광학과 김의근 교수(제주관광학회 학회장)는 "추자도 해상관광은 충분히 매력이 있다. 특히 추자도 유인도 4개와 무인도 38개를 투어하는 해상관광을 키워 침체된 추자도의 경제동력으로 삼았으면 좋겠다"며 "제주도는 추자도의 인구가 소멸되어가는 이유를 충분이 파악하고 있으리라 본다. 다른 섬 처럼 다양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충분한 연구를 통해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