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부담에 PPA 가입 저조
에너지 상승·재생에너지 수급 불균형 탓
전문가 "기업들, 비용 부담 인식 필요"
1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박영순 의원실(더불어민주당)에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전은 기후환경요금을 매년 인상해 왔다. 기후환경요금은 2021년 ㎾h(킬로와트시)당 5.3원에서 2022년 7.3원, 2023년 9.0원으로 매년 소폭 올랐다.
기후환경요금은 전기요금 구성 요금 중 하나로, 전기요금은 △기본요금 △전력량 요금 △기후환경요금 △연료비조정요금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한전은 이 기후환경요금으로 RPS(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 공급의무자들이 지출한 RPS 이행비용을 정산해준다. 결국 국민들이 내는 전기요금으로 신재생에너지 보급 및 확산 비용을 충당하는 셈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이어진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 탓에 RPS 비용 정산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급등하는 에너지 가격 상승분을 전기요금에 충분히 반영치 못하면서 초유의 재무위기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실제 한전은 올 9월 공급의무사에게 RPS 정산 시기를 늦춰달라는 요청을 보냈다. 총 부채 201조원을 넘긴 한전이 내년 사채 발행 한도가 줄어들 위기에 놓이자 정산 비용을 늦게 주면서라도 자본금 규모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또한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 때문에 신재생에너지 보급 정책 중 하나인 'PPA' 시장도 타격을 입고 있다. PPA 가입건수는 도입 이후 15건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 △제3자PPA(7건) △직접PPA(8건) 등이다.
이는 PPA의 계약단가가 재생에너지 발전원가(SMP+REC) 기준으로 산정되기 때문이다.
현재 SMP와 REC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면서 수요기업은 계약단가가 비싸다고 판단해 선호하지 않고 있다. 특히 수요기업은 제3자PPA보다 직접PPA를 더욱 선호하고 있다. 직접PPA가 부가비용 중 하나인 '복지특례할인비용'이 제외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3자PPA가 무의미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SMP는 과거 ㎾h당 60원대에 머물렀지만,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h당 200원대까지 치솟았다. REC 현물시장 가격도 2021년 REC당 2만~3만원대에서 2023년 REC당 7만~8만원대로 올랐다.
한 수요기업 관계자는 "수요기업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SMP나 REC 가격이 고공행진하고 있기 때문에 '비싸다'는 판단이 있어 PPA 계약을 안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SMP나 REC 가격에 따라 PPA로 하는 것이 유리한지 여부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비싼 재생에너지 요금 구조는 국제적으로 지적받기도 했다.
국제 비영리기구 클라이밋그룹은 '에너지 전환의 자금 조달: 정부가 기업 투자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 보고서에서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려면 표준 산업용 전기요금보다 최대 1.5배 높은 요금을 부담해야 한다"며 "여전히 한국에서 PPA 가격은 화석연료 발전과 비교해 경제적 측면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더군다나 한전의 PPA 요금제 도입 시도가 PPA 계약체결을 지지부진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한전은 PPA 시장이 조성되자 PPA 요금제를 신설했다. PPA 요금제는 PPA 계약을 체결한 기업이 PPA 전력으로 충족하지 못하는 전력을 한전으로부터 공급받을 때 부과되는 요금이다.
수요기업들이 직접 PPA 계약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분위기가 조성됐지만, 한전이 비용 증가가 예상되는 PPA 요금제를 도입하려 하자 직접 PPA 계약 검토를 중단하게 됐다.
이에 대해 한전 측은 "올해 초 PPA 요금제 신설 후 합리적 대안 마련 필요에 따라 유예하고 있다"며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산 및 PPA 고객 참여 수준에 따른 원가영향, 전기요금 체계 개편 방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서 신재생에너지 전환은 더욱 가속화돼야 한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정부도 신재생에너지 제도를 손 보면서 특히 직접PPA 활성화에 초점을 맞췄다. 전문가들은 수요기업이 직접PPA 가입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RE100 비용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수 밖에 없지만, 한전이나 정부 역시 땅을 파서 장사하는 곳이 아니"라며 "신재생에너지 비용은 현재 비쌀 수 밖에 없고, 이 비용 부담을 감수하지 않으면 탄소중립은 어렵다. 정부에서 지원해달라 등 요구는 있을 수 있지만 수요기업에서 비용 부담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