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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교육] 심야식당, 우동 국물처럼 따뜻한 배움 이야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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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욱 기자

승인 : 2013. 03. 16. 06:00

[희망100세] 암투병 후 배움으로 새 삶을 누리는 우종임씨(57)
해가 저물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갈때 심야식당은 문을 연다. '니가 먹고 싶은건 뭐든 만들어줄께.' 이 한마디에 울음을 터뜨리는 이들은 모두 자기만의 상처와 애환을 안고 살아가는 소시민들이다.

영화 '심야식당'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마스터가 만들어주는 정성이 담긴 음식과 대화한다. '너도 힘들지? 나도 그래. 그러니까 내가 니 이야기를 들어줄께.' 따뜻한 음식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 얼어붙었던 마음까지 녹는다.

우리가 심야식당에서 만난 우종임(57)씨와 홍지원(47·가명)씨도 암이라는 병이 주는 절망과 노숙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아픔을 치유받았다. 음식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서다.
                                                                                      [편집자주]

우종임씨(57)가 식사 중 활짝 웃고 있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는 울컥 했어요. '하고 싶은 말을 해봐. 뭐든지 다 들어줄께' 책 속의 활자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요. 원래 인간이라는 게 고독한 존재잖아요. 결혼을 해서 남편이 있고 아이가 있어도 이 나이가 되면 외로운데 몸까지 아프니 감정이 더 복 받쳤던 것 같아요."

바람이 제법 쌀쌀한 3월의 저녁 8시 서울 명륜동 겐로쿠라는 우동집에서 우종임씨(57)를 만났다. 겨울, 얼었던 가슴을 녹여준 우동 국물처럼 그녀의 얼어붙은 인생을 녹여줬던 배움의 이야기를 그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종임씨는 2008년 유방암을 선고받았다. 요즘에는 암이 고칠 수 있는 병이라 '선고'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어울리지 않지만 종임씨에게는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혼자 있는 시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책이라는 것을 가까이 하게 됐는데 어느 순간 그 책의 내용들이 종임씨의 말 벗이 됐다고 한다.

종임씨가 가장 즐겨보는 책은 명심보감과 이해인수녀의 시집, 수필집이다.

"명심보감은 죄다 외우고 싶을 만큼 마음에 드는 책이에요. 마음을 맑게 하는 보배로운 거울이라는 책이름이 딱 맞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지금까지 살면서 놓쳐왔던 것들을 깨닫게 해줘요.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맑아지고..."

요즘 종임씨가 수첩에 적어두는 글귀는 '하루라도 마음이 맑고 편안하다면 그 하루는 신선이 된 것이다'라는 말이다.

"몸은 아프지만 하루하루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고 노력해요. 그 하루는 환자가 아닌 아무것도 바랄 것 없는 신선으로 살아가는 거죠."

책을 좋아하는 종임씨는 매일 서울시청 도서관으로 출근한다. 주로 1·2층에서 교양서적을 읽는다. 이해인 수녀의 시집은 수 십번도 더 봤다.

"장미꽃잎 속 시간은 부드러운 향기를 피워 올리기 위해 날카로운 가시의 고통이 필요했어요. 호두껍질 속 시간은 단단하게 익어가기 위해 길고 긴 어둠의 고통이 필요했구요. 파도 속의 시간은 많이 울고 출렁거려야 힘찬 노래를 부를 수 있다고 했어요. 저도 더 행복한 시간을 위해 지금의 고통이 필요한 거라 생각해요."
 
해질 무렵이 되면 종임씨는 도서관을 나온다. 집에 돌아가면 다시 책상위에 앉는다.

"내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했어요. 책을 읽고 모르던 것을 배우는 것이 이렇게 큰 기쁨이 될지 몰랐어요. 감았던 눈을 뜨니 주변에는 배울게 너무 많더라구요.
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평생교육사이트만 찾아다녀도 평생 다 못 배울 양의 강좌가 열려있더라구요."

집에 와 씻고 밥을 먹으면 종임씨는 책상 위 컴퓨터를 켜고 강북구청 문화대학 사이트를 연다.

"한자 공부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중국어를 공부해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에 강좌를 신청했죠. 강의 내용을 노트에 다 적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한마디 한마디 늘어가는 재미가 보통이 아니에요. 이제 인사하고 물건사기는 마스터했는데... 암이 완치되면 중국으로 여행가도 별 무리 없겠죠?"

일주일에 한두 번은 서울 시민대학에도 들른다. 서울 시립대 본교에서 하모니카 반과 가곡 교실을 수강하고 청계천 분교에서는 드로잉도 배운다. 무엇이든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어서 이것저것 다 등록했다.

"드로잉이 제일 재미있어요. 2년째 하고 있죠. 15분, 7분 이렇게 시간을 정해주는데 그 시간 안에 모델을 그려내야 해요. 모델과 그림을 번갈아 보면서 때론 부드럽게 때론 강하게 터치하면 내가 조종하는대로 연필이 움직이는 그 느낌이 좋아요."

종임씨는 올 7월이면 유방암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배움이 그녀와 동행했기에 이겨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20~30년은 더 살 건데 앞으로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겠죠. 나에게 주어진 남아있는 시간들을 더 의미있게 살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평생 배우며 사는 것이 꿈입니다."

허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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