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투데이 박용준 기자, 신종명 기자 = 지난 20일 서울시 성동구립 홍익어린이집.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이 5세 아이들 10여명 앞에서 엄마와 아이, 해설자의 목소리를 넘나들며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우고 때로는 큰 소리로 웃으며 동화구연에 푹 빠졌다.
올해 만 66세를 맞은 정지석 씨는 “아이들과 연애하는 느낌”으로 제2의 인생을 걷고 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정씨는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1968년부터 2001년까지 30년 이상을 언론사 제작분야에서 근무하면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정씨는 현역 은퇴 후 소일거리 삼아 경비를 했지만 자식들의 반대와 종교의 힘 덕분(?)에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봉사활동에 뛰어든 그는 독거노인 등 소외계층과 치매노인을 대상으로 목욕봉사활동을 펼치며 봉사의 참다운 가치를 느끼게 됐단다.
정씨는 “신앙인은 사람의 건강을 찾는 것이 목적인데 진정한 건강은 마음의 평화예요. 봉사활동에 전념하면서 ‘마음의 평화는 봉사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죠”라고 말했다.
정씨는 치매노인 목욕봉사를 할 때는 목욕을 싫어하는 어르신이 자신의 머리카락, 심지어 살까지 뜯어내고 목욕 도중 볼일(?)을 보는 일도 상당수여서 정말 힘들었단다.
정씨는 “치매노인의 행동을 보니 ‘이게 우리의 먼 자화상’인가라는 생각이 들데요. 그러면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나에게 해줄 것’이라는 성경 구절이 생각나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목욕봉사 기간이 길어지자 정씨의 건강을 걱정한 가족들이 봉사활동을 그만둘 것을 권고해 접어야 했다.
정씨는 “현직에서 물러난 다음에 탑골공원도 가보고, 경비도 해 봤지만 봉사만큼 행복을 느끼지 못했어요. 그래서 성동구 어르신 동화구연봉사단 문을 두드렸죠”라고 했다.
정씨는 동화구연을 할 때마다 책을 그대로 읽는 법이 없다. 특히 아이들의 연령대가 높을 수록 애드리브를 더욱 심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애드리브에 교훈을 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정씨는 이날 동화구연을 시작하기 전 “어린이들 몇 살이에요”, “설날이 무슨날이에요”라며 아이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이후 너무 고집을 피우면 안된다는 내용의 교훈이 담긴 ‘다시는 떼쓰지 않을게요!’를 들려줬다.
중간 중간에 “(주인공) 또띠가 말 잘 듣는 거예요? 안 듣는거예요?”라고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엄마가 방을 치우라는 말에 또또가 ‘어지럽혀야 장난감 잘 찾을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또띠가 고집 피우는 거죠. 여러분도 또또처럼 개구쟁이 끼가 있고 말 잘 안 듣지요”라고 물었다.
동화구연이 끝난 다음에는 “설날은 세배하고 차례지내고, 떡국먹고, 윷놀이하는 거죠”라며 명절에 해야 할 일을 설명해줬다.
동화구연이 끝나면 정씨는 아이들과 함께 춤을 추고 정중한 인사로 마무리한다. 헤어질 때는 아이들이 정씨에게 달려와 한 명 씩 안기고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정씨는 “동화구연은 아이와 어른, 해설까지 1인 3역을 해야 한다. 아이는 가늘게, 어른은 굵게, 해설은 중간으로 해야 되는데 잘 안되더라.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식구들 모아놓고 연습하죠”라고 환하게 웃었다.
매주 화요일과 격주 금요일에 어린이집을 찾는 정씨는 동화구연의 매력에 대해 “동화구연을 들려줄 때 아이들이 깔깔깔 웃으면 희열과 행복을 동시에 늦낀다. 처음에는 아이들 만나는게 서먹서먹했지만 이제는 보고싶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손주들 같고 어떤 면에서는 손주들보다 더 친근하기까지 하다. 동화구연을 하면서 아이들과 연애하는 느낌으로 산다”고 말했다.
정씨는 동화구연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아이들을 상상하며 도서관에서 한 시간 이상 책을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