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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교육]행복의 방향 표시, 처음엔 ‘혼자’였지만 이제는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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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기자

승인 : 2013. 03. 17. 06:00

[희망100세] 1000원짜리 스티커로 1000만명을 이롭게 한 '화살표 청년'
'화살표 청년' 이민호씨가 지난 3일 종로구 한 정류장에서 버스 운행 방향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사진=이병화 기자
아시아투데이 김현아 기자 = 2001년 여름.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는 버스 안, 중학생 이민호 군의 마음은 쿵쾅거렸다.

‘맞을까? 맞겠지? 반대로 가는 거면 큰일인데… 길을 잃을 지도 몰라. 어떡하지?’

버스 기사에게 물으려 했지만 험상궂은 인상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얼마 전에도 한 버스 기사가 길을 묻는 민호 군에게 대답은 커녕 ‘조용히 하라’는 면박만 줬기 때문이다.

동그란 눈을 굴리며 창밖을 내다보던 민호 군의 표정이 이내 어두워진다.
 
‘아.... 또 틀렸네! 에잇, 반대편에서 타야하는 거였어.’ 목적지와 반대쪽에서 내린 민호 씨는 결국 그날 친구와의 약속을 허탕치고 말았다.

제법 늠름해진 스물셋 청년 이민호 씨는 상암동의 한 버스정류장 앞에서 10년 전 당시를 회상했다. 한 쪽엔 자전거를 세워둔 채다.

“학생, 여기서 120번 타면 ‘휘경시장’으로 가는 거 맞제? 내가 그쪽에 가야 되는디… 어디로 가야하는 지 모르겠네.”

옆에 선 할머니가 민호 씨를 붙잡고 물었다. 버스노선도 위 촘촘히 적힌 작은 글씨에 할머니가 주름진 눈을 찌푸렸다. 당장이라도 친절히 가르쳐주고 싶었지만 아직도 ‘방향치’인 민호 씨가 이런 질문에 바로 답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나처럼 버스 방향을 몰라 고생하는 사람이 많구나.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조금 낫겠지만 그래도 이런 표지판은 아직도 많은 시민들에게 불편한 것이 틀림없어.”

안타까운 마음에 민호 씨는 그 길로 다산콜센터 120에 전화를 걸었다. ‘내가 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고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답답하기만 했다.

“어디에 있는 무슨 정류장이라구요? 광역버스 인가요? 정류장 ID가 뭐죠? 사유를 정확하게 말해주세요.”

때로 ‘경기버스’ 노선에 대해 민원을 넣을 때면 서울시와 경기도 관청에서는 “상대쪽 관할”이라며 업무를 미루기에만 바빴다. 침착하게 하나 하나 설명해봤지만 ‘행정처리에 28일이 걸린다’는 말을 듣고 민호 씨는 온몸의 힘이 쭉 빠져버리고 말았다.

◇ 28일 동안 기다리라구요? 차라리 제가 할게요!

“그냥 표시만 하나 해주면 될 것을 뭐가 그리 오래 걸린다는 거지? 이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내가 직접 방향 표시해도 고작 10초밖에 안 걸릴 것 같은데!”

패기 넘치는 스물 셋 이민호 씨의 무모하지만 아름다운 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민호 씨가 가진 거라곤 건강한 신체, 자전거, 그리고 작은 스티커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민호 씨는 자전거를 타고 빨간색 화살표가 그려진 라벨 스티커를 일일이 버스 정류장을 다니며 확인하고 붙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대중교통의 개선해야할 점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

방향표시가 안된 것 뿐 아니라 정상 운행 버스의 번호가 누락돼있는 노선도도 있었다. 바뀐 번호가 바뀌지 않고 표시된 경우, 없어진 버스가 그대로 표시된 경우도 많았다.

장애인이나 노약자에 대한 배려가 되어있지 않는 것은 물론,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불편한 상태였다. 한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발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이지만 누구 하나 나서 고치려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럴수록 민호 씨는 한곳이라도 더 방향 표시를 하기위해 자전거 페달을 꾹꾹 눌러 밟았다. 그러기를 몇 개월, 민호 씨를 알아보고 응원의 말을 건네는 시민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자네 뭐 하는건가?”
“버스 노선도에 방향표시가 되어있지 않아서요. 제가 직접 붙이는 중이에요.”
“아하 그래? 거 참, 어린 청년이 좋은 일 하네. 나도 버스 방향을 잘못 알고 타 고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야. 고맙네, 고마워.” 
“헤헤, 아닙니다! 이렇게 해 놓으면 저도 편한 걸요.”

전혀 모르는 시민들의 따뜻한 웃음과 칭찬 한마디에 민호 씨는 힘이 솟았다. 그런 날에는 다섯 곳이든 열 곳이든 정류장을 더 돌았다. 비가 오면 우비를 쓰고 돌았고, 밤에도 바람을 쐴 겸 돌았다.

