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선 이번 남북경협이 한국경제에 마지막 도약대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약 3500조원 규모로 묻혀 있다는 희토류 등 지하광물이나 사회 전반에 대한 전기·도로·토목 등 초대형 인프라 투자, 약 2500만명에 달하는 소비시장까지 확보할 수 있어서다. 거기에 러시아 및 중국 대륙과 연결 돼 에너지자원을 비롯한 각종 물류 운송이 가능해진다는 장밋빛 청사진은 덤이다.
◇끊어진 남북 허리 잇는다… 철도·도로, 핵심 인프라 준비부터
정부는 일단 미국의 대북제재에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준비에 나서기로 했다. 한반도의 끊어진 허리를 잇는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 작업이 그것이다. 특히 동해선은 부산에서 북한을 관통해 러시아와 유럽까지 달릴 수 있는 노선이다.
도로·철도 연결은 남북경협을 위한 기본이자 첫 밑그림이다. 특히 우리가 선제적 움직임에 나서면서 대내적으론 남북경협에 대한 여론몰이를 하고 대외적으론 미국과 북한의 협조를 종용하는 압박도 가능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정부는 벌써부터 국내 노선 정비로 대규모 SOC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부산에서 강원 고성을 잇는 동해선은 현재 포항~삼척(166.3㎞)을 연결하는 철도가 단선·비전철로 건설되고 있다. 1단계 구간인 포항~영덕(44.1㎞)은 지난 1월 개통했다. 2020년 예정된 2단계 구간인 영덕∼삼척간(122.2㎞) 철도 건설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강릉~제진(110㎞)은 철도 노선이 없는 ‘미싱 구간’이다.
◇기업별 경협 ‘청사진’은 나왔다… 값싼 노동력·풍부한 자원 활용
아직 청사진에 불과하지만 산업계에선 대북제재가 풀릴 경우 추진될 주요 대기업들의 경협 시나리오를 예측하고 있다. 삼성은 과거 평양에서 TV를 생산했던 경험이 있어 향후 북한 현지 공장 가능성이 점쳐진다. 또 삼성물산이 북한의 자원개발 사업 등 남북경협 사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과 고속전철 등 철도 사업을 하는 현대로템을 중심으로 교통 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철도용 레일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현대제철도 수혜가 기대된다.
SK그룹은 남북경협 사업 초기에 필요한 도로·전력 및 통신 인프라 사업과 관련해 SK텔레콤과 SK건설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SK이노베이션은 북한의 천연자원 개발 및 에너지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LG그룹은 북한 내 SOC 사업과 관련해 LG유플러스 통신 네트워크 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자원개발에는 LG상사가 두각을 보이고 북한 내 LG전자 위탁가공 공장 설립도 검토 가능하다.
현대그룹은 북한 7개 사회간접자본의 독점 사업권을 2030년까지 보유하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다른 기업들과 합작사업을 하며 이익을 극대화시킬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화는 북한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 필요한 화약과 뇌관 등을 팔 수 있어 호재다. 포스코는 북한산 철광석 수혜와 각종 건설·토목사업 철강 수요 증가에 따른 수혜가 예상된다. 세아제강도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 직도입이 가능해지면 가스관 구축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 韓 도약 최대 기회지만… 대북제재 해소 없으면 결국 ‘물거품’
2%대 저성장 고착화가 현실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경협은 새로운 거대 소비 시장을 열고 초대형 인프라 투자가 줄줄이 이어질 기회로 평가된다. 특히 지정학적 리스크를 해소하면서 해외 큰 손들의 한국 투자를 늘리고, 나아가 러시아 등 북방경제 교류에도 절호의 찬스라는 분석이다.
이석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핵화가 진전되면 남북한 산업협력을 가로막는 장애요인들이 제거돼 다양한 분야에서 남북한 산업협력의 기회가 열릴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특히 광업·농업·건설·섬유·산업용 기계분야에서 남북간 협력 잠재력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다만 대기업들 사이에선 준비하는 데 의미는 있지만, 앞서나갈 필요가 없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특히 미국 정부의 세컨더리 보이콧 관련해서 대내외 우려가 나오는 것 역시, 한국의 남북경협에 대해 속도 조절 압박일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용만 대항상의 회장도 남북경협 기대감이 커지던 6월 말께 관련 콘퍼런스에서 “대북제재 해제 전까지는 차분하고 질서 있는 경협추진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를 위해 구심점 역할 할 ‘남북민관 협의체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평양을 다녀온 직후에도 박 회장은 “듣고 보기 위해 방북했었다”며 “그래야 여건이 허락할 때 일하기 쉽지 않겠느냐”며 대북제재가 선행돼야 함을 강조했다..