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재정비사업 6구역인 서울 중구청 일대. 2006년 구역 지정 이후 공시지가만 2배가까이 급등했다. 인쇄업자들이 모여 영업을 하고 있지만 재개발 구역으로 묶이면서 상인들이 주변 을지로나 퇴계로로 빠져나가 빈 상가가 늘고 있다. /사진=류정민 기자 |
24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당초 2012년을 목표로 했던 초록띠공원조성사업 2단계 사업 완공을 2015년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아울러 서울시는 당초 122m의 건물 높이를 고려해 설계했던 재정비촉진계획을 문화재청의 75m 고도 제한에 따라 변경하는 용역을 지난해 발주하는 등 사실상 원점에서 사업을 재검토하고 있다.
주민들은 문화재를 고려하지 않은 서울시의 ‘오판’으로 사업시행이 늦어지면서 개발지역내 땅값만 오르고 시행자가 불투명해지는 등 실현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사업 표류로 상권만 파괴
24일 찾은 서울 중구 인현동 세운재정비촉진사업지구. 골목 곳곳에 문을 내린 상가가 눈에 띈다. 덕수중학교 뒤쪽 골목은 빈상가가 많아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이곳에서 20년 가까이 인쇄업을 하고 있다는 박모씨(50·인현동)는 “재개발 지역으로 묶이면서 언제 자리를 비워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빠져나가는 가게가 늘고 있다”며 “동료 상인들은 인근 을지로와 퇴계로로 많이 옮겼고 멀리는 필동, 뚝섬, 서울 성수동으로 옮기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박씨는 “상권이라는 것은 오랜 세월을 거쳐 자연히 형성되는 것인데 서울시에서는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며 “단순히 장소만 제공하면 된다는 서울시의 단순한 사고와 상인을 무시하는 오만함은 가든파이브만 봐도 단 번에 알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동산 중개업자 김재식씨(70)는 “여기에서 인쇄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게는 수 천 만원의 권리금을 지불하고 자리 잡았는데 재개발로 권리금을 보상받을 수도 없게 됐다”며 “재개발지구로 지정된 이후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아 중개업 수입도 절반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개업자 정모씨(52)는 "문화재는 대통령도 건드리지 못하는 것 아니냐. 서울시에서 주민들로부터 기부체납 받아 폭 90m, 길이 1㎞의 녹지축을 멋들어지게 만든다고는 했지만 문화재청의 고도제한으로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인다"며 "재개발 기대심리로 땅값만 잔뜩 올랐다"고 말했다.
정씨는 "평당 4000~5000만원은 도심에서는 비싼 값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지주들이 많다"며 "만약 수용을 하게 된다면 잘해줘야 공시지가 2배정도 쳐주는 정도일텐데 그때는 주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은 당연지사 아니냐"고 말했다.
◇사업추진으로 공시지가만 2배 가까이 상승
세운재정비역의 땅값 상승은 공시지가만 봐도 알 수 있다.
실제 6구역에 있는 청계호텔(중구 인현동)을 예로 들면, 이 호텔 지번의 공시지가는 1990년 211만원으로 2006년까지 16년 동안 ㎡당 244만원에 오르는데 그쳤다.
그러나 2010년 기준 공시지가는 ㎡당 760만원으로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2006년 10월 이후 단 3년 사이에 ㎡당 315만원이나 급등했다. 16년 동안 오른 것보다 재정비지정 이후 3년간 더 많이 오른 것이다.
세운6구역내 있지만 개발에서 제외된 남산센트럴자이의 경우도 1990년 ㎡당 390만원이던 공시지가가 2006년 591만원으로 16년간 201만원 오르는데 그쳤었다.
하지만 2007년 769만원으로 불과 1년새 ㎡당 178만원이나 오르더니 2008년 911만원, 2010년 989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문제는 실거래시 지주들이 부르는 ‘호가’는 이보다 몇 갑절하기 때문에 조합을 결성해 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고도제한을 풀어 용적률을 높이지 않는 한 민간건설사의 참여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주민 한상대씨는 “현재 지주들 중에는 많게는 평당 6000만원(㎡당 2000만원)으로 값을 쳐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고도제한으로 용적률이 낮아진 상황에서 어느 건설사가 사업성도 없는데 덤비겠느냐”고 말했다.
한씨는 “민간에서 조합을 결성하라고 하지만 사업성이 없어 SH공사도 손을 드는 마당에 주민들이 무슨 수로 조합을 만들어 건설사를 설득할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문학적인 사업비…시행자 불투명
애초에 서울시는 2004년 1월 세운상가 도시환경정비구역 지정을 고시한 이후 종로구청을 사업시행자로 선정했다.
이후 2006년 10월 세운상가 일대 43만㎡를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했으며, 2007년 사업시행자가 종로구청에서 서울시 산하 SH공사로 바뀌었다.
2007년 당시만 해도 사업은 순조로운 듯 보였다. SH공사와 주택공사가 서로 사업을 도맡아 하겠다고 경쟁에 나섰고 그 결과 SH공사 주민들에 의해 사업시행자로 선정됐다. 주택공사는 어떻게든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후에 사업참여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주택공사는 LH공사로 합병 출범한 이후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사업으로 세운재정비사업을 꼽고 2009년 12월 사업에서 발을 빼기로 결정했다.
뿐만 아니라 SH공사도 1단계 사업예정지인 종로구 예지동 일대 세운4구역을 제외한 나머지 2단계(2, 3, 5-1, 5-2구역)와 3단계(6구역) 구역은 사업을 추진할만한 민간조합과 함께 하지 않는 한 손을 대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SH공사 관계자는 “사업 1단계인 예지동 일대 4구역만 하더라도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했을 때만 1조원이라는 상당히 많은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며 “천문학적인 사업비가 들어가는 만큼 모든 구역의 단독 사업시행은 어렵다고 판단해 나머지 구역은 민간에서 조합을 결성해 추진하면 함께 참여를 고려하는 것으로 잠정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문화재청의 고도제한으로 용적률이 깎일 가능성이 커지면서 세운재정비 사업구역내 녹지축 조성비용을 주민들에게 부담케 하는 일은 더욱 쉽지 않아졌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는 4대문 내의 역사성 보존을 위해 2000년 ‘도심부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해 원칙적으로 사대문안 건축물 높이를 90m 이하로 제한해왔다.
이로 인해 중구가 추진했던 262m 고층 빌딩도 서울시가 반대해 건립이 어렵게 된 선례도 있다.
공사 관계자는 “층수가 낮아지면서 그만두자는 주민들도 있고, 참여를 포기하고 현금청산을 원하는 주민들도 많다”며 “상인들도 사업을 하는 거라면 빨리 보상을 받고 나가길 원하지만 재정비촉진계획부터 다시 짜야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세운상가 위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