◇ ‘저도 돕겠습니다’ 서울 시민 서포터즈와의 만남

민호 씨가 우연히 시작한 이 일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졌고 반응은 뜨거웠다. 자발적인 시민활동을 하고 있는 이 젊은 청년에게 누리꾼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이 무렵 민호 씨에게는 '만나고 싶다'는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이에요! 티브이와 인터넷에서 민호씨 보고 감명을 많이 받았어요”, “얘기 많이 들었어요! 저는 건설환경공학과에 재학중인 박지원이라고 해요!”, “관광을 전공하는 이영희라고 해요. 우리가 살아가는 삶터인 서울을 바꾸는 일, 저도 열심히 해볼래요!”

수화기 너머로 한 무리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민호 씨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하고자 하는 ‘유네스코 디자인 창의도시_서울 시민 서포터즈’였다. 열 개 조 총 100명으로 이뤄진 그들은 자신들의 작은 디자인 아이디어가 서울시민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으로 활동중이었다. 그러다 민호 씨의 사연을 접하고 함께 하고자 연락한 것. 

'유네스코 디자인 창의도시_서울 시민 서포터즈'들이 이민호씨의 활동을 돕기 위해 직접 디자인한 해치 모양의 라벨 스티커. 
 
'유네스코 디자인 창의도시_서울 시민 서포터즈'들이 이민호씨의 활동을 돕기 위해 직접 디자인한 해치 모양의 라벨 스티커.
서포터즈들은 민호 씨와 광화문과 강남역 일대를 돌며 서울시의 상징 ‘해치’ 모양의 화살표를 노선도에 붙였다. 자신의 동네의 버스 정류장에 해치 화살표 붙이고 인증샷을 올리는 캠페인도 벌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전공을 살린 다른 분야의 사회개선 활동에도 앞장섰다.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불명확하고 차량통행이 많아 위험했던 종로구 부암동 서울 성곽 일대를 직접 걸으며 ‘시민을 위한 안전 걷기 지도’를 만들었다. 낙후된 쪽방촌을 방문해 이슈화하고 시민단체와 협력해 동네 쉼터 조성을 위한 답사활동도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같이 활동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지만, 민호 씨를 직접 만나면서 열정과 에너지를 많이 받았어요.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진심으로 시민들이 편의를 느끼길 바라며 방향 표시에 열심히 참여했어요. 즐겁게 활동하다보니 어느 순간 민호 씨도 ‘화살표 청년’이 아닌 또래 친구로 다가오더군요. 의미있는 경험과 에너지를 공유하게 되고 좋은 친구도 사귀어서 참 행복합니다.”

민호 씨를 통해 ‘참여와 행복의 에너지’가 전파됨을 느꼈다는 서포터즈 조장 박지원(25)씨의 말이다.    

◇ 행복 바이러스, 서울시 조례도 개정

평범한 청년 민호 씨는 서울시도 움직이게 했다. 민호 씨의 활동상을 담은 트위터 내용은 우연히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전달됐다. 박 시장은 ‘원순 씨의 서울이야기’라는 정책 제안 자리에 민호 씨를 직접 초대해 대중교통에 대한 이야기을 들었다.

그 결과 2012년 7월 13일 '버스관련 시민제안 및 주요 민원사항' 서울시 조례는 개정됐으며 '시내버스 차량 개선 및 안전성 제고에 관한 사항', '시민 모니터단에 대한 조례'도 신설됐다.

민원처리 시간은 28일에서 7일로 줄었고, 서울시 버스 전체노선 보수 및 디자인 개편도 2014년 하반기까지 하기로 했다.

◇ 제 2의 화살표 청년, 저도 합니다! 

민호 씨와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아이디어와 실천력이 전파되기도 했다. 경기 성남시의 한 젊은이는 마을 버스 노선이 없어 시민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직접 노선을 디자인했다.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온라인, 오프라인 설치에 노력중이다. 그는 자신의 장기인 디자인을 이용해 일부 누락된 서울시의 버스노선도를 제작하는 데도 힘을 썼다. 한 사람의 행동의 파급효과는 이렇게 긍정적으로 번져나갔다.

◇ “정말 행복해졌어요. 사람들이 없었으면 못했을 거예요”

민호 씨가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지칠 때 그를 다시 힘이 나게 한 것도 ‘사람들의 응원’이었다. 도와주겠다고 나선 이들을 만날 때는 그는 ‘함께 해서 더욱 행복했다’고 고백했다.

“제 사소한 행동에 이렇게 많은 분들이 반응하시고 좋아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이걸 했던 이유 중 하나가, 혼자 학점은행 과정을 밟다보니 친구보다는 주로 혼자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심적으로 우울해서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되게 많이 행복해졌어요. 아주 많이요. 저의 작은 행동에서 비롯된 긍정적인 나비효과들을 보며 지난 2012년은 잊을 수 없는 한해가 됐네요.”

민호 씨는 이러한 과정을 겪은 지난 2012년을 ‘꿈만 같다’고 표현했다. 민호 씨의 머리에 스친 작은 생각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 용기는 마치 바이러스처럼 모두를 '행복하게' 감염시켰다. ‘행복한 바이러스’는 민호 씨가 우리 사회에 보여준 가장 근사한 꿈이다.

김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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