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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인사이트]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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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카트(오만) 장원재 선임 기자

승인 : 2025. 02. 13. 10:28

한국축구 흑역사, 003년 10월 '오만 쇼크'의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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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오만 쇼크'의 현장 술탄 카부스 스타디움./ 사진=전형찬 기자
아시아투데이 장원재 선임 기자 =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그래서 찾아갔다. 대한민국 축구의 흑역사의 한 현장이다.

오만 수도 무스카트의 술탄 카부스 스타디움. 2003년 10월 21일, 2004 중국 아시안컵 2차 예선에서 대한민국은 오만에게 충격적인 1-3 패배를 당했다. 47분 정경호(현 강원FC 감독)가 선취골을 넣었지만 60분 알 누비, 64분 무하네드, 88분 라자브에게 연속 실점하며 대패했다.

전년도인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로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자존심'이 됐다. 문제는 유럽 강호와 대결 기회가 거의 없던 아시아 각국이 우리와 경기를 정성을 다해 진지하게 준비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아시안컵 예선 3연승을 달리던 한국은 조기에 조 1위를 확정하겠다는 각오로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원정 첫 경기인 베트남과 경기에서 슈팅을 16개나 날리고도 단 한 번의 역습에 무너지며 0-1로 졌다. 1959년 메르데카컵 2-3 패배(당시 상대는 남베트남공화국) 이후 44년 만의 패배였다. 그것도 아시안컵 예선 탈락 위기에 처한 베트남이 11월 동남아시아게임에 대비해 내보낸 23세 이하 선수단에게 당한 일격이었다.

원정 두 번째 경기가 바로 밀란 마찰라 감독이 이끄는 오만과의 일전이었다. 이 경기에서 신들린 선방을 보여준 골키퍼 알리 알 합시는 이후 노르웨이 리그를 거쳐 프리미어리그 볼턴 원더러스에서 활약했다. 오만 축구가 배출한 최고의 축구 선수로, 은퇴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아직도 오만의 국민 영웅으로 불린다.

오만 쇼크 이후 2004년 3월 최약체 몰디브와 원정 경기에서 0-0 무승부라는 결과가 나오자 팬과 협회의 인내심이 폭발했다. 당시 감독이던 움베르투 코엘류가 짐을 쌌다.

가장 아쉬운 점은 감독과 선수진과의 의사소통이다. 2003년 2월 부임한 코엘류는 선수들이 자신에게 소극적으로 항명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인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예선 때는 죽어라 뛰면서도 아시안컵 예선 때는 이에 준하는 '독기'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임 직전에야 '병역 면제'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한 코엘류는 비로소 오해를 풀었다.

가족을 초청해 제주도에서 휴가를 보낼 때도 해프닝이 있었다. 최고급 생선회를 시킨 후 계산서를 보고 바가지를 썼다고 오해한 것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가격을 보고 화를 냈고 가족들 앞이라 더 민감했다. '최고급 회'의 가격을 몰랐기에 빚어진 실수였다.

오만에게 우리만 당한 것은 아니다. 오만은 2012년 런던 올림픽 예선에선 중국을 물리치고 중국 탈락, 오만 최종예선 진출의 역사를 썼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예선에선 사우디아라비아를 따돌렸으며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최종 예선 첫 경기에선 일본을 1-0으로 꺾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그것도 일본 홈 경기에서 그랬다. 아시아 각국의 축구 실력이 그만큼 평준화했다는 증거다. '의사소통'에 사소한 문제가 생기면 결과는 수습 불가능한 지경으로 얼마든지 커질 수 있다. 또 다른 오만 쇼크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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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석 오른편에 쓰여진 아랍어 문자.사진=전형찬 기자
장원재 선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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