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재정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부어 금융위기를 초래한 유럽은 이미 '선택과 집중'으로 돌아섰지만 한국은 아직 일본에서 가져온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금 투자 대상도 폭이 넓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정부가 내놓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개편안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차별을 두지 않고 모두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확정급여방식이 도마위에 올랐다.
소득상위 30%이면서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100만명에게도 월 5만원 정도씩 주기로 정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금융위기의 혹독한 시련을 겪은 후 대부분이 연금제도 개혁에 칼을 빼들었다. 연금혜택이 필요한 이들에게 재원을 집중해 복지를 흔들지 않으면서도 국가 재원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다.
1947년 기초연금을 도입한 스웨덴은 재정이 고갈되기 시작한 1998년 이를 폐지하고 최저보증연금제도를 도입했다.
소득이 적어 연금도 적게 받는 집단에 대해서만 최소생계비에서 모자라는 차액만큼 국가가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이밖의 집단은 따로 기초연금을 받지 않고 자신이 낸 돈과 그에 따른 이자로 받을 연금액이 결정되는 확정기여 방식이 적용된다.
핀란드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기초연금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1993년에는 65세 이상의 95%에게 기초연금 전액을 지급했지만 재정부담이 커지자 소득조사를 강화해 2004년에는 8%만 전액을 받았다.
대신 최저소득보장제도와 주택수당제도 등 저소득층 대상 공공부조를 확대하고 있다.
노령연금을 최초로 도입한 독일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인구 고령화와 저성장 같은 사회 여건 변화와 연금급여 수준을 자동적으로 연동시키는 '자동안정화법'을 도입해 향후 30년간 공적연금을 40%정도 삭감할 계획이다. 천천히 점진적으로 재정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일본의 원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도 표퓰리즘식 선거공약 이행을 위해 돈을 끌어쓰다 재정이 부족해지자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부족액 절반을 세금으로 충당하고 특별회계도 끌어다 썼다.
그마저 바닥나자 민주당이 소비세를 2배 인상해 5분의 1을 연금재원으로 활용하자는 안을 제시해 정치권 혼란만 가져왔다. 이후 각료 5명을 교체하는 개각을 단행하고서야 인상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여전히 논란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퇴직연금이 일부 자산에만 편중된 것도 문제다.
한국의 경우 예금과 원리금 보장상품 두가지로 간추릴 수 있을 정도로 투자 자산이 매우
제한적이다. 그나마 펀드로 운용되는 것도 투자 대상이 국내 증시에만 국한돼 있다.
6월말 현재 국내 채권혼합형 펀드의 비중이 전체 퇴직연금 펀드의 86%에 달하는 반면 해외 주식형 펀드와 해외 채권형 펀드는 각각 0.5%와 0.3%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401K'라는 퇴직연금 플랜이 정착돼 근로자 10명 중 8~9명이 여기에 가입돼 있다.
이들은 주식이나 채권 같은 실적배당형 상품을 선호하는 등 퇴직연금 운용에 적극적이다.
장기투자해야하는 퇴직 연금 속성상 주식만큼 매력적인 투자군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 퇴직연금 시장의 또 다른 특징은 운용을 위해 평균 20개 이상의 투자 상품군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국내외 주식·채권뿐 아니라 원자재·상장지수펀드(ETF)·선물·옵션 등 파생상품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퇴직연금의 자산운용에 규제를 두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해 마이클 리드 피델리티자산운용 대표는 "은퇴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장기투자 관점에서 안정 뿐 아니라 수익률도 추구해야 한다"며 "해외주식이나 선진국보다 이자율이 높은 신흥국 국채 등에도 분산투자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