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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노벨상 후 첫 책 ‘빛과 실’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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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5. 04. 22. 18:19

미발표 산문 3편·노벨상 강연문·시 등 12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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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강. ⓒ전명은 /문학과지성사
"그렇게 내 정원에는 빛이 있다. // 그 빛을 먹고 자라는 나무들이 있다. / 잎들이 투명하게 반짝이고 꽃들이 서서히 열린다."(산문 '북향 정원'에서)

소설가 한강이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 펴낸 첫 신간 '빛과 실'이 정식 판매를 앞둔 22일 공개됐다. 문학과지성사에 따르면 이 책은 오는 23일 온라인 판매를 시작하며 24일부터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독자들을 만난다.

책에는 5편의 시를 포함해 총 12편의 글이 실렸다. 이 중 3편은 작년 12월 노벨문학상 시상식과 관련된 것들로 수상자 강연 전문 '빛과 실', 시상식 직후 연회에서 밝힌 수상소감 '가장 어두운 밤에도', 노벨상 박물관에 찻잔을 기증하며 남긴 메시지 '작은 찻잔'이다.

이와 함께 산문 '출간 후에'와 '북향 정원', '정원 일기', '더 살아낸 뒤', 시 '코트와 나', '북향 방', '(고통에 대한 명상)', '소리(들)', '아주 작은 눈송이' 등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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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실' 표지 이미지. /문학과지성사
이 책에서 처음 공개된 것은 '북향 정원', '정원 일기', '더 살아낸 뒤' 등 산문 3편이다. '북향 정원'은 한강이 2019년 네 평짜리 북향 정원이 딸린 집을 산 이후 정원을 가꾸며 경험한 일을 다룬다. 빛이 얼마 들지 않는 북향 정원에서 식물을 키우며 새삼 빛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는 과정이 특유의 무덤덤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장으로 표현됐다.

한강은 정원이 북향인 점을 고려해 비교적 빛이 적게 들어도 키울 수 있는 미스김 라일락, 청단풍, 불두화 등을 심는다. 그리고 조경사의 조언대로 남쪽으로 비치는 햇빛을 식물들에게 보내주기 위해 여덟 개의 탁상 거울을 정원에 놓는다. 이후 한강은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빛의 각도에 따라 거울의 위치를 바꿔주면서 "지구가 자전하는 속도의 감각을 그렇게 익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또 "이 일이 나의 형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을 지난 삼 년 동안 서서히 감각해왔다"고 털어놓는다.

'정원 일기'는 제목처럼 정원을 가꾸며 겪은 일을 날짜별로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로, 변화하는 식물들의 모습이 주를 이룬다. 2021년 4월 26일자 글에서는 "칠 년 동안 써온 소설을 완성했다"며 "USB 메모리를 청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저녁 내내 걸었다"고 남겼다.

책에서 가장 마지막에 담긴 '더 살아낸 뒤'는 두 쪽에 걸친 짤막한 산문으로, 모든 문장이 서로 다른 행으로 나뉘어 있어 운문으로도 읽힌다. 한강은 이 글에서 "나는 인생을 꽉 껴안아보았어. / (글쓰기로.) // 사람들을 만났어. / 아주 깊게. 진하게. / (글쓰기로.) // 충분히 살아냈어. / (글쓰기로.)"라고 써 글쓰기가 그의 삶에 어떤 의미인지 표현했다.

이 밖의 산문 1편과 시 5편은 기존에 발표하거나 공개됐던 것들이다. 산문 '출간 후에'는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펴낸 직후인 2022년 쓴 글로, 앞서 펴낸 '디 에센셜: 한강'(문학동네)에도 실렸다. 7년에 걸친 소설 집필을 마무리한 감정을 담았다. 시 '소리(들)'은 작년 광주비엔날레 개막 공연을 위해 쓴 시를 수정한 것이며, 다른 네 편의 시는 '문학과사회', '릿터' 등 문예지에 실린 것들이다.

글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것은 표지와 본문에 실린 사진들이다. 한강의 정원과 작업 공간, 기증한 찻잔 등을 담은 사진들은 모두 작가가 직접 촬영했다고 한다.

책의 맨 마지막 장에 실린 사진은 한강이 '빛과 실' 강연에서 언급했던 유년 시절에 쓴 시다. 여덟 살 한강이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이 시는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노벨상 강연의 화두였다. "사랑이란 어디있을까? / 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 사랑이란 무얼까? /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 아름다운 금실이지."

한강은 작년 12월 노벨상 강연에서 이 시를 언급하며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라고 자문했다. 이어 "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며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라고 고백했다.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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