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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원자력사업자는 죄인이 아니다

[칼럼] 원자력사업자는 죄인이 아니다

기사승인 2024. 07.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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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회의록을 살펴보면 놀라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자력안전위원이 원자력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 직원에 대해 막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사업자에게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다'거나 '이실직고를 하라'거나 하는 등의 표현을 쓰는 것이다.

원자력 사업자는 원자력 사업을 하기 위해 인허가를 받아야 하고 허가를 받은 후에도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고 규제의 감시를 받게 된다. 약한 입장이지만 사업자가 죄인은 아니다.

우리가 자동차 정기 검사를 받으러 갔는데 자동차 검사원이 우리에게 '정신 상태가 글러 먹었다'거나 '이실직고를 하라'거나 한다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뉴스에 나올만한 일일 것이다. 원자력 사업자가 국민에게 위험을 끼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규제기관은 이에 대한 감시와 감독을 하는 것이다. 한쪽은 일을 해야 하는 역할이고 한쪽은 감시해야 하는 것으로 역할이 다를 뿐이지 지위의 고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죄인 취급을 하면 곤란하다.

규제는 '자유'라는 사업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이는 대중의 안전이라는 공공적 목적이 있을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것이다. 규제자는 사업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대해 도리어 미안한 마음이어야 한다. 따라서 공공적 목적의 범위내에서 제한적으로 규제를 해야 한다. 사업자의 안전이라는 이유로 모든 행위를 제한하는 것도 문제이고 인격을 모독하는 것도 문제다. 규제가 갑이 아니다.

사업자를 죄인 취급한다면 이것은 조선시대 수령이나 암행어사가 할 짓이다. 법도 없이 위세로 일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원자력안전위원은 권세가 아니다. 각 부분에서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원자력안전위원회 사무처의 규제행정에 대한 적절성을 판단하는 자리다. 그런데 그런 완장의 무게도 이기지 못할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위원에 선임했을까? 이를 제재하지 못하는 사무국은 무엇인가? 둘 다 개념이 없는 것이다. 자기가 이 사회에서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개념 없는 원자력안전위원이 사업자를 죄인 취급할 때 원자력안전위원회 사무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위원회장에서 누군가 무식한 원자력안전위원을 제재했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원자력 안전과 관련이 없는 개인적 관심 중심의 질의를 할 경우에도 발언을 제지시켰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위신을 높이는 행위가 아니라 바닥에 떨어뜨리는 것이다. 서로의 역할에 대한 존중이 깔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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