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라 이름 붙여진 나의 이야기>
아시아투데이 허욱 기자 = 오늘도 새벽 6시 고시원 문을 나선다. 예전에 맞던 새벽공기는 뼛속을 쑤시는 차가운 아픔이었는데 지금은 산뜻한 시작을 위한 비타민 같다.
내 직장은 효창공원 앞 백범김구기념관이다. 겨울에는 눈을 치우고 가을에는 낙엽을 쓸고 여름에는 물을 뿌리고 봄에는 꽃을 줍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라면과 숟가락을 하나 사기 위해 서울역 롯데마트로 향했다.
가까운 슈퍼가 있었지만 걸으며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게 요즘은 참 좋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충격을 받게 됐다. 서울역을 지나가다 맞딱드린 '과거의 나'를 보게 된 것이다.
서울역은 어느 사이엔가 노숙자들의 든든한 안식처가 됐다. 이 들은 서울역을 지나다니는 일반 시민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를 의식하는 일도 별로 없다. 살아있지만 죽어있는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게 과거의 내 모습이었다.
"월급 40만원 그까짓 거 안받으면 그만이야. 니가 왜 나한테 화를 내!"
조금만 화나는 일이 있어도 사장에게 대들며 일하던 곳을 뛰쳐나왔다. 월급 40만원을 '그까짓 거'라고 말했지만 정작 내 주머니에는 달랑 1000원 한 장 밖에 없다. 그렇게 거리로 내몰리면서도 한번도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는 비슷한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밥을 먹기 위해 우연히 찾아간 자활센터. 그곳에서 난 우울증에 빠져있었다. 그냥 지금 내 모습이 싫어서다. 이 사회가 날 이렇게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내 인생을 바꾼 그날에도 난 식판에 밥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밥을 퍼주던 영양사 한분이 나를 유심히 쳐다봤다.
밥과 반찬을 받아 자리를 돌아가 밥 한 숟가락을 입으로 밀어넣는 순간 영양사가 숟가락을 잡았다.
"공부 한번 안해보실래요?"
'공부?' 너무 오래 들어보지 못한 단어라 생소했다.
"뭘 공부하는건데요?"
"지원씨가 왜 이렇게 사는지 알려줄 수 있는 공부요."
그렇게 내 손에는 연필과 책이 쥐어지게 됐다.
첫번째 강의시간. 철학 수업이었다.
교수님이 수업 시작하고 5분도 채 안돼 내 앞에 앉아있던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배고프고 추워 죽겠는데 철학은 왜 배워야 하는 겁니까!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듣기 싫어요."
"배고픔과 추위, 그리고 철학이라. 진짜 어울리는 단어네요. 왜 배가 고픈지, 왜 추운지 한번 생각해 본적 있나요?"
교수님의 말에 모두 어리둥절이다. '배가 고프니까 고프고 추우니까 춥지 왜 배가 고픈지, 왜 추운지 생각해봤냐구? 그런 질문이 어디있어?'
"방금 여기 계신분들 중에 반 이상은 '배가 고프니까 배가 고프고 추우니까 춥지, 이유가 어디있어?'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나는 속이 뜨끔했다.
"철학은 바로 배고품과 추위를 느끼는 것에서 시작됐어요. 여러분들처럼 배가 고프니 뭐든 먹어야 겠고 추우니까 뭐라도 걸쳐야 겠고 그래서 생각이란 걸 하게 된 거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보니 농장을 가꾸게 되고 옷을 만들어 입게 된 겁니다. 인간이 스스로 생각을 하면서 자기가 발전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했고 지금처럼 사회가 발전할 수 있었던 거죠. 지금부터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세요."
첫 수업이 끝나고도 내 생활은 크게 변한 게 없었다.
하지만 책상에 앉아 연필을 들어 글을 쓰고 내 귀를 통해 교수님들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 쌓일 수록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나는 왜 이렇게 더러운 옷을 입고 있지? 나는 왜 40만원의 월급을 받고 살아가야하지? 나에게는 왜 노숙자라는 이름이 붙여졌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오그라들지?'
너무 이상한 이런 느낌에 당황해서 내 정신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내 몸이 이상해진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일주일을 고민하다 교수님께 이런 느낌을 말씀드렸다.
"수치심이란 거죠. 부끄럽다는 거. 수치심을 갖고 있을때 우리는 치욕을 멀리할 수 있어요. 더러운 옷을 입고 있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 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는 것이고 내 평생을 노력해온 가치가 40만원 밖에 안된다고 생각한 것은 자신의 살아온 인생을 반성한다는거죠.
이것은 정신과 감정이 이상한게 아니라 죽었던 것이 살아난 거에요. 이제 지원씨는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된 거에요."
이렇게 나는 나 혼자만의 세상을 벗어나 사람들과 함께 사는 세상으로 한 발 한 발 지금도 걷고 있다.
김구 기념관 앞을 쓸면서 지나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리고 함께 밥 먹자는 동료들의 따뜻함도 느끼면서 말이다.
성프란시스 대학 여재훈 학장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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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프란시스 대학 여재훈 학장 /사진=허욱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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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홀로 남겨져있다는 느낌이 가장 힘든 겁니다.
처음부터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금전적 지원도 교육도 못 받은 경우 노숙이라는 수렁에 빠질 수 있죠. 또 일반인이 노숙인으로 전락한 경우엔 거의 가족해체를 동반하게 되기 때문에 사회의 지지도 주변사람의 지지도 없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밖에 없어요.
단순하게 의식주 문제를 지원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문제는 정신적인 태도를 바꾸는 거에요. 가장 중요한 게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거니까요. 저희의 인문학 강좌는 자기를 성찰하고 ‘내가 왜 다른 사람들보다 뒤떨어지게 된 거야?’라는 의문을 품게 만듭니다.
이 의문이 생기면 달라지려 노력하기 시작해요. 누더기 옷을 아무렇지 않게 입던 분이 깨끗한 옷을 찾아입죠. 새까맣던 얼굴도 하얗게 되요. 전엔 없던 수치심이 생기는 거, 이게 바로 자존감 회복의 증거랍니다.
2학기쯤 되면 스스로 일자리도 찾기 시작합니다. 사회에 뛰어들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는 거죠. 이런 긍정적인 신호들이 보이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머지 절반은 관계 회복을 통해 이뤄집니다. 저희는 모든 과목에서 현장 학습이 포함되어 있어요.
현장과 강의실을 오가며 1년 동안 그들이 계속해서 관계를 맺어가도록 유도합니다. 건강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게 되는 거죠.
이런 과정을 거치면 노숙자로 들어서게된 얽힌 미로의 탈출구가 보이게 되는 거죠"
△성프란시스 대학의 인문학 강좌는?
서울역 앞에 위치한 성프란시스대학은 9년째 노숙인을 대상으로한 1년짜리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의수족 가게 2층 100㎡ 남짓한 강의실에서 30대에서 60대까지 노숙인 25명이 수업을 듣게 된다. 올해는 철학과 한국사, 문학, 예술사를 한 학기에 두 과목씩 나눠 배우고 글쓰기는 1년 내내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