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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탐사] 카톡 감옥에 온라인 신상털기까지…시간제한 없는 ‘사이버 학교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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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기자

승인 : 2021. 03. 21. 23:21

학교폭력 피해자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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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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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어서 옥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어요. 부모님 생각에 뛸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경기 부천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A양(17)은 지난 2월 졸업한 중학교 시절의 기억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A양은 중학교 2학년부터 졸업하기 직전까지 학교 폭력에 시달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전 국민의 일상이 망가지며 모두 힘든 시간을 겪은 가운데 A양에게 지난해는 남들 보다 두 배 이상 힘들었다. 방역을 위해 등교가 어려워지자 대면에서 이뤄지던 폭력이 사이버 공간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하교를 하면 조금이나마 가해자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사이버에서 이뤄지는 폭력에는 시간제한이 없었다.

“왜 제가 타깃이 됐는지는 아직도 몰라요. 점심시간에 같이 밥 먹을 무리도 있고, 등하교를 함께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저 혼자가 됐어요. 인스타그램에 셀카를 올렸는데 우리 반에 좀 노는 애가 그걸 보고 ‘얘는 이 얼굴로 셀카 올리네’라고 말했던 게 시작이었어요. 그 후로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저를 괴롭히더라고요.”
그날 이후 A양의 학교생활은 악몽이었다. ‘카감’이라 불리는 카카오톡 감옥에 초대되는가 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공개 저격을 당하기도 했다.

“애들이 저를 카톡 단톡방에 초대해요. ‘XX 같은 X야’ 같은 욕설이 날아오길래 당황해서 방을 나갔어요. 근데 바로 다시 초대됐어요.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는 거죠. 그걸 카톡 감옥이라고 해요.”

5분이라도 카톡을 확인하지 않으면 300개가 넘는 대화가 쌓여있었다. 카톡을 읽지 않거나 답장이 없으면 바로 전화 왔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문자로, 대꾸가 없으면 다른 SNS에 ‘공개 저격’ 글이 올라왔다. A양이 3시간가량 카톡을 읽지 않자 곧 페이스북에 “얘 완전 XX임. 아무나 얘랑 자고 싶은 사람 연락 ㄱㄱ”라며 A양의 사진과 신상정보가 적힌 글이 게시됐다. 댓글에는 A양에 대한 허위 소문들이 가득했다. 그중에는 한때 A양과 등하교를 같이 할 정도로 친한 친구의 댓글도 있었다.

“모르는 번호로 카톡이랑 전화가 계속 왔어요. 다짜고짜 주소를 보내는 사람은 그나마 양반이죠. ‘한번 하자’면서 페이스북에 적힌 우리 집 주소로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어요.”

A양은 모든 SNS를 탈퇴하고 핸드폰 번호를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에게는 학교 폭력 사실을 알릴 수 없어 차마 이사를 하지는 못 했다. 대화 내용을 저장해 학교 폭력 증거로 삼을 생각도 했지만, 보복이 두려워 신고도 하지 못했다. 학업 성적이 좋았던 A양은 ‘외고나 자사고로 진학해서 그 애들 얼굴을 안 보면 된다’는 생각으로 1년 반을 버텼다.

원래 살던 곳과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로 진학하자 다행스럽게도 가해자들은 괴롭힘을 멈췄다. 그러나 학교 폭력의 기억은 여전히 A양을 괴롭히고 있다. A양은 “아직도 악몽을 꿔요. 친했던 친구들이 가해자로 변하는 게 제일 슬펐죠. 앞으로도 친구를 사귀는 게 힘들 것 같아요”라며 “요즘 연예인들 학폭 폭로 사태를 보니 저를 괴롭혔던 애들도 잘 먹고 잘살 것 같아서, 그게 제일 싫어요”라고 말했다.

◇사이버 학폭 교묘해지는데…신고해도 미흡한 조처

학교 폭력 피해자인 B군(16)은 얼마 전 전학을 가야만 했다. 학교 안에서 흡연을 하는 학교 ‘일진’ 선배들을 험담한 게 발단이었다. 이후 카톡과 텔레그램 등을 통해 “몇 대 맞으면 정신 차릴래” 같은 협박성 메시지를 받았고, 주택가 골목에서 따귀를 맞거나 배를 걷어차였다.

B군은 “요즘 친구들끼리 많이 사용하는 건데, 서로의 위치를 공유하는 앱(어플리케이션)이 있다. 이걸 강제로 깔게 해서 근처에 있는데도 5분 만에 안 오면 1분당 1대씩 더 맞았다”고 말했다.

반년간 폭력에 시달리던 B군은 학교에 학교 폭력 사태를 알렸지만, 학폭위가 내린 처분은 가해자들의 정학에 그쳤다.

심지어 B군에게 언어·물리적 폭력을 일삼던 5명 중 1명은 정학 처분을, 나머지는 사회봉사 10시간 혹은 학교 봉사라는 경미한 처분을 받았다. B군은 학교 측에 가해자들의 전학을 원한다며 의사를 표시했지만, 학교는 “요즘은 학폭위가 열리면 가해자들도 변호사를 선임해서 대응하기 때문에 강도 높은 처벌이 어렵다”고 답했다.

B군의 어머니는 “학폭위가 열렸는데 학폭위원이 ‘가해자들의 보복이 두렵지 않냐’며 우리 아들과 가해자더러 악수하고 화해하라고 했다”며 “학교에서조차 학폭을 범죄가 아닌 학생들 간의 다툼 정도로만 보고 있으니 학교 폭력이 근절되지 않고 계속 일어나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B군도 “가해자들의 보복이 두려워서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하는 학생들이 정말 많다. 반년 넘게 고민을 하다가 용기를 내서 알렸다”며 “그런데 가해자와 악수하고 사과하라니 기가 찼다. 도저히 가해자들과 같이 학교에 다닐 수가 없어서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결심했다”고 토로했다.
김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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