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신저·SNS로 번진 비대면 학폭
"익명성 기대 수위 높아져
교육과정 포함해 위험성 알려야"
A양은 휴대전화를 통해 선물을 상납하는 ‘기프티콘 셔틀’을 당하기도 했다. 급기야 A양의 얼굴에 다른 여성의 나체사진을 합성한 ‘지인 능욕’ 사진이 떠돌았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A양을 향한 ‘저격 글’이 자주 등장했다. A양은 자신이 좋아하는 남학생까지 험담에 가담하자 큰 충격을 받고 자존감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A양은 “너무 힘들어서 우울증에 시달렸고 급기야 극단적 선택 충동을 느끼도 했다”고 토로했다.
A양은 집단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전학을 갔지만 새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다. 누군가가 SNS에 A양을 모함하는 거짓 내용과 따돌림 사실을 올려 전학 간 학교에 나쁜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있었기 때문이다. A양은 “학교는 물론이고 학원에서도 내가 왕따였던 게 알려졌다. 친구를 사귀는 게 힘들고 너무 위축된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A양은 주 1회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버 불링 예방, 정규 교육과정에 포함해야”
MZ세대(밀레니얼세대 + Z세대)들 사이에 사이버 공간에서 특정인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의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사이버 불링은 물리적인 신체폭력이 아니라 메신저나 SNS를 이용해 집단으로 언어폭력과 인신공격을 일삼는 행위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보급과 SNS 이용 확산으로 사이버 불링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지능화되는 만큼 온라인 폭력에 대한 예방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전명수 고려대 교수(사회학과)는 21일 “사이버 불링은 약자에 대한 폭력이고,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정신적으로 황폐화하는 사회 문제”라고 진단했다.
신나민 동국대 교수(교육학과)는 “사이버 폭력은 전파 속도가 빠른데다 무한 복제가 가능해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되는 파급력이 크다”며 “기록도 없어지지 않아 피해자가 잊혀질 권리조차 박탈당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감수성이 예민한 학창시절 사이버 공간에서 받은 상처와 언어폭력은 굉장히 큰 트라우마가 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사이버상의 폭언과 괴롭힘이 명백한 폭력이라고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는 조언이다. 신 교수는 “사이버상에서는 익명성에 기대 비방 수위가 더욱 거칠어지는데 이러한 속성을 학생들에게 교육시켜야 한다”며 “피해자가 굉장히 많은 상처를 받고, 방조하는 것도 가해행동이라고 인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상에서 사이버 불링을 엄격히 대응하고 모니터링하는 자정노력을 기울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신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폭력을 선동할 위험성이 있어 트위터에서 퇴출당했듯, 사이버상에서 괴롭힘과 같은 조짐이 보이면 계정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메신저 플랫폼 기업의 윤리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은 사이버 불링은 시간과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부모와 전담 교사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준하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서울센터 사무국장은 “정규 교육과정에 학교폭력과 사이버 폭력 근절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며 “학부모가 자녀의 핸드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도록 교육하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