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영 모텍스 중국법인 대표이사(오른쪽)가 중국 지멘스로부터 우수협력업체 감사장을 받고 있다. / 사진=이태영 |
이 대표가 젊은 시절부터 중국과 깊은 인연을 맺은 것은 아니다.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유성기업에 근무하면서 1990년부터 간간이 중국 출장을 다녀왔지만 본격적으로 중국에 터를 잡은 것은 불과 9년 전인 2004년이다. 당시 그의 나이 58세. 일반적으로는 노후설계와 휴식을 생각하는 시점이다.
이 대표가 늦은 나이에 낯선 땅인 중국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유성기업에서 퇴사하기 전부터 나의 사업을 운영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며 “중국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던 친구가 동업을 제안했고 전망이 있어 보여 함께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집에서 쉬면서 가끔 여행을 다니는 등 일반적인 노후 생활을 즐길 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인생에서 이루고픈 꿈이었다”며 “젊은 시절 사업을 시도하다가 한번 실패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갈망했던 순수한 꿈이었다”고 했다.
낯설고 텃세 심한 중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자신만의 기술 노하우였다. 그 노하우는 이 대표가 먼 미래를 대비해 젊은 시절부터 틈틈이 축적한 것이다. 그는 대학 전공인 기계공학은 물론이고 가공, 주물, 도금, 품질관리, 국제표준(ISO) 등을 몸에 익혔다.
그는 “유성기업에서 근무하면서 나만의 업무에 매몰되지 않고 회사에서 사용하는 전반적인 기술을 배우려고 시도했다”며 “기계 파트가 나의 주전공이라면 다른 분야는 일종의 부전공으로, 교양 과목으로 익힌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엔지니어로 일하다 중간 경영진이 되면서 판단력이 많이 향상된 것 같다”며 “중국 법인에서 현지인들을 상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했다.
틈틈이 쌓아둔 기술 노하우로 폐플라스틱을 기름으로 유화시키는 기술을 공동 개발해 로이코 최고기술경영자(CTO)에 오를 수 있었다. 이 기술은 친환경 대체에너지 개발의 일환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대표는 지금도 중국어에 그다지 능통하지 않다. 하지만 그는 “동업하는 친구가 원어민처럼 능통하기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며 “열심히 배우고 사람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니 소통의 길이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당연한 말이겠지만 열정이 가장 중요하다”며 “누구나 열정을 갖고 오지만 낯선 땅에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잡초근성이 부족해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두 번 실패할 수 있지만 이것을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 삼으면 되는데 일찍 포기해서 문제”라며 “실패해도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현지에서도 더욱 큰 신뢰를 쌓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그는 팔방미인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다른 직종의 기술이 그 당시에는 크게 쓸모가 없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소중한 자산으로 돌아온다”며 “몸담고 있는 회사가 있다면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배우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2남 1녀를 뒀다. 모두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했다. 큰 아들은 LG에서 근무하고 둘째 아들은 가천대학교 메디컬캠퍼스 교수로 재직 중이다. 막내딸은 대한체육회에서 근무하며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있다. 명절과 휴가철에 가족들이 한자리에서 모이는 것이 그가 손꼽아 기다리는 즐거움이다.
이 대표는 “현역에서, 그리고 외국에서 일하고 있으니 가족들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어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무엇보다 당당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중국 진출을 계획할 때는 아내의 반대가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이 생활한다. 그는 “아내도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젊을 때부터 역지사지, 전화위복, 외유내강을 나의 생활신조로 삼으며 자식들에게도 늘 강조했다”며 “그 덕에 중국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자식들도